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구로역 인근 횡단보도에 일감을 구하려는 일용직 구직자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는 모습.
연합뉴스
런베뮤 청년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한 유튜브 뉴스 영상(
스브스 뉴스 '이 순간에도 또 다른 런베뮤는 존재한다') 에 달린 492개의 댓글(11/18 기준)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이 쓴 것으로 보이는 492개의 댓글 하나하나에 다양한 업종의 노동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한 의견도 올라왔습니다.
피부과 간호조무사라고 밝힌 어느 글쓴이는"이렇게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만 알아봐 주는 게 씁쓸하다"라고 썼습니다. 평일 오전 9시 반 출근에 오후 8시 반 퇴근의 '연장근무'가 일상이라던 그는 근무 인원 부족에 점심시간에 밥도 못먹고 일하면서도 욕듣는 게 다반사인 일상을 보냈다고 합니다. 인원 충원 건의는 묵살당했고, 우울과 불안, 공황으로 아파하니 그제야 퇴사시켜 줬다는 가슴 아픈 사연을 꺼내 놓았습니다.
현재 베이커리에서 일한다는 어느 댓글 작성자는 "런베뮤 사태 이후로 달라진 게 있다면 정시 출/퇴근 기록하는 것이 엄청 엄격해졌다"라면서도 "일 안 끝났으면 어차피 퇴근 (기록)만 찍는 거고 집에 못 가지만…."이라며 조소했습니다. 유명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노동자의 죽음에 반짝 이뤄지는 우리 사회의 관심에 "오히려 업무량은 안 줄어도 정시에 끝내야 하니 매일매일이 과로하는 심정"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사무직으로 포괄임금제가 적용된다는 어느 댓글 작성자는 "사무직이니까 편하게 앉아서 일한다는 이유로 주 100시간 일하다가, 월급보다 병원비가 더 나가서 못 견디고 퇴사하니 끈기 없고 책임감 없다고 욕만 먹었다"라며 "그놈의 포괄임금제는 언제 없어지는지?" 라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것으로 보이는 댓글 작성자는 야근 등 초과 노동에 1.5배의 가산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5인 미만 사업장 현실을 언급하며"5인 미만 근로자는 뭐 사람도 아니냐?"라고 분노했습니다. "규모 작은 회사가 일당백 해야 해서 더 바쁜데 각종 규제는 다 빠져나가 버리"는 현실을 지적한 이분의 댓글에는 수십 명이 공감했습니다.
유명 프랜차이즈 편의점에서 풀타임으로 일한다는 30대 청년은 3개월, 11개월씩 쪼개기로 계약하고 있는 현실을 고발했습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대출까지 받아 방을 구했으나 쪼개기 계약 끝에 6개월 만에 전화로 해고당했다는 어느 노동자는, 사업주가 사직서에 퇴사 사유를 '개인 사유'로 적으라고 갑질한 사연을 소개하며 분노했습니다.
방송국·
공공기관도 이 모양인데, 사기업은 말해 뭐하나

▲스브스 뉴스 유튜브 '이 순간에도 또 다른 런베뮤는 존재한다' 영상에 달린 댓글
유튜브 캡처
심지어 방송사나 불합리한 노동 관행을 관리·감독해야 할 정부 기관에서는 제대로 노동법을 지키느냐고 조소하는 댓글도 있더군요.
영상 일을 한다는 어느 댓글 작성자는 "최저임금 받고 무료 야근에 무료 철야 해주는데 야간 택시비도 부담스럽다며 선택적으로 지원해 주는 것이 방송계의 현실"이라며 "무수한 청년들의 고혈을 빨아 굴러가는 업계는 제발 좀 정신 차려라"라고 일갈합니다.
청년 구직자를 상대로 구직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 공공기관에 대해서도 "직업상담사들이 11개월이나 10개월짜리 쪼개기 계약직인 거 사람들은 알라나?"라며 "정부 기관에서도 퇴직금 안 주기 위해 계약직 11개월 하는데 뭐가 바뀌겠니"라며 불신하는 댓글도 있었습니다.
지옥 같은 노동시장의 현실을 생생하게 고발하는 수백 개 댓글의 결론은 대략 이러했습니다.
나라 자체가 거대한 런베뮤다.
'나라 전체가 거대한 런베뮤'라는 댓글을 보면서 정말 우리들의 일터가 위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칩니다. 그렇습니다. 상담하다 보면 지금의 일터에서는 일하는 사람과 일을 시키는 사람, 모두 서로를 불신하며 살얼음 위를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상처받고 일터를 떠나 있는 구직 포기자들의 체념까지 더해지면, 대한민국의 노동시장은 활력을 잃고 표류할 지도 모릅니다. 정부의 고용동향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0월 기준으로 취업자 수는 10만 명 이상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15세 이상 29세 미만의 청년층은 취업자가 16만 명 이상 감소하며 감소 폭이 제일 컸습니다. 취업도 구직도 하지 않으며 "쉬었다"라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30대의 '쉬었음' 인구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7.5% 이상 증가하며 201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앞서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간호조무사는 "자발적 퇴사 후에 칩거, 그리고 이러다 혼자 조용히 죽겠죠?"라며 "다 이렇게 사는데 저만 못 버티는 것 같다"라고 절망합니다. 어느 댓글 작성자는 증가하는 '쉬었음' 청년들에 대해 "사실상 조용히 파업하는 거다"라고, 해석합니다.
소비자가 나서서 산재 일으킨 기업에 제동을
▲정의당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런던베이글뮤지엄 사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정민
문제의 본질은 정대한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보상해 주는 구조를 강제하는 것입니다. 어느 댓글 작성자는 "내가 노동한 대가의 가치조차 인정해 주지 않으면서 청년들한테 워라벨만 챙기려 한다고 꼽주는게(지적하는 것이) 진짜 정떨어지고 오히려 일할 생각조차 없애버리는 듯"이라고 말합니다
공짜 야근을 내포하는 포괄임금제를 원칙적으로 폐지해야 합니다. 노동시간의 객관적 산정이 가능하더라도, 사업장 편의상 포괄임금제를 허용하는 현행 관습을 노동부가 나서서 폐기하고 기본급과 각종 수당 항목의 계산 방법을 명시한 조항을 제대로 지킬 수 있도록 강제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출퇴근 기록의 의무화도 시급합니다.
소비자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앞서 위의 기사 댓글에서는 런베뮤 노동자의 죽음에도 매장에 선 긴 줄을 언급하며, 더 이상 노동자를 갈아 넣는 방식의 경영을 하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을 기업이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소비자들이 행동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 것입니다.
최근의 노동 현실에 대해 정말 어떤 명확한 답도 찾을 수 없어,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수많은 이들의 댓글을 한참이나 살펴봤습니다.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 살며 안타깝게 죽어간 어느 청년 노동자를 기리고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해준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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