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의료급여 개악 철회, 기준중위소득 현실화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현재 신청주의는 줄어들고 복지급여는 자동지급의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빈곤가구에 대한 실질적 보호를 위해서는 선정기준완화와 신청절차 간소화 등 많은 제도적 개선이 요구된다.
빈곤철폐를위한사회연대
노 박사는 공공부조의 사각지대 해소에 자동지급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사각지대 해소와 관련한 전통적인 접근이 효과를 별로 거두지 못했다고 말한다. 즉,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전통적인 대응 방식은 시민의 권리의식을 높여 신청률을 제고하고, 선정기준을 완화해 문턱을 낮추는 것이다. 또한 신청 절차를 단순화해 신청 부담과 낙인감을 줄이고, 공동체와 사회복지 담당자의 개입을 강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청주의를 전제로 한 개혁의 성과는 크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노 박사의 말대로 정말 전통적인 접근을 해왔나? 아울러 시민의 권리의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 왔나?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 사회는 공공부조 수급자를 잠재적 부정수급자로 낙인화하고 부정수급 색출을 위해 공공부조 행정의 전산화를 가속화해왔다.
또한 선정기준을 완화해 문턱을 낮추는 노력을 해왔는가?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근로능력심사와 장애심사를 엄격화하고 기준중위소득의 현실화를 지속적으로 미루어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와 반대방향으로 선정기준을 엄격화해온 것도 사실이다.
생계급여에서도 부양의무자 기준은 폐지된 것이 아니라 금액이 상향조정된 것이어서 현장에서는 예외적으로 확인해야 할 것을 상시적인 확인절차처럼 운영하는 사례도 존재하는데 이 문제는 반드시 현장실무차원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가진 복지억제기조와 부정수급 의심기조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고 봐야 한다. 또한 신청절차를 단순화해 신청부담과 낙인감을 줄여왔는가? 공동체와 사회복지 담당자의 개입을 강화해왔는가? 신청절차는 점점 더 복잡해졌고 사회복지공무원의 재량을 점점 더 줄여왔다.
우리 사회는 노 박사의 말처럼 전통적인 접근을 위해 노력해 왔다기보다 사회복지공무원의 규모를 어떻게든 늘리지 않으려 하고 공공부조에 투입되는 자원을 어떻게든 줄이려 하며, 공공부조 수급자들을 부정수급자로 의심하여 부정수급을 차단하는 데 온갖 노력을 더 경주해 왔다. 즉, 오프라인 전달체계를 늘리는 노력에 대해서는 대단히 인색한 정책기조를 펴왔고 그 공백을 온라인 전달체계와 전산화로 메워온 것이다.
온라인 전달체계의 최종판이 복지부가 47종에 달하는 각종 정보를 활용하여 사각지대 위험대상자를 선정한 다음 이 정보를 시·군·구에 뿌려주는 '헬리콥터 복지행정'이다. 이 헬리콥터 복지행정은 2014년 2월에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한 이른 바 '송파 세모녀법' 중 하나로 제정된 사회보장급여법에 의해 도입된 것으로 이른바 '발굴주의'에 기초한 것이다. 사회보장급여법이 처음 시행되던 2015년 당시 복지부가 활용한 정보는 23종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무려 47종으로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그렇게 늘어난 정보를 활용해 사각지대 위험대상자를 선정해도 그것이 실제 급여수급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매우 적다. 실제로 2015년부터 2022년까지 52만 명이 위기가구로 발굴되었지만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연결된 경우는 2.4%, 긴급복지로 연결된 경우는 1.3%에 불과하다. 사회보장급여법에 의한 발굴은 사실상 신청 절차를 제거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이것이 가져온 효과는 매우 저조하며, 빅데이터에 기초한 전산화의 결과는 매우 초라하다.
수급자격요건 완화 등 제도개선이 우선해야
헬리콥터 복지행정에 의한 전산화를 통해 신청 절차를 '제거'해도 까다로운 수급자격요건을 '제거'하지 않으면 발굴은 단순히 발굴에만 그치고 말 것이다. 실제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본격적으로 늘어난 것은 부양의무자 기준이 완화되면서부터이다. 이는 헬리콥터 복지행정을 통한 발굴이 아니라 실제 수급자격요건을 완화한 제도개선이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증상과 본질을 혼동하고 증상을 본질로 진단하면 잘못된 해결책을 내게 된다. 바로 위에서 본 발굴주의에 기초한 헬리콥터 복지행정이 그 대표적인 예이며 10여 년 전에 있었던, 이른 바 '맞춤형 급여'로의 개편도 그 대표적인 예이다. 맞춤형 급여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수급자가 되면 모든 급여를 주는 '통합급여' 방식인 것과 수급기준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아무 급여도 주지 않는 이른바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급여방식인 것을 문제의 본질로 보았다.
하지만 이는 기초보장제도의 본질에 대한 잘못된 진단이다. 기초보장제도는 수급자가 되면 그에게 최저생활에 필요한 모든 급여를 주는 임무를 수행하도록 우리 사회가 합의하여 만든 제도이다. 즉, 우리 사회가 통합급여를 하라고 임무를 부여하여 만든 제도가 기초보장제도이다. 따라서 기초보장제도가 통합급여를 하는 것은 원래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기초보장제도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필요한 급여를 제공하는 것은 기초보장제도가 아니라 다른 복지제도가 할 일이다.
우리 사회는 그 다른 복지제도를 만들지 않았다. 그리고선 수급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줄 급여도 마련하지 않고서는 그 책임을 모두 엉뚱하게도 기초보장제도에 전가했다. 복지억제기조에 의해 기초보장 수급자에 견줘 소득이 약간 높은 저소득층을 보호할 줄 복지제도를 만들지 않은 것이 문제인데 그것을 기초보장제도의 문제인 것처럼 프레임화했던 것이다.
맞춤형 급여로 개편된 지금 통합급여는 그대로 존재한다. 생계급여 수급자에게는 생계・의료・주거・교육급여가 통합적으로 전부 제공된다. 다만 그 선정기준이 낮아졌을 뿐이다. 그래서 통합급여의 작동수준이 낮아진 것이다. 결국 이른바 맞춤형 급여에서 선정기준은 그 이전의 기초보장제도와 별반 다르지 않아 맞춤형 급여는 사실상 실패했다. 빈곤단체는 이러한 맞춤형 급여를 두고 '다리 아픈 환자의 목에 깁스를 채운 격'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본질과 증상을 혼동한 정책대안은 이처럼 잘못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본질과 증상을 혼동하고 증상으로 본질을 해결하려는 접근은 전형적인 실용적 접근이자 기술결정론적 접근이다. 실무차원의 원칙인 신청주의에 주목하여 탈신청주의를 외치는 것 역시 기술결정론적 접근이다. 이것은 기초보장의 본래적 목적, 즉 최저생활보장 목적의 실현을 위한 제도 개선이라는 본질을 놓치게 할 우려가 있다. 증상으로 본질을 해결하려는 기술결정론적 접근은 자칫 '다리 아픈 환자 목에 자동으로 두르는 깁스를 주는 것'과 유사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본인
필자소개 : 남찬섭은 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책임연구원과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참여정부 시절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및 양극화민생대책본부의 전문계약직 공무원을 거쳤습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제5차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 위원, 한국사회정책학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현재는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의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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