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2035 NDC) 대국민 공개 논의 공청회에서 본인을 농민이라고 소개한 참석자가 의견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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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다른 사람들 또한 무심하게 수많은 문을 닫으며 삶을 꾸려나갔을 것이다. 인류의 번영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변호하며, 혹은 말이 통하지 않은 인간 외의 생명체와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 변명하며. 마치 내가 나의 작은 고양이를 방에서 몰아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사는 집이 지구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애초부터 집은 인간만의 공간이었다고 할 수는 없을 노릇이다.
편안하고 안전한 방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인간들도 모두는 아니다. 모두가 사는 집을 어떻게 운영해 나갈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들은 일부에 불과하다. 엉뚱하게도 가장 취약한 존재들부터 문밖으로 쫓겨난다. 혹은, 이미 태어났을 때부터 문밖에서 태어나는 이들도 있다.
11월 6일, 나는 100명이 넘는 사람들과 함께 국회의사당 본청 계단에 서 있었다. 그날은 정부가 주최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NDC) 공청회가 있던 날이었다. NDC는 국제사회에 우리나라가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온실가스를 감축할 것인지는 보여주는 계획이자, 산업과 노동,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DC 결정 과정에서 각계각층의 의견이 균형있게 반영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공청회의 13명의 발제자와 토론자 중 여성이 단 2명에 불과했고, 생활과 돌봄, 여성노동의 영역이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으며, 공청회 직후 기자회견에서는 지금의 계획이 농민의 삶을 배제하고 있다는 당사자의 발언이 이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NDC는 전 세계 시민들이 지켜보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서 공식 발표될 예정이다. 그러나 2035년 NDC로 정해진 수치인 2018년 대비 53~61% 감축 목표가 국제사회의 기준에 부합하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국제사회는 61.2%를 전 세계 평균 감축률로 보고 있으며, 이는 한국이 정한 NDC 상한선보다도 높은 수치이다. 특히,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격히 증가하여 '기후 악당 국가'로 불리고 있는 한국은 전 세계 평균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이 '범위형 목표'는 65% 이상을 요구했던 시민사회의 요구와 48% 감축도 어렵다는 산업계의 요구가 첨예하게 대립한 결과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산업의 현실'이라는 말로 유예되거나 심지어 후퇴했던 순간도 존재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NDC 범위 중 하한선만이 사실상의 진짜 목표로 여겨질 확률도 높다. 결국 NDC는 농민의 이야기도, 여성의 이야기도, 기후재난에 취약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아닌 산업계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반영한 형태로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문을 여는 방법
▲정부가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2035 NDC)를 발표한 지난 6일 국회에서 기후위기비상행동이 개최한 시민집중 행동에서 참석자들이 정부의 중장기 탄소 감축률 65% 수준 설정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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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유엔은 보고서를 통해 기후위기가 곧 경제위기와 이어진다는 것을 인정했다. 기후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면 2100년도까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0%, 평균소득의 23%가 줄어들 것이다. 낮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은 산업계의 현실에 부합하는 것일지는 몰라도, 산업계의 미래를 파괴하는 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다.
한쪽의 이야기만이 과다대표된 채 지구를 위한 결정이 매번 이루어진다면, 파괴되는 것은 산업만은 아닐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에 포함되어야 하는 것은 '모두'여야 하며, 이 모두에는 기후위기 시대 안전한 문 바깥에서 태어날 수밖에 없는 미래 세대와 충분히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못했던 이들, 기후위기와 기후재난에 가장 취약한 계층이 포함되어야 한다. NDC 이후 우리가 집중해야 할 논의는 감축 수치만이 아니라, 목표를 함께 만들어갈 이들의 참여를 어떻게 제도적으로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현실론을 근거로 한 '범위형'이라는 타협적인 NDC 결정은 아쉬운 일이지만, NDC가 기후위기 대응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가 열 수 있는 문은 생활과 노동, 산업과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산업계 요구가 지나친 우선권을 가지는 현 상황을 바꾸고, 각 영역에서 민주적 절차와 시민 참여를 강화하도록 요구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는 오래된 말을 믿으며 변화를 요구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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