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위한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진행 중이던 2023년 9월 7일, 사회적참사 유가족들과 생명안전 분야 시민단체, 각 정당 국회의원들이 국회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생명안전 의제를 최우선으로 논의하는 국회가 되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유성호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다. 이러한 생명에 대한 권리, 즉 생명권은 비록 헌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다 하더라도 인간의 생존 본능과 존재 목적에 바탕을 둔 선험적이고 자연법적인 권리로서 헌법에 규정된 모든 기본권의 전제로서 기능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헌법재판소 1996. 11. 28. 95헌바1 결정 등)."
헌법재판소는 일찍이 '생명권'은 헌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어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중 받아야 할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고 인정해왔다. 모든 권리 행사의 근본적인 전제가 '생명'이기 때문에, 규정을 두지 않아도 당연히 보호 받아야 할 기본권으로 본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 사회에서 생명이 정말 기본권 중의 기본권으로 보호 받아 왔을까.
한편 '안전'의 경우,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을 비롯하여 관련 법령에서 지키고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명시되기는 했지만, 안전에 관한 권리(안전권)을 보장하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명명되지 못했다. 시민사회에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요구가 계속되고 국회에서 지난 회기부터 입법이 추진되면서 '안전권'을 담고자 함께 논의되고 있지만, '권리'로 법문화되지 못한 상태다. 2018년 개헌 논의가 있을 당시 '안전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담고자 하는 안이 추진되었지만, 실제 개헌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안전은 권리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생명·안전권을 헌법에 담는다는 것의 의미
이 두 물음에 대한 답이 '생명권', '안전권'을 헌법에 담는 것이다. 헌법에 기본권으로 규정을 둔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이를 기본권으로 보고 있다고 '선언'하는 것임과 동시에, 그동안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근본적인 가치보다는 '비용'으로 치부해 왔던 우리 사회에 변화를 주는 큰 계기가 될 수 있다. 모든 법령의 상위법인 헌법이 기본권으로 선언함으로써, 헌법을 수호해야 할 헌법기관인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 모두 이를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천명하는 것이다.
2018년 개헌 논의 당시, 한 언론사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헌법에 담아야 할 기본권 중 '생명권', '안전권'의 응답 순위가 1, 2위를 차지했다. 그동안 많은 재난 참사의 경험에 더하여, 2014년 세월호참사의 경험과 기억으로, 생명과 안전이 권리로 요구되어야 하고 국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보호할 의무를 부담해야 할 대상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반복되는 산업재해와 재난 참사의 교훈으로, 이를 예방하기 위해 만들어진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고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법률'에 근거를 두는 것만으로 국가의 정책 결정, 예산 편성 등 사회가 구조적으로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는 단계에는 반영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이러한 한계는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확인한 헌법재판소의 결정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 생명과 안전에 관한 권리는 헌법상 기본권으로 명문화되지 않고, 침해를 호소할 때 기본권임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다루어져 왔다. 기본권으로서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권리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정책과 제도를 선제적으로 입안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안전이 침해되고 회복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 침해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 문제되는 상황이 되어서야 국가의 의무를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에서 세월호 참사에 관한 책임을 물을 때에도,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장관에 대한 탄핵심판에서 이태원 참사에 관한 책임을 물을 때에도 그랬다. 이들이 국가기관으로서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보호할 포괄적 의무를 부담한다는 점은 인정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의 의무를 부담하는지에 대해서는 세부적인 의무를 모두 부담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에 관한 기본권을 침해한 정도에 이르렀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생명·안전권 헌법 명문화, 새로운 논의의 시작
▲10.29 이태원 참사 3주기 기억식이 지난 10월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의 공동선언문이 낭독되고 있다.
이정민
생명권, 안전권이 헌법에 명문으로 규정된다고 해서, 이러한 판단의 한계가 곧바로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생명권, 안전권의 보호의무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어디까지 헌법에 담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함께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생명과 안전을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담을 것인지 모두 정책결정자의 의지에 맡겨져왔다. 하지만 헌법상 기본권으로 명문화된 이후에는 이에 관한 국가의 의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지금까지 헌법재판소에서 판단해온 보호의무의 기준이 유효적절한지에 대해서도 논의해서 실제 헌법과 법령에 필요한 내용을 담을 수 있게 된다. 동시에 우리 사회가 지금 무엇을 중시하고 지키려고 하고 있는지 분명히 하는 계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필자 소개] 오민애 :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로 노동과 생명안전, 집회·시위 분야와 관련하여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