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현지시간) 유죄 판결을 받은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의 피해자인 애니 파머가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범죄 생존자들을 위한 촛불 추모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언론은 '엡스타인 파일' 이슈를 주로 세 가지 장면으로 소비한다. ▲ 어떤 고위 인사의 이름이 오르내리는지 ▲ 트럼프 대통령이 얼마나 연루됐는지 ▲ 명단 공개가 미국 정치에 어떤 파문을 가져올지다. 한국 언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엡스타인 파일 공개 법안 압도적 가결…트럼프 철권 통치 약화"(YTN), "엡스타인 파일' 공개에 만장일치…'판도라 상자' 열리나"(SBS), "엡스타인에 트럼프 흔들…MAGA 진영 균열"(매일경제) 같은 문구가 반복된다. 초점은 자연스럽게 '누가 정치적 손실을 볼 것인가', '어느 진영이 이득을 볼 것인가'에 맞춰지고, 사건 자체가 정치적 득실의 계산 틀 안으로 끌려 들어간다.
엡스타인 사건에서 언론이 즐겨 비추는 장면들은 늘 화려하다. 고급 별장, 전용기, 유명 인사들이 드나든 사교 모임 같은 장면들이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 뒤에는 전혀 다른 현실이 있다. 10대 소녀들이 끌려갔던 방, 경찰 조사실에서 기록된 진술, 검찰청 회의실에 쌓였던 문건들, 그리고 교도소의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진 이례적 특혜들이다.
엡스타인 사건을 조금만 자세히 보면, 한 사람의 일탈이 아니라 사법제도의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다. 핵심은 세 가지다. ▲ 불기소 합의와 피해자 배제의 문제 ▲ 형량 협상 제도가 계층에 따라 다르게 작동하는 문제 ▲ 사건 이후 제도가 스스로를 방어하는 방식이다.
불기소 합의는 표면상 합법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검찰은 피해자들에게 "수사가 계속 진행 중"이라고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엡스타인 측과 비밀 합의를 조율했다. 합의서에는 엡스타인과 주변 인물들을 향후 기소에서 보호하는 조항까지 들어있었지만, 피해자들은 서명이 끝난 뒤에야 그런 합의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범죄피해자권리법은 피해자가 수사와 기소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듣고 의견을 낼 권리를 보장한다고 말하지만, 연방법원은 "기소가 이루어진 뒤에야 이 권리가 발생한다"고 해석했다. 결국 기소를 하지 않기로 한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권리가 법 조문 속에만 존재하고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형량 협상 제도도 마찬가지다. 이 제도는 피고인의 방어권을 위해 도입됐지만, 실제로는 자원이 많은 피고인에게 훨씬 유리하게 작동한다. 엡스타인 측은 전직 특검, 유명 헌법학자, 정치권 인맥을 가진 변호인단을 꾸려 피해자의 신빙성을 공격하고 수사의 범위를 좁히는 데 집중했다.
검찰 입장에서는 '질 수도 있는 큰 재판'과 '조용히 끝낼 수 있는 합의'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패배는 경력에 남지만, 합의는 '현실적인 선택'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검찰의 재량은 가장 취약한 피해자보다 가장 영향력 있는 피고인의 이해 쪽으로 기울기 쉽다.
사후의 자기방어도 눈에 띈다. 법무부 감찰실은 검찰이 피해자에게 합의 사실을 숨기고 오도한 점을 인정하면서도, "직업 윤리위반이나 부패의 증거는 아니다"라고 결론 내렸다. 한마디로 '매우 나쁜 판단이었지만, 규칙 위반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법원 역시 피해자의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이 사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구조적 문제 대신 다른 곳 향한 언론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국회의사당에서 하원이 제프리 엡스타인 관련 문서 공개에 대한 표결을 시작하기에 앞서 기자들이 생방송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그 결과 피해자의 경험은 '안타까운 일'로만 남고, 제도는 스스로의 해석을 통해 책임을 비켜간다. 법과 제도가 글자로만 존재할 때는 중립처럼 보이지만, 누가 어떻게 해석하고 어디에 재량을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
이번 '엡스타인 파일' 공개 법안은 결국 입법부가 뒤늦게 제도에 제동을 건 조치다. 의회는 행정부와 법무부를 향해 "이 사건을 둘러싼 비밀을 더 이상 당신들만 쥐고 있을 수 없다"고 선언하며 문서 공개를 강제했다. 이는 피해자를 위한 조치이면서 동시에, 사법기관이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입법부가 나서야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엡스타인 사건을 둘러싼 화려한 명단과 정치적 파장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질문은 따로 있다. 왜 그의 범죄는 그렇게 오래 은폐됐는가, 왜 수많은 신호가 있었음에도 사법제도는 가장 약한 이들의 편에 서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사건은 개인의 타락을 넘어, 사법제도가 누구에게 관용을 베풀고 누구에게 엄격해지는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기록이다. 제도는 중립이라는 이름을 쓰지만, 그 안에서 작동하는 선택과 재량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재량은 약자를 향해 더 무겁게, 권력자를 향해 더 가볍게 기울 수 있다. 그리고 이 기울어짐이 지속될 때, 사법제도는 정의의 수호자가 아니라 권력의 방패가 된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구조적 문제를 마주해야 할 순간마다 언론의 시선이 늘 다른 곳을 향한다는 점이다. 사법제도의 작동 원리를 따져 묻는 대신, '이번에는 누구의 이름이 오를까', '어느 진영이 손해를 볼까'를 좇는 관음적 경쟁이 반복된다. 사법 권력의 구조를 들여다보는 대신, 그 사법 장치가 삼킬 다음 먹잇감을 기다리는 구도가 유지된다. 언론이 이 기이한 시선을 주도하는 한, 사법의 병폐는 쉽게 교정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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