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 이재명 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장인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접견에 앞서 국내 기업 대표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젠슨 황, 이재명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연합뉴스
둘째, 내년도 예산안의 핵심은 인공지능(AI)과 연구개발(R&D)로 이에 대한 평가는 사후에 이루어질 것이다.
내년에 국가채무비율이 50%를 돌파한다는 말이 들린다. 이미 여러 번 들어온 이야기다. 2021년 예산안 발표 때 정부는 2022년 국가채무비율이 50%를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2022년과 2023년에도 다음 해에는 50%를 초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반복됐다. 그런데 2025년 현재, 국가채무비율은 여전히 49%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20년에는 2022년에 50%를 넘고, 2024년에는 58%를 초과한다며 국가채무를 걱정했다. 그러나 이제는 2026년에 50%를 돌파하고 2029년에 58%를 넘을 것이라 다시 말한다. '내년에는 50%를 넘는다'는 예고는 매년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두 가지를 시사한다. 일단, 기획재정부의 국가 채무 비율 예측이 지나치게 비관적이라는 점이다. 물론 예측은 틀릴 수 있다. 그러나 틀리더라도 낙관적(+) 예측, 비관적(-) 예측이 번갈아 가면서 틀려야 한다. 항상 부정적 방향으로 틀렸다면, '영점 조절'이 필요하다. 5년짜리 예측이 5년 틀린 것은 지나치다.
국가채무비율이 낮아진 이유는 세입이 늘어서도, 세출이 줄어서도 아니다. 명목 GDP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국가채무를 갚는 것은 우리 후손이 아니라 인플레이션과 경제성장 그 자체라는 의미다. 1970년, 당시 국가 예산의 15%를 투입해 건설한 경부고속도로의 비용은 430억 원이었다. 우리 후손은 430억 원의 빚과 함께 경부고속도로라는 자산을 물려받았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빚을 졌는가'가 아니라 '그 돈으로 무엇을 했는가'다. 그 돈으로 '대왕고래 프로젝트'(윤석열 정부가 동해 심해 에너지 개발을 위해 추진한 대형 국가 프로젝트로 경제성이 없어 중단된 사업) 같은 도박판을 벌였는지, 아니면 경부고속도로를 깔고 컴퓨터를 들여와 이자비용보다 더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냈는지가 핵심이다.
26년도 국가 지출이 가장 많이 확대된 곳은 어디일까? 총지출이 가장 많이 증가한 분야는 통신 분야(31%), 과학기술 분야(19%), 그리고 산업·중소기업및에너지 분야(15%)다(예비비 제외). 10% 이상 증가한 분야는 이것이 전부다. 국가의 한정된 자원을 AI에 10조 원, R&D에 35조 원을 몰아주었다. AI, R&D에 '몰빵'한 지출은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아직은 알 수 없다'가 가장 솔직한 답이다. 내년도 예산은 균등 배분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AI, R&D에 불균등 배분 전략을 택한 셈이다.
이를 투자 전략으로 보면 위험을 분산한 '포트폴리오 투자'라기보다는 차라리 '몰빵' 투자에 가깝다. 그리고 '몰빵 투자'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즉, 위험 감수(리스크 테이킹) 전략이다. 위험 감수 전략은 장단점이 있다. 만일 AI, R&D 투자가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둔다면, 26년 정부 지출은 대단히 현명한 선택으로 평가될 것이다. 반면 AI, R&D 투자가 결과적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26년 정부 지출은 실패한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26년 정부 지출 전략은 이 자체만으로는 평가하기 어려우며 결과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정부의 AI, R&D 투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회와 시민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 예컨대 그래픽처리장치(GPU) 구매를 위한 사업에 무려 2조 원이나 책정되었다.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다는 엔비디아 GPU를 과연 2조 원어치나 구매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예산안 제출 이후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방한해 GPU 26만 장을 판매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GPU 등 고성능 컴퓨터를 돌릴 때 쓰는 데이터센터의 전력은 10~20메가와트(MW) 정도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울산에 100메가와트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지어 GPU 8만 장을 채운다고 해도, 실제 국내 AI 수요가 20메가와트에 불과하다면 최대 26만 장의 GPU 중 상당수는 활용을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은 예산이 있어도 GPU를 사기 어렵다는 점이 강조되어 왔으나, 정작 GPU를 확보하고 나서도 국내에서 제대로 쓸 수 없다면, 결국 GPU는 '그림의 떡'이 아니라 '돼지 목에 진주'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결국, 민·관의 노력을 통해 '그림의 떡' 신세를 면했다면 이제는 제대로 된 AI 수요를 창출할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 내년도 예산안 사업명에 'AI'가 들어간 부처가 무려 24개나 된다. 과연 이 모든 사업이 AI 발전을 위해 편성한 사업일까? 예산을 따낼 수 있는 마법의 키워드로 '표지갈이'한 사업도 일부 섞여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작은 AI 수요나마 창출할 수 있도록 제안을 하나 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복지제도는 무척 복잡하다. 몰라서 활용하지 못하는 복지 권리도 대단히 많다. 우리나라 중앙정부, 지방정부에 흩어져 있는 모든 복지 제도를 설명해주는 '복지 AI'를 개발해보는 것은 어떨까? 나의 소득, 지역, 재산, 필요한 복지를 물어보면 환각 없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복지제도를 척척 설명해주는 복지 AI가 있으면, 몰라서 누리지 못하는 복지 권리를 확대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윤석열 정부와 비슷한 복지예산

▲이재명 정부의 대표적 복지 정책인 통합돌봄 사업은 26년 예산 부족으로 ‘취약지역 의료서비스 확충’이라는 이름으로 축소·변질되었다.
보건복지부
셋째, 복지예산은 윤석열 정부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AI, R&D 지출은 크게 확대한 반면, 복지 분야 지출은 그다지 확대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가 편성한 24년도 총지출 증가율은 2.8%였고, 사회복지 분야 지출액 증가율은 8.7%였다. 내년도 총지출 증가율은 8.1%나 사회복지 분야 증가율은 전년보다 낮은 8.6%다. 총지출 증가율은 거의 세 배 가까이 증가했으나 유독 사회복지 분야 증가율은 낮은 셈이다
우리나라 사회복지 지출의 기본은 기초생활보장 부문이다. 빈곤층에게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 등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그런데 빈곤층의 정의는 중위소득의 50% 이하다. 즉, 우리나라 모든 소득자를 일렬로 세웠을 때 딱 중간에 있는 사람의 소득이 만약 300만 원이면 그 50%인 150만 원 이하를 벌면 빈곤층으로 정의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빈곤층을 위한 생계급여는 중위소득의 50%가 아니라 기준중위소득의 32% 이하를 대상으로 한다.
윤석열 정부 이전까지는 기준중위소득의 30% 이하만 생계급여 대상이었다. 그래도 윤석열 정부에서 32%로 증가되어 생계급여 대상이 확대되었다. 그렇다면 이재명 정부에서는 33%, 35% 등으로 확대되어 중장기적으로는 50%까지는 올리는 로드맵이 필요하다. 유럽국가들은 과거 중위소득 50% 이하를 빈곤층으로 분류하다가 2000년 리스본 정상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중위소득의 60%를 상대적 빈곤선으로 결정하고 각종 복지정책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아울러 의료급여 등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부양의무자 제도 폐지도 시급한 문제다.
이재명 정부의 복지 브랜드는 '통합 돌봄'이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 복지 브랜드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통한 기초생활보장제도다. 박근혜 정부는 기초연금이다. 즉, 김대중 정부가 기초생활보장제도로 '최저선'을 세우고, 박근혜 정부가 기초연금으로 보편적 급여의 범위를 넓혔다면, 이재명 정부의 통합 돌봄은 복지의 지평을 생활권으로 확장하려는 첫 시도로 복지의 목적이 생존에서 생활로 옮겨간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통합 돌봄'은 12개 지자체에서 시범사업으로만 하다가 드디어 26년에 전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전국적으로 확대한다던 통합 돌봄 예산은 불과 777억 원에 그친다. 예산 규모가 적으니 20%의 지자체는 정부 보조금이 0원이다. 내년도 전국 확대를 믿고 통합 돌봄을 준비하던 이들 지자체는 사업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처해있다.
원래 통합 돌봄은 의료뿐만 아니라 주거, 가사, 식사, 이동지원까지 포함된 통합적 재택 돌봄이었다. 노인, 장애인, 질환자 등이 시설에 입소하지 않고 살던 집에서 다양한 돌봄을 받는 게 핵심이었다. 그런데 26년 예산서는 '취약지역 의료서비스 확충'이라는 이름으로 축소·변질되었다. 전국적 통합 돌봄이 취약지역 의료서비스로 축소된 이유는 결국 예산을 충분히 확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AI에는 10조 원을 쓰면서 이재명 정부의 복지 브랜드인 통합 돌봄에는 777억 원만 책정하다 보니 생긴 문제다.
정부는 많은 말을 쏟아낸다. 하지만 예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26년 예산안이 보여주는 이재명 정부의 선택은 분명하다. AI에는 10조 원을 쓰면서도 통합 돌봄에는 777억 원만 배정한 이 예산이 과연 '생활 속 복지'로 나아가려는 정부의 진심을 증명할 수 있을지, 국민은 숫자로 확인할 것이다. 동시에 AI와 R&D에 대한 '몰빵 투자'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 재정 여력 확충 역시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윤석열 정부의 부자 감세에 이어 초부자 감세까지 용인한 채로는 확장재정도, 복지도, 미래 투자도 오래가기 어렵다.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보건복지위 상임위 예비심사에서 통합 돌봄 예산은 증액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예결위 본심사가 남았다. 반면, 배당소득에 대해서는 의견이 모아지지 않고 있다. 확장적 재정과 감세는 재정여력을 줄일 수 밖에 없다. 국회의 합리적 판단을 기대한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본인
필자소개 :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정부 예산서를 분석하는 타이핑 노동자이며 <소셜 코리아> 편집위원입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서, 결산서, 집행 내역을 매일 업데이트하고 분석하는 일을 합니다. 재정 관련 정책이 법제화되는 과정을 추적하고 분석하는 덕업일치 타이핑 노동자입니다. 주요 저서로 <경제뉴스가 그렇게 어렵습니까>가 있고 공저로 <한국의 신복지체제의 재정전략>, <지방의정백과>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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