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12 15:34최종 업데이트 25.11.1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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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언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비만치료제 '위고비'의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와 '젭바운드'의 일라이 일리가 가격 인하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의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은 늘 화제를 몰고 다닌다. 71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하는 그는 요즘 '구호 외치기'에 한창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에서 차용한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MAHA)라는 구호다. 이뿐일까. 백신에 대해 비판적일 뿐만 아니라 대체의학과 건강보조식품을 열렬히 옹호한다.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중에도 그를 청문회에서 거부하려는 이들이 적잖게 있었다. 그 때문에 케네디는 장관으로서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다짐을 여러 번 하고 나서야 겨우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취임 9개월 차에 접어든 그의 지난 행적을 돌아보면 그의 다짐은 대부분 거짓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케네디는 이상하리만큼 자폐 스펙트럼에 큰 집착을 보인다. 그에게 자폐 스펙트럼은 마치 전가의 보도와도 같다. '백신을 반대하는 것도 자폐증의 위험을 높이기 때문이며 포경 수술이 자폐를 유발한다'고도 주장한다. 최근에는 트럼프가 케네디의 의견을 받아들여 임산부의 타이레놀 복용이 자폐와 연결됐다는 주장을 직접 펼쳤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후속 보도자료에서 <미국역학회지>와 <미국의학회지>에 발표된 연구 두 편을 인용하며 케네디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연구에서 의료까지, 수상한 행보

10월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에서 열린 장애인 프라이드 퍼레이드에 참여한 '뉴욕시 자폐성인 모임' 회원들이 팻말을 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은 자폐증을 "공포의 쇼"이자 "위기"라고 부르며 백신이 원인이라는 입증되지 않은 주장을 펼쳐 왔다.AFP 연합뉴스

의료와 관련한 연구 결과가 실제 사람들에게 가 닿으려면 수없는 검증과 적용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의료지침이란 한두 편의 연구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케네디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다.

실제 스웨덴과 일본에서 이뤄진 독립적인 연구들은 타이레놀과 자폐 사이 연관성을 부정한다. '타이레놀을 먹는다고 해서 자폐성 질환을 가진 아이가 태어난다는 논리는 근거 없다'는 뜻이다. 특히, 스웨덴의 연구는 240만 명의 아동을 추적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조건이 비슷한 형제들을 비교했다는 점에서 다른 연구보다 신뢰도가 높다.

그럼에도 막대한 의생명과학 연구비를 집행하는 보건복지부 산하 미국보건연구원(NIH)은 수상한 행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케네디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연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재밌는 것은 케네디의 주장이 근래 각광을 받고 있는 정밀 의료(Precision Medicine)의 핵심 논리와 아주 흡사하다는 것이다. 개인화 의료 혹은 개인 맞춤형 의료라고도 불리는 정밀 의료는 개인의 유전적 환경적 요인을 바탕으로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를 제공하려는 노력을 가리킨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같은 치료라도 사람마다 효과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과거에는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우리는 DNA에 담긴 개인의 유전정보를 모두 해독할 수 있게 됐을 뿐만 아니라 DNA를 넘어 RNA, 단백질, 그리고 대사체와 같이 인체에 존재하는 다양한 분자와 물질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물질을 측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을 정밀하게 판독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이나 개개인의 생활패턴을 기록하는 스마트워치와 같은 장치들도 정밀 의료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정보를 모두 종합하면 개개인에 따라 달라지는 치료의 효과를 예측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예방 및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러한 설명은 한국의 유명한 대학병원 홈페이지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다수를 대상으로 한 임상 의료 정보를 통해 개인의 특성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최적'의 치료를 제공한다는 식의 홍보 문구다.

케네디의 주장은 이러한 정밀 의료의 이념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다. 비록 스웨덴의 대규모 연구에서 타이레놀이 자폐 스펙트럼에 미치는 영향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타이레놀의 평균적인 효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어떤 아동들이 실제로 타이레놀로 인해 자폐 스펙트럼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렇지 않은 아동들에 가려져서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타이레놀을 먹어서 자폐성 질환을 가지게 됐는데, 이와 같은 결과가 드러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논리다. 그러므로 이 논리를 따르자면, '최첨단의 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타이레놀로 인해 자폐 스펙트럼의 위험이 높아지는 아동과 산모들을 선별할 수 있게 된다.

타이레놀을 먹어서 생기는 자폐성 질환을 열심히 찾아내자, 이러한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연구비를 투입하자는 논리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이 논리는 자폐 스펙트럼과 타이레놀뿐만 아니라 다른 질병과 약물에도 적용할 수 있어서 케네디 입장에서는 활용도가 아주 높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포경수술처럼 케네디가 임의로 지목한 자폐의 원인으로 의심되는 다른 요인들이 떠오른다. 아무리 황당무계한 원인이라도 일련의 특성을 지닌 누군가는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 반드시 그 특성이 무엇인지 밝히는 연구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논리는 케네디뿐만 아니라 의학 연구자들도 즐겨 사용한다. 정밀 의료를 통해 질병을 극복하겠다는 연구는 셀 수 없이 많고 그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1995년부터 2025년까지 정밀 의료를 표방하는 연구의 숫자를 보면 과거 1년에 수백 건에도 못 미치던 것이 2025년에 3만 건을 돌파하며 100배 넘게 성장했는데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학도서관 문헌 데이터베이스(Pubmed)에 등장하는 '정밀 의료' 문헌수. 2025년 10월 27일 검색.이한빈

대표적인 사례가 암을 대상으로 한 표적치료제의 성공을 다른 질환에서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꾸준히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암은 돌연변이가 누적된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질환으로 돌연변이의 종류와 숫자에 따라 다른 특성을 갖는다. 표적치료제는 이처럼 제각기 다른 암세포의 특성에 맞춰 더 효과적으로 암을 치료한다.

자연스럽게 다른 질환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암과 그 질환들 사이에 어떤 유사점이 있어서 같은 접근이 성공할 것인지에 대한 근거는 희박하다. 무엇보다 온갖 검사와 측정치가 난무하는 최신의 정밀의료 연구와 다르게 표적치료제 결정을 위한 검사는 잘 알려진 특정 유전자를 검사하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최신 정밀 의료가 온갖 검사를 통해 '정밀'한 의료를 선사한들, 표적치료제 결정을 위한 검사의 그 '정밀'한 결과가 동일하게 나타날 리 없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라는 노랫말처럼 한 분야의 성공을 다른 분야로 표면적인 유사성만으로 외삽하는 일이 팽배한 상황은 과학적 타당성과 전문가 사이의 합의만으로 케네디의 주장을 온전히 기각하기 어려움을 보여준다.

여기에서는 여성의 건강권과 이를 둘러싼 사회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전 세계 임산부들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잔소리에 몸살을 앓고 있다. 아기를 위해서 해야 할 것도 너무 많고 하지 말아야 할 것도 너무 많다. 그 때문에 삶의 많은 것이 제약되고 선택권을 빼앗긴다.

심지어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몸이 나빠져도 아기를 위해야 한다는 이유로 적절한 관리와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예컨대, 임신 중 발생한 맹장을 진단하기 위한 방사선 노출을 꺼리거나(X선이나 저선량 CT가 태아 기형을 유발한다는 근거는 매우 희박하다), 임산부에게서 흔히 발생하는 잇몸 염증인 풍치가 생겨도 치과 치료를 받지 못하는 식이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높고 안전한 약물로 평가받는 것이 타이레놀이다. 케네디는 바로 이러한 점을 노리고 임산부들에게 남은 몇 안 되는 선택지조차 빼앗으려고 하는 것이다. 공화당 정부는 이미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임신중절의 권리를 박탈하기 위한 시도를 활발히 하고 있다. 타이레놀의 위험성을 알리겠다는 시도 역시, 여성의 권리 박탈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공화당 정부 장관에 아주 어울리는 행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의료는 과연 다른가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이 또 하나 있다. 과연 우리가 평소 선망하는 의료가, 여성의 권리를 박탈하겠다고 나서는 공화당 정부의 행보와 크게 다른 모습을 보여왔는지 여부다.

과학기술이란 아무리 멋진 기술과 인공지능이 있다고 해도 케네디처럼 여성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다. 이는 의학 연구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너나 할 것 없이 정밀 의료가 첨단의 과학이기 때문에 추구해야 할 목표라고 생각했다면 여기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진짜 동기는 무엇일까? 그냥 유명한 학술지에 유명한 연구자가 이게 필요하다고 해서? 아니면 연구도 생업의 일부인만큼 먹고살기 위해서? 여기에 적당한 답이 없다면 과학적으로만 봤을 때 케네디보다 딱히 나은 것이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가 정밀 의료를 통해 얻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유전자를 정밀 분석해 배아의 질병 위험을 예측' 한다거나 '건강 수명 증가를 통한 고령층의 사회 진출 확대' 같은 지금까지의 홍보 문구를 보면 한국 사회는 마치 정밀 의료를 통해 '제2의 우생학'시대를 열어가려는 듯하다.

그럼 지금까지 과학적이어서 했다는 연구 뒤에는 사실 어떤 의도가 있었던 걸까? 우생학을 비롯해 사람을 분류하고 차별하는 상당 수의 기술은 과학과 지식의 역사로 포장된 정치였다. 정밀 의료라는 이름으로 쏟아지는 '과학' 뒤, 파시즘의 정치를 경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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