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13 09:56최종 업데이트 25.11.1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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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차 지방시대위원회 회의, 발언하는 김경수 위원장김경수 지방시대위원장(오른쪽 두 번째)이 지난 9월 30일 세종시 지방시대위원회에서 열린 제22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5극3특 국가균형성장 추진전략'에 관해 논의한다.연합뉴스

IMF 외환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김대중 정부는 지방분권과 지역발전의 기초 구상을 세웠다. 경제위기 극복과 동시에 국민통합을 위해 수도권과 충청·호남을 잇는 서해안고속도로, 영호남을 연결하는 남해안 관광벨트를 추진하며 지역 간 단절을 메웠다. 이러한 사업들은 단순한 인프라 확충이 아니라, 분열된 국토를 다시 잇고 국민통합을 이루려는 정치적 결단의 상징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균형발전을 국정의 핵심철학이자 국가운영의 기본축으로 처음 제시한 정부였다. "모든 지역이 골고루 잘사는 나라"라는 비전을 내걸고, 행정수도 이전·혁신도시·기업도시를 본격 추진했다. 수도권 일극체제를 넘어 다극형 국토로 전환하려는 이 실험은 대한민국 공간정책사에서 가장 대담하고 진전된 시도였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균형발전의 제도화'는 바로 이 시기의 결실이다.

문재인 정부는 "전 지역이 고르게 잘 사는 나라"를 국정비전으로 내세우며 도시재생 뉴딜과 혁신도시 완성에 힘을 실었다. 2019년까지 1차 공공기관 이전이 마무리되면서 전국 10개 혁신도시가 자리 잡았고, 이들 도시는 지역혁신의 거점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집중은 오히려 심화되었다. 주택가격 급등과 지방소멸이 동시에 진행되며, 국가의 지속가능성 자체를 위협하는 구조적 위기로 번지고 있다. 균형발전이 더 이상 지역정책의 한 축이 아니라, 국가 생존의 문제로 인식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재명 정부는 이러한 역대 정부의 균형발전 철학을 잇되, 그 미완의 과제와 현실적 위기를 동시에 안고 출범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균형의 꿈'을 이어받고, 문재인 정부가 다져놓은 혁신거점을 토대로 이제는 '국가 지속가능성의 해법'으로서의 균형성장을 완성해야 하는 숙제를 마주하고 있다. 그 핵심이 바로 22년 만에 다시 추진되는 제2차 공공기관 이전이다.

1차 공공기관 이전의 추진과정

2003년 여름, 대구의 한 연단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균형발전"을 선언했다. 그 한 문장이 대한민국 국토정책의 흐름을 바꾸었다. 이른바 '대구 구상'으로 불린 이 선언은 1차 공공기관 이전의 서막이자, 수도권 일극체제를 넘어서는 첫 도전이었다.

정부는 곧바로 전국을 돌며 이전 희망지역 조사와 정책설명회, 노조·직원 공청회를 거쳤고, 중앙정부와 시·도지사는 중앙-지방 기본협약을 체결했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이 '협의와 참여의 방식'으로 추진된 첫 사례였다.

2005년 6월,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공공기관 지방이전계획'이 확정되었다. 수도권과 신행정수도권(충청·대전)을 제외한 12개 광역시·도를 대상으로, 지역의 발전 수준과 산업 구조, 기관 기능의 유사성을 종합 고려해 배치가 이루어졌다.

정부는 형평성과 효율성의 두 원칙 아래, 지역의 발전 수준에 따라 이전 규모를 달리하고, 유사한 기능의 기관들은 가능한 한 같은 권역에 묶어 배치했다. 이는 이전 효과를 극대화하고, 지역산업과의 연계를 높이기 위한 설계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 행정수도 이전이 백지화 위기에 놓이면서 공공기관 이전 역시 흔들렸지만, 균형발전을 지키려는 지역사회의 강한 반대와 여론의 압력으로 결국 계획은 유지되었다.

결국 노무현 정부가 확정한 '공공기관 지방이전계획'이 차질 없이 집행되었고, 이 과정은 균형발전이 단순한 지역정책을 넘어 국가정책의 지속성이라는 원칙 아래 작동해야 함을 보여준 사례로 남았다.

이러한 정책적 일관성 속에서, 2005년 기준 수도권에 있던 346개 공공기관 중 176개 기관이
10개 혁신도시인 강원(원주), 충북(진천·음성), 경북(김천·대구), 울산, 부산, 경남(진주), 전북(전주·완주), 전남(나주), 제주(서귀포)로 이전하도록 결정되었다.

이후 기관 통폐합 과정을 거쳐 2019년까지 153개 기관, 약 5만 2천 명이 10개 혁신도시와 세종시 등으로 이전을 완료하며 1차 공공기관 이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혁신도시의 성과와 균형발전의 의미

1차 공공기관 이전은 단순한 행정 재배치가 아니었다. 지방을 지탱할 새로운 인구와 산업의 기반을 만들어낸, 국가균형발전의 분수령이었다.

혁신도시는 지역의 인구방파제 역할을 해냈다. 2024년 말 기준 주민등록 인구는 23만6천 명, 계획대비 88.3%를 달성했고, 2017년보다 약 6만 명 늘었다. 수도권 인구 비중이 5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됐던 시점을 8년 늦춘 것도 바로 이 정책의 결과였다.

또한, 지역인재 채용목표제를 통해 지방대학의 우수한 인재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얻는 선순환이 만들어졌다. 2024년 현재 지역인재 채용률은 41.5%로 법정 의무비율(30%)을 크게 상회한다. 혁신도시가 지역청년의 '출구'이자, 지방대학의 '숨통' 역할을 해온 것이다.

산업 측면에서도 성과는 뚜렷하다. 나주로 이전한 한국전력을 중심으로 337개 에너지기업이 집적되며 '에너지 밸리'가 조성됐다. 2022년 개교한 한국에너지공대(KEPCO)는 AI 기반 에너지관리와 신재생기술 연구를 선도하며, 산학연 협력의 중심축이 되었다. 전남은 이제 '대한민국의 에너지 수도'로 불린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만으로 혁신도시를 완성된 모델이라 하기는 어렵다. 1차 공공기관 이전의 목표는 단순한 기관 이전이 아니라, 공공기관을 매개로 한 혁신도시 건설이었다.

그러나 다수의 혁신도시가 지역 내 앵커기업의 동반 이전과 산학연 클러스터 형성에 실패하면서,
'기업도시·대학도시'로 발전하지 못한 채 행정기능 중심의 구조에 머물고 있다. 교육·의료·생활 인프라 등 정주 여건의 부족도 여전히 지역 주민이 체감하는 가장 큰 한계로 지적된다.

결국 물리적 이전만으로 균형발전이 완성될 수는 없다. 원도심 공동화, 정주여건의 한계, 지역대학과 기관의 연계 부족은 여전히 남은 과제다. 1차 이전이 '균형발전의 기초공사'였다면, 이제는 그 위에 사람이 머무는 도시, 삶이 이어지는 도시를 세워야 한다.

2차 공공기관 이전, 국가균형성장의 재시동

이재명 정부는 이러한 역사적 경험 위에서 출발했다. 국정과제에 '공론화 과정을 거친 2차 공공기관 이전 추진'을 명시하고, 올해 하반기부터 수도권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이어 2026년에는 이전 로드맵을 수립하고, 2027년부터 본격적인 이전 절차에 착수하겠다는 일정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2차 공공기관 이전은 단순한 기관의 물리적 재배치를 넘어야 한다. 지역 전략산업과 연계된 성장형 이전, 즉 '균형성장의 엔진'을 심는 작업이 돼야 한다.

성공의 조건은 세 가지다.

첫째, 대통령의 확고한 리더십과 중앙·지방 간의 공동 추진체계가 다시 작동해야 한다. 1차 이전이 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 내각, 그리고 지역 시민사회의 연대가 만들어낸 결과였듯이, 이번에도 범정부적 추진동력이 필요하다.

둘째, '5극 3특 발전전략'과 연계해 이전의 중심을 기관이 아니라 지역의 성장에 두어야 한다. 이전은 지역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전략산업과 기업 생태계 조성의 필요성에 따라 추진되어야 한다. 즉, 공공기관이 산업의 중심이 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의 성장동력에 맞춰 필요한 기관이 함께 배치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셋째, 혁신도시의 정주여건 개선에 확실한 진전을 이뤄야 한다. 1차 이전 당시 혁신도시는 인구 3만 명 안팎의 소도시로 설계된 한계 속에서 출발했다. 그 결과 교통·교육·의료·문화·주거 등 생활 인프라가 여전히 부족하다. 이제는 단순한 인프라 보완을 넘어, 사람이 머물고 가족이 살 수 있는 도시, 즉 '삶의 기반'을 완성하는 데 국가의 역량을 모아야 한다.

2차 공공기관 이전의 목표를 혁신도시의 완성으로 분명하게 하자. 혁신도시는 더 이상 지도 위의 행정 구역이 아니라, 공공기관이 자리 잡고 기업이 성장하며 사람이 살아가는 '국가균형발전의 현장'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 길 위에 대한민국의 다음 20년이 있다.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균형성장

국가균형발전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수도권 과밀과 지방소멸이 동시에 진행되는 현실에서, 균형발전은 국가의 생존 전략이자 지속가능성의 조건이다.

22년 전의 공공기관 이전이 지역균형의 불씨를 지폈다면, 이제 2차 이전은 그 불씨를 국가성장의 불꽃으로 키워내야 할 때다.

이재명 정부가 맞닥뜨린 숙제는, 단지 과거의 정책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김이탁교수포럼 사의재

*필자소개 : 김이탁 교수는 대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회 5극3특 특위 위원이자 경인여자대학교 항공서비스학과 겸임교수이다. 문재인정부 국토교통비서관, 국토교통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 상임위원, 도시재생기획단장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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