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8일 927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 주최로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927기후정의행진 선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927기후정의행진 의미와 계획를 발표하고 있다.
이정민
지난 9일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35년 국가 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53~61%로 정하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고 한다. 앞서 6일 마지막 공청회에서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50~60%"와 "53~60%" 두 안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면서 산업계가 48% 감축도 버겁다고 호소했다며, 현실적 선택이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현실'은 산업계의 현실이지, 기후 과학의 현실은 아니다.
인간 사이엔 타협이 있지만, 과학과는 타협을 할 수 없다. 예컨대 '에너지는 형태를 바꿀 뿐 생성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는 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인간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기에, '산업계는 내일부터 에너지를 생성하기로 한다'는 법을 만들어 에너지를 생산할 순 없는 일이다. 기후 과학도 마찬가지다. 2035년까지 온실가스감축목표를 50%나 53%로 낮게 설정할 경우, 지구는 생존 한계라 할 수 있는 평균 기온 상승 2도를 (상당히 높은 확률로) 넘어설 것이라는 결과만이 주어질 것이다.
사실 53%는 감축 목표라 할 수 없다. 왜냐면 제도를 고안한 목적(적절한 생존 범위로 온도 상승을 제한하는 것)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제연합(UN)이 설립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세계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과학적 평가 및 권고를 제시하는 국제기구)가
발표한 1.5°C 달성 경로(SSP1-1.9)(매우 낮은 온실가스 배출을 가정한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르면 2050년 순배출 '0', 2035년까진 2019년 대비 60~65% 온실가스 감축을 달성해야 1.5도 제한이 가능하다.
그런데 한국과 같은 선진국(
한국의 1인당 배출량은 세계 3위)들이 2035년까지 50%만 감축할 계획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렇게 세계 총량이 50% 감축을 이룬다면 그에 가장 가까운 시나리오(SSP1-2.6, 재생에너지 확대, 화석연료 사용 최소화 등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사회로 전환하는 미래를 가정하는 시나리오)상 2100년 온도 상승은 1.3~2.4도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저개발국과 개발도상국은 '대량 배출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룬 선진국들이 50%를 하겠다는데 왜 아직 배곯는 우리가 같은 감축을 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할 것이다. 이들을 제외하고 선진국만 50% 감축할 경우에 가까운 시나리오(SSP2-4.5, 온실가스 감축과 사회경제적 발전이 중간 수준으로 진행되는 미래 시나리오)상, 2100년 온도는 2.1~3.5도 상승한다. 즉, 개발도상국 동참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50% 감축 목표에 따라 전개될 시나리오는 2도와 3도 사이 어디쯤이 될 가능성이 크다.
2100년까지 2~3°C 상승 경로를 따른다면, 극한 폭염은 지금보다 4~6배 이상 잦아지고, 남아시아와 중동 지역에선 인간이 생리적으로 버틸 수 없는 온도(습구온도 35°C)가 출현한다. 해수면은 최대 1미터 상승하며, 세계 곡물 생산량은 평균 10~20% 감소한다. 해양 생물의 25%가 의존하는 산호초는 99% 이상 절멸할 것이다.
경제 성장 위해서도 기후 위기 대응 절실

▲2016년 9월 21일 뉴욕시 유엔 본부에서 열린 유엔 파리협정 발효 행사에서 미국 국무장관 존 케리가 연설하고 있다. 파리협정은 2015년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채택된 국제적 기후변화 대응 협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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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경제를 발전시키고 싶다면 기후 위기 대응부터 힘써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세계가 파리 협정(2015년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채택된 국제적 기후변화 대응 협약으로,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참여해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보다 훨씬 낮게 유지하고,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목표로 함) 온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2050년까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7~10%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했다.
한국은행은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않을 경우 금융기관들이 볼 손실이
45조 원이 넘을 것이라고 계산했다. 식량 생산이 급감하고 생물 종들이 멸종해 나가는 세계에서 경제가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다.
최근 온실가스가 지구 평균기온 상승과 개별 재난의 강도·빈도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를 정량적으로 밝혀내는 '기후 영향 귀속과학(attribution science)'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과거에는 기후변화가 '재난의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이번 폭염이 인간의 배출로 인해 최소 4배 더 강해졌다'는 식의 구체적 인과관계를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동시에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전향적인 '기후 헌법 소송'(2024년 8월 29일, 헌법재판소는 정부의 '탄소중립 및 녹색성장 기본법' 일부 조항이 국민의 환경권 등 기본권을 과소하게 보호했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바 있다)이 보여주듯, 기후 책임에 대한 법 체계 역시 빠르게 갖춰지고 있다.
이 두 가지가 결합해, 지난 여름 발생한 열병, 또는 가을의 수해 등의 재난에 대해 어느 기업이 얼마의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물을 수 있게 되었다. 기업으로선 목표를 낮게 잡아 배출하고 나중에 배상하기보다, 도전적으로 잡고 배출 저감에 빨리 적응하는 게 남는 장사다.
전환 늦추면 더 큰 대가 돌아와
어떤 이들은 미국과 중국이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이 나서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한국의 세계 온실가스 배출 비율이 1.4%에 불과한데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논리다. 한국의 세계
GDP 비중은 1.6%에 불과한데, 그럼 경제 활동을 해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과 비슷한 논리인 셈이다. 기후 대응에 있어 어느 누구의 행동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협약 탈퇴를 선언했지만, 미국 지역 정부와 기업 등은 연방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기후 대응을 약속하고 있다.
오히려 65%와 같은 적극적인 감축 목표를 상향함으로써, 기업의 기술혁신과 녹색금융 투자(지속가능한 발전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금융전략)를 촉진하고 미래 산업경쟁력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다. 세계 주요국은 감축목표를 신성장 전략의 축으로 삼고 있다. 유럽연합은 '그린딜 산업전략'을 통해 산업정책과 감축정책을 통합했고,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대규모 기후 투자를 통해 산업과 일자리를 재편하고 있다.
▲지난 여름 발생한 극한 폭우. 기후 대응이 늦춰지면 극한 폭염은 지금보다 4~6배 이상 잦아지고, 남아시아와 중동 지역에선 인간이 생리적으로 버틸 수 없는 온도가 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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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대응은 단기적인 득실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의 방향성에 대한 문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축의 완화가 아니라, 저탄소 산업구조로의 대전환을 촉진할 구체적 계획과 투자다. 단기 실적을 이유로 전환을 늦춘다면, 그 대가는 훨씬 더 큰 기회의 손실로 돌아올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국정과제로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불과 얼마 전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기후위기'라는 단어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같은 연설에서 '인공지능(AI)'은 28번 등장했다. 'AI 대전환'과 경제 성장은 중요한 목표이다. 하지만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40%를 달성해야 하는 대통령의 연설에서 28 대 0은 심하다.
대한민국 헌법은 전문에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기후위기 그리고 기후기회의 시기에 '기후 대전환'을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 정부는 과연 헌법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권오성 / 기후솔루션 미디어팀장
본인
필자소개 : 한겨레신문사에서 기자, 미디어전략팀장 등으로 일했습니다. 이후 LG AI연구원에서 커뮤니케이션 책임으로 일했으며, 현재 기후위기 대응 비영리단체인 기후솔루션에서 커뮤니케이션 일을 맡고 있습니다. 미국 시러큐스대학교에서 컴퓨테이셔널 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받았고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데이터저널리즘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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