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5일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서 연 11차 범시민대행진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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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1조 ②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공화국의 핵심 운영 원리인 국민주권주의를 명시한 것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의 위임을 통해서만 정당성을 얻는다는 것을 뜻한다. 대통령, 국회, 법원 같은 국가기관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기관일 뿐, 주권의 소유자인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권력 행사는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1조 ②항에서 국민은 주권의 소유자와 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주체로만 호명될 뿐, 권력을 실제로 행사하는 주체로서의 국민은 빠져있다. 국민주권 원칙이 형식적 선언을 넘어 실질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국민을 국가권력의 행사자로서 자리매김하는 규범적 보완이 필요하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국민이 주권의 행사자"가 된다는 원리는, 대의제도가 사회 구성원의 다양성을 실질적으로 반영할 때 비로소 구현된다. 성별은 사회 구성원을 나누는 가장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구분이므로, 이러한 차이가 대표성에 동등하게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헌법 제1조 ②항은 '국민'을 추상적인 전체로 규정하지만, 현실 정치에서 그 '국민'은 오랫동안 남성으로 이해되었고, 그 결과 남성이 초 과잉으로 대표되는 현실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구조를 근본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남녀 동수 대표성의 헌법적 보장을 통해 국민 전체-여성과 남성-이 국가권력의 구성과 운영 과정에 동등하게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는 여성을 보호나 모성의 범주에 한정하는 기존의 관점을 넘어,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주권적 국민으로 자리매김하는 헌정적 전환을 의미한다.
헌법 제25조 공무담임권에 가려진 권리, 피선거권
정치적 기본권은 민주정치에서 국가권력의 형성 및 운영에 대한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권리로서, 헌법 제1조 제2항이 선언한 국민주권 원리를 실질적으로 실현하는 핵심적인 기제이다. 이러한 권리가 보장될 때 민주주의는 단순히 절차적 제도를 넘어 국민이 주권을 실제로 행사하는 체제로 작동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정치적 기본권은 국민을 형식적 주권자가 아니라 실질적 주권자로 만드는 제도적 장치이다.
우리 헌법은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서 표현의 자유(제21조), 집회·결사의 자유(제21조), 선거권(제24조), 국가 공무담임권(제25조), 국민 청원권(제26조) 등 다양한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선거권과 공무담임권(피선거권)은 국민이 직접 대표자를 선출하고, 나아가 스스로 대표자가 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국가권력의 형성과 운영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하는 핵심적인 정치적 기본권이다. 즉, 선거권과 피선거권 보장은 국민을 형식적 선언적 주권자가 아니라 국가권력의 구성 주체로서 참여하여 실질적 주권자로 서게 하는 민주주의의 핵심적 조건이다.
우리 헌법에서 선거권은 제24조에서 독립된 기본권으로 명시되어 있는 반면, 피선거권은 제25조의 공무담임권에 포함된 권리로 해석된다. 다시 말해, 피선거권은 헌법상 별도의 조문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 결과 피선거권이 실질적으로 제한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이 '대표를 선출할 권리'만이 부각되고, 국민이 대표자로서 국가권력의 형성에 직접 참여할 권리, 즉 '대표가 될 권리'는 헌법상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한계를 지닌다. 이로 인해 국민주권의 실질적 구현에서 대표성을 구성하는 주체로서의 국민은 상대적으로 약하게 자리매김하게 된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5조는 "대한민국의 인민으로 공민 자격이 있는 자는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있음"이라고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대표를 선출할 권리'만이 아니라 '대표가 될 권리'까지 분명하게 보장하였다. 이어서 '임시의정원법' 제2조에서는 의원의 자격은 '중등교육을 받은 만 23세 이상의 남녀'라고 규정하여, 비록 교육을 기준으로 피선거권을 제한하긴 했지만, 성별에 따른 차별을 두지는 않았다. 이는 여성이 포함된 보편적 시민권을 선언한 점에서 그 시대를 앞선 규범이었다.
그런데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 피선거권을 공무담임권에 암묵적으로 포함된 권리로 다루는 것은, 당시 임시헌장이 보여준 역사적 진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피선거권을 독립된 기본권으로서 명시하고, '대표가 될 권리'가 국민 모두에게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함을 헌법에 분명히 규정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성별에 따른 동등한 대표성 보장을 국가의 헌정적 책무로 선언할 필요가 있다.
동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헌법 개정 방향

▲2018년 3월 19일, 여성단체들이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여남 동수 개헌',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정치 참여 보장'을 요구하며 성차별 해소를 위한 개헌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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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헌법은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선언하고, 국민주권 원칙과 평등권, 참정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정치적 대표성에서의 성별 불균형을 해소할 실질적 근거와 제도적 장치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국민주권의 실질적 구현과 성평등한 정치적 기본권 보장을 위해 다음과 같은 헌법 개정 방향을 제안한다.
① 헌법 제1조 제3항 신설
국가 정체성과 국민주권주의를 천명한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국가의 모든 영역에서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참여를 보장한다"는 제3항을 신설하는 안이다. 이는 단순한 권리의 확장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헌법적 원리와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선언이다. 즉, "대한민국은 남녀가 동등하게 대표되는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정 질서를 명문화한 것이며, 이를 통해 남녀 동수는 일시적 정책이 아니라, 모든 제도와 정치 관행에 적용되는 헌법적 기준이 된다. 프랑스 헌법은 남녀 동수 대표성 조문을 1조 2항에 두고 있다.
② 헌법 제8조 정당의 책무 조항 보완
정당의 책무를 규정한 헌법 제8조에 "정당은 모든 공직선거 후보 추천에 있어 남녀 동수를 보장한다"라는 문구를 명시하는 안이다. 이로써, 후보 공천의 성별 균형은 정당의 자율이 아닌 헌법적 책무로 전환된다. 이는 멕시코 헌법(2014년 개정)에서 "정당은 후보자 명부의 성별 동수(paridad)를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한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③ 헌법 제11조 평등권 조항 보완
헌법 제11조 제1항에 "국가는 성별에 따른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 조치를 취하며, 모든 영역에서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참여를 보장한다"는 내용을 추가하는 안이다. 이는 평등권을 단순한 차별금지 규정에서 벗어나, 실질적 성평등 실현을 위한 적극적 조치와 남녀 동등 대표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국가의 책무로 재구조화하는 것이다.
④ 헌법 제24조 개정 및 제2항 신설
선거권만을 규정하고 있는 현행 헌법 제24조를 2항 구조로 개편하여, 제1항에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한 바에 의하여 선거권 및 피선거권을 가진다"는 점을 명시하고, 제2항에는 "법률은 선출직 공직에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대표될 수 있도록 필요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야 한다" 는 조항을 신설하는 안이다. 이를 통해 국민 모두에게 '대표가 될 권리'가 헌법적으로 명확히 보장되고, 선출 공직에서의 남녀 동등 대표성을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다.
[필자 소개] 김은주 : 헌법개정여성연대 공동대표이자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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