▲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 위치한 엔비디아 본사
EPA 연합뉴스
엔비디아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제 개별 부품이 아닌 완성된 인공지능 시스템을 통째로 판매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최신 아키텍처인 블랙웰(Blackwell)은 중앙처리장치(CPU), GPU, 네트워킹 칩을 하나로 묶은 완성형 시스템이다. 애플이 아이폰-아이패드-맥북을 하나의 생태계로 묶은 것처럼 인공지능 생태계 전체를 엔비디아 플랫폼으로 통합시켜 내겠다는 의도다. 고객사 입장에선 이런 패키지가 대단히 편리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엔비디아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할 수 있다.
이러한 독점적 지위를 바탕으로, 엔비디아는 첨단 반도체 패키징의 핵심 기술인 TSMC의 코워스(CoWoS) 물량 70% 이상을 선점하고 있다. 이는 곧 인공지능 반도체의 생산과 공급망 전체를 엔비디아가 사실상 지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엔비디아의 이런 지배력이 특정 기업들에 의존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등 4대 초대형 클라우드 기업이 엔비디아 전체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한다고 본다. 이 4대 클라우드 기업은 2025년 한 해에만 인공지능 인프라에 3800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 이는 미국 국내총생산의 1.28%에 해당하는 규모로 역사상 유례없는 집중 투자다.
이 집중 투자는 곧 엔비디아의 경이로운 매출과 마진율로 곧바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독점력과 시장 수요가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느냐다. 그리고 이 투자 금액 대비 인공지능 서비스로 벌어들이는 수익 사이에 긴 시간차가 발생할 수 있다. 인터넷 혁명이 실제 기업들의 수익으로 연결되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린 것과 마찬가지 이유다.
거품론의 핵심: 투자와 수익 사이의 시간차
시장 참여자들이 엔비디아와 인공지능 시장의 거품 붕괴를 걱정하는 핵심 이유는 두 가지다. 지금 투자하는 엄청난 돈이 언제 수익으로 돌아올지 불확실하고, 2026년부터 칩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인프라 구축 수요가 정점을 찍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골드만삭스는 2030년까지 데이터 센터 투자에 4조 달러가 투자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MIT 연구에 따르면 기업들의 95%가 인공지능 투자에서 수익 제로를 보고하고 있다. 선두 기업인 오픈AI조차 연간 수십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 중이다. 업계 분석가들은 10% 수익률을 달성하려면 2030년까지 연간 6500억 달러의 매출이 필요하다고 추정하지만 현재 인공지능 서비스 매출은 이 목표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기술혁명 시기엔 '투자 대비 수익 비율'이 벌어지곤 했다. 한 연구·분석에 따르면 19세기 미국 철도 거품은 2 대 1, 2000년대 닷컴버블은 4 대 1이었다. 그런데 현재 인공지능 투자는 6 대 1로 역사상 최악이다. 인프라 투자는 즉각 이뤄지지만 수익 전환까지 긴 시간차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 격차가 거품론의 핵심을 이룬다.
투자-수익 격차보다 더 큰 문제는 위험의 집중이다. 인공지능 관련 주식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시가총액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엔비디아 단독으로 8%를 차지한다. 이는 1974년 이후 최고 수준의 집중도다. 한 곳이 흔들리면 전체 시장이 연쇄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구조이며, 최근 인공지능 거품론이 부각되며 변동성 장세가 이어지고 한국 시장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이유다.
공급 과잉에 대한 염려도 커지고 있다. 엔비디아가 73%의 초고마진을 누리는 가장 큰 이유는 GPU와 고대역폭 메모리(HBM)의 심각한 공급 부족 때문이다. 그런데 이 병목 현상이 2026년부터 해소될 전망이다. 엔비디아 칩 생산의 핵심인 TSMC의 첨단 패키징 생산량이 2026년 말까지 현재보다 4배 이상 늘어날 계획이며, 고대역폭 메모리 역시 SK하이닉스, 삼성, 마이크론이 대폭 증산에 들어간다. 실제로 그래픽처리장치 납기가 11개월에서 2~3개월로 줄어들고 있다.
반도체 시장은 30년간 비슷한 순환 주기를 반복해 왔다. 2017년 D램 호황 후 2년 만에 SK하이닉스의 이익이 급감한 것처럼, 공급 확대가 수요 증가를 앞지르는 순간 가격이 무너진다. 전문가들은 4대 클라우드 기업 중 하나라도 주문을 줄이기 시작하면, 늘어난 공급량 때문에 연쇄적인 가격 붕괴가 시작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핵심 고리에 선 한국의 과제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SK AI 서밋 2025 전시장에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 메모리 HBM3E가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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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총액 4조 달러를 넘어선 엔비디아의 성공이 보여주는 이면에는 인공지능 시대 시장 초집중도의 실체가 있다. 메타, 아마존 등 소수의 클라우드 기업이 엔비디아 매출 대부분을 만들고, 소수 빅테크 기업으로의 시가총액 집중은 반세기 만에 최고 수준이다. 이 집중도가 초고마진을 가능하게 했지만, 한 고리가 흔들리면 전체가 영향받는 구조다.
한국은 이 초집중 구조의 핵심 고리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필수 부품인 고대역폭 메모리 공급을 주도하기에, 엔비디아 호황은 한국 반도체 실적 회복으로 직결된다. 그러나 단일 고객 의존도가 높을수록 취약성도 커진다. 역사는 기술 거품이 터질 때 인프라 공급자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다는 교훈을 보여준다. 철도, 광섬유, D램이 모두 같은 길을 걸었다.
전문가들은 2026~2028년을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투자 대비 수익 실현이 지연되고 클라우드 기업들이 인프라 투자를 줄이면 시장 조정이 시작될 수 있다. 공급 확대와 수요 둔화가 맞물리는 시점이다. 인공지능 관련주 비중이 높고 환율 변동성이 큰 한국 시장은 그 영향을 더 직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장기 전략이다. 엔비디아의 사례가 보여주듯, 진짜 경쟁력은 소프트웨어 생태계에 있다. SK하이닉스와 삼성이 고대역폭 메모리와 파운드리에서 강점을 보이는 것은 중요한 경쟁력이다. 그러나 한국이 소프트웨어 플랫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부품 공급자 지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더 근본적으로는, 이미 체감하고 있듯이, 인공지능 시대는 이전 기술 혁명보다 높은 집중도를 보이며 기업과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뒤처지는 이들을 어떻게 보듬을지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 기술 혁명의 진짜 성공은 사회 전체가 함께 가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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