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행히 정부가 칼을 빼 들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우리 사회 일부에서 인종, 출신, 국가 이런 것들을 가지고 정말로 시대착오적인 차별, 혐오가 횡행하고 있다"라며 "혐오표현에 대한 처벌 장치를 속히 마련하고, 또 허위 조작 정보 유포 행위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엄정하게 처벌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나아가 이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혐오 발언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시간이 18분간 이어졌습니다.
이날 이 대통령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혐오표현 처벌을 위한 형법 개정을 해야 될 필요가 있다"라며 "집시법 개정 문제도 독일이나 해외 입법례를 참고해서 빨리하면 좋겠다"라고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혐중 시위' 등에 대해 엄단하자는 것입니다. 또한 최근 곳곳에 달리는 혐오적 내용의 현수막에 대해서도 제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정훈님, 그런데 저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혐오표현에 대해 대응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는 좋습니다. 다만 '어떻게'가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혐오표현인지 판단할 기준도 확립되지 않은 데다가, 혐오표현을 곧바로 형사처벌할 경우에는 자칫하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약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혐오표현을 형사처벌하게 된다면 박민영 대변인은 (모욕이나 명예훼손이 아닌) 장애인 혐오표현으로 처벌받게 되는 것일까요? 누구도 쉽게 '그렇다'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독일은 형법에 대중 선동죄, 혐오적 모욕죄를 두고 혐오적 표현 등을 처벌하고 있고, 프랑스는 형법 및 언론 자유법에서 또 영국은 우리와 같은 집시법과 비슷한 공공집시법에서 혐오 표현을 처벌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소위 헤이트 스피치를 방지하는 법을 도입하고 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이 국가들은 대체로 차별과 혐오를 규제하는 기본법인 '차별금지법'이 마련된 국가입니다. 유럽연합은 가입 조건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내걸고 있기도 합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일종의 우산 역할을 하는 법이에요. 앞서 말씀드렸듯 후속 입법이 가능하게 하는 기본법이기도 하고요. 현실적으로 모든 영역에서, 모든 사유를 다루는 법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에 어떤 것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으로 규율하고, 노동과 같은 중요한 영역에서는 그 영역에만 적용되는 특별법을 만드는 식으로 전체 체계를 짜는 것이 옳아요. 하지만 지금은 아주 일부 영역에 대한, 일부 사유에 의한 차별만 금지되어 있는, 아주 애매한 법 체계인 상황이죠." - (<채널 예스>, [인터뷰] 홍성수 "차별금지법이 지향하는 것은 평화, 안전, 그리고 공존. 2025.11.13.)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최근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강조한 책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에서 차별금지법의 핵심은 '차별구제'나 '차별시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 책에서 "차별금지법은 차별의 범위를 최대한 넓히는 대신 강제력 없고 유연한 구제 방식을 우선적으로 채택한다"(연성 규제)라고 설명합니다. 이유는 무엇이 차별에 해당하는지 '차별판단'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면서요.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통해 차별과 혐오에 대한 국가의 대응 방안을 법제화하고, 차별 시정기구를 일원화해서 차별금지 정책을 다각도로 펴나가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 과정에서 혐오와 차별이 '인권'을 위협하며 더 많은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서 확대될 수 있고, 형사처벌이 필요한 부문과 그렇지 않은 부문을 파악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런데 정작 강제조치 조항이 없고 대상 영역도 ▲공공 서비스 ▲고용 ▲재화와 용역의 이용이나 공급 ▲교육에 국한된 차별금지법은, "동성애 조장" "종교 탄압" 같은 주장을 하는 보수 개신교계 반대 목소리에 논의조차 못 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보다 더 강력한 조치인 '혐오표현 형사처벌'은 정부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데 말입니다.
홍성수 교수는 논문 <혐오표현의 해악과 개입의 정당성: 금지와 방치를 넘어서>에서 "(혐오표현 규제의) 형사범죄화는 그 기준을 정하기 어렵고, 남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혐오표현을 위축시키는 효과도 미미하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형사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제한적으로 형사처벌 조항을 마련해서 혐오와 차별에 대응하는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는 게 더 나은 길로 보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해서 '시민의 안전' 보장해야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2024년 6월 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22대 국회에서 반드시 제정되어야할 차별금지법에 담겨야할 원칙과 방향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정민
"혐오와 차별에 관한 각종 국제 규범이나 지침들은 정치와 정치 지도자의 역할을 무척 강조한다. 정치가 차별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가 그 사회의 현 상태를 진단하는 시금석인 데다가 정치와 혐오를 극단적인 폭력으로 부추기는 주범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 274p)
윤석열 정부 3년은 국가가 차별을 조장하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혐오를 통한 갈라치기는 '통치 수단'이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마저 '윤석열 방어권 보장'을 권고하는 가운데, 국민들은 국가가 혐오 대응에 나서 줄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려웠을 겁니다. 홍 교수는 "한국은 세계 주요 국가 중 혐오·차별에 대한 공적 대응 수준이 가장 낙후된 나라가 되었다"라고 진단합니다.
정부가 바뀌었지만 혐오는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박민영 대변인의 말과 이를 사실상 감싼 국민의힘의 태도는 징후적입니다. 보수 정치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약한 존재들을 공격하고 희생양 삼으면서 세를 규합하는 전형적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경제 장기 불황 위기 속에서 여성, 이주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엄청난 특혜를 누리는 양 이야기하는 '혐오의 레토릭'은 반복·확산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살기 힘든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나'의 존재를 받아주지 않고, 괴롭힘을 당해도 보호해 주지 않으며, 동등한 시민 대우를 하지 않는 것 역시 사람들을 큰 절망에 빠트리고 생의 의지를 잃게 만듭니다. 지금 당장 시민들의 삶을 지키고, 극우의 팽창을 막기 위한 '차별금지'의 근본적인 틀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것이 차별금지법입니다.
홍 교수는 "차별금지 원칙을 '정치적'으로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 곳곳의 여러 제도와 관행들을 하나하나 바꿔나가야 한다. 평등과 차별금지는 헌법상 대원칙이지만 안타깝게도 그 원칙을 법률 수준에서 재확인하여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이행 계획을 제시한 적은 없다"라며 차별금지법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정훈님, 저는 '차별금지'와 이재명 정부가 내세우는 '실용주의'는 맞닿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차별금지 역시 일상을 안전하게 보장할 수 있는 삶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조국혁신당과 진보당에선 차별금지법 발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실용주의 관점에서 이재명 정부가 차별금지법 논의를 진전시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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