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열린 토론회에서 뉴욕 시장 후보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무소속이자 전 뉴욕 주지사 앤드루 쿠오모, 공화당 커티스 슬리바, 민주당 조란 맘다니가 참석했다.
AFP/연합뉴스
이번 선거 관련 미국 언론의 헤드라인은 단순했다. 청년의 승리, Z세대의 반란, 진보의 역사적 승리. 틀린 말은 아니다.
출구조사에 따르면 45세 미만 유권자 사이에서 맘다니의 득표율은 70%였다. 첫 투표자로 한하면 66%였다. Z세대(18세~29세) 투표자 수는 4년 전 대비 130% 급증했다. 11만 7천여 명이 조기투표에 참여했다. 압도적이다.
그런데 45세 이상에서는 정반대 그림이 나타났다. 쿠오모가 맘다니에 비해 45세~64세에선 4%p, 64세 이상에서는 19%p 앞섰다. 언뜻 보면 세대 전쟁이다. 젊은 세대 대 나이든 세대. 진보 대 보수. 변화 대 현상유지.
그러나 이 설명은 불충분하다. 그 이면의 구조적 흐름을 봐야 한다. 맘다니는 백인 유권자 사이에선 아주 근소하게 쿠오모에게 졌다 (쿠오모 46%-맘다니 45%). 쿠오모와 비교했을 때 라티노 유권자를 13%p 차이로, 아시아계 유권자를 30%p 차이로 가져갔다. 흑인 유권자에서도 19%p 우위를 점했다. 인종을 넘어선 연합이었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출구조사에서 유권자의 다수가 '생활비'를 최우선 이슈로 꼽았다는 점이다. 민주주의 수호가 아니었다. 범죄도 아니었다. 이민 문제도 아니었다. 월세, 교통비, 식료품 가격이었다.
45세라는 선은 나이가 아니라 경제적 지위의 경계선이다. 45세 이상 뉴욕 시민의 상당수는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자산 형성이 완료됐거나 진행 중이다. 월세 상승이 직접적 타격을 주지 않는다. 반면 45세 이하는 다르다. 임대료가 삶을 결정한다.
2020년 이후 뉴욕의 임대료는 30% 상승했다. 식료품 가격은 25% 올랐다. 그런데 임금은 제자리였다. 22세에서 27세 사이 미국 청년의 31%가 높은 주거비 때문에 부모와 함께 산다. 첫 주택 구매자의 평균 연령은 38세로, 30년 전보다 10년이나 늦춰졌다. 청년 84%가 학자금 부채 때문에 결혼, 출산, 자동차 구매를 연기하고 있다.
맘다니 선거 캠프가 만든 한 영상이 입소문을 탔다. 맘다니가 할랄 푸드 카트 앞에서 할랄플레이션을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몇 년 전 8달러였던 접시가 이제 10달러다. 왜 그런가? 뉴욕시의 복잡한 허가제도가 카트 수를 제한하고, 인위적으로 가격을 올린다.
이 영상은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젊은 유권자들이 열광한 이유는 간단했다. 자기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정치 이슈가 아니라 어제 점심값, 오늘 월세, 내일 버스비였다.
맘다니의 공약은 이 지점을 정확히 겨냥했다. 100만 가구 월세 동결, 무료 버스, 2030년까지 시간당 30달러 최저임금.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50.4%가 그에게 투표했다. 유권자들은 실현 가능성이 아니라 방향을 샀다.
쿠오모는 현실적 공약을 내세웠다. 3선 주지사 출신답게 세련된 정책 문서를 발표했다. 주택 공급 확대, 단계적 임대료 규제, 점진적 교통 개선. 틀린 말이 아니었다. 경험에서 나온 정책이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물었다. 그래서 내 월세가 얼마나 줄어드는가? 답이 없었다. 아니, 답이 너무 작았다. 너무 점진적이었고,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였다.
맘다니는 달랐다. 월세 동결. 즉각적이고 명확했다. 무료 버스. 당장 다음 달부터 교통비가 없어진다. 시간당 30달러 최저임금, 6세 이하 무상보육의 재원은 부자 증세를 통해 확보하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실현 가능한가? 논란이 있다. 뉴욕 주지사의 협조가 필요하고, 시의회 통과도 쉽지 않다. 법적 제약도 있다. 그러나 방향은 명확했다.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지 분명했다. 유권자들은 그 방향성에 투표한 것이다.
미국 민주당이 배워야 할 교훈

▲지난 5일 미국 뉴욕시에서 한 시민이 선거 다음 날 아침 조란 맘다니의 시장 당선 소식을 알리는 뉴욕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 신문을 구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20년부터 2024년 사이 민주당은 210만 명의 등록 유권자를 잃었다. 같은 기간 공화당은 240만 명을 확보했다. 총 450만명의 격차가 벌어졌다. 청년층 이탈이 가장 심각했다. 트럼프가 지난 대선에서 승리한 결정적 요인이다.
이번 뉴욕 시장 선거는 트럼프의 폭주를 제어할 해법을 보여줬다. 더 많은 유권자를 투표소로 이끄는 것이다.
2021년 시장 선거에서 115만 명이 투표했다. 이번에는 200만 명 이상이 투표했다. 85만 명이 추가로 투표소로 향했다. '트럼프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맞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맘다니 선거 캠프는 10만 명의 자원봉사자를 조직했다. 이들은 300만 가구의 문을 두드렸다. 조기투표는 73만 5천여 표를 기록했다. 역대 최고였다. 전통적으로 투표율이 낮았던 브롱크스와 퀸스 일부 지역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젊은 세입자들이 많은 곳이었다.
분노는 사람을 깨운다. 그러나 희망이 투표소로 걸어가게 만든다. 트럼프에 대한 반감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구체적 민생 해법이제시되어야 한다.
실제 민주당 전국위원회는 2024년 대선에서 14억 달러를 민주주의 수호 캠페인에 쏟아부었다. 결과는 참패였다. 경제를 최우선 이슈로 꼽은 유권자의 79%가 트럼프를 지지했다. 민주주의를 최우선으로 꼽은 유권자의 80%는 해리스를 지지했다. 문제는전자가 후자보다 많았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트럼프를 막아야 한다,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 기후변화와 싸워야 한다는 거대 담론을 반복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당장 다음 달 월세를 걱정하는 청년에게 민주주의 수호가 최우선 과제이긴 어렵다.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둔 민주당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민주주의 수호를 외칠 것인가, 월세 동결을 약속할 것인가. 뉴욕은 후자가 작동한다고 증명했다. 56년 만의 최고 투표율로.
문제는 민주당 주류가 여전히 전자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34세 정치 신인이 3선 주지사 출신 67세를 이긴 이유는 경험이 아니라 방향성에 대한 지지였음에도 말이다.
맘다니가 당선된 이유는 그가 민주적 사회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의 민주적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지지도 아니다. 결국 월세, 버스비, 보육비, 최저임금 때문이다. 2026년 중간선거의 성패는 민주당이 이 교훈을 배우느냐에 달렸다.
민생이 답이다
▲지난 10월 8일 미국 뉴욕시에서 뉴욕 시장 후보 조란 맘다니가 무료 고속 버스 도입 제안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M57번 버스를 타고 이동 중 승객과 대화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뉴욕 선거에서 맘다니는 절박한 경제 현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인정하고, 해법을 제시하려 했다. 물론 실현 가능성에는 논란이 많다. 그러나 방향은 명확했다.
청년은 정치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다. 정치가 청년의 월세에 무관심했을 뿐이다. Z세대가 보수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쏟아진다. 맞다. 그러나 원인을 오독하고 있다. 세대 갈등이 아니라 경제적 절망이 그 근본 원인이다.
이번 뉴욕 시장 선거가 증명한 것은 간단하다. 정치가 민생으로 돌아오면, 사람들도 투표소로 돌아온다. 56년 동안 뉴욕 시민들은 시장 선거에 냉담했다. 누가 당선되든 내 월세가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한 후보가 그들의 경제적절박함에 귀 기울였다. 그러자 85만 명이 더 투표소로 향했다. 설령 그가 34세의 정치 신인이고,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할지라도.
한국 정치도 비슷한 갈림길에 서 있다. 한국 청년들의 현실은 어쩌면 미국보다 더 가혹하다. 지난 6.3 조기대선에서도 20대 남성이 보수를 선택한 핵심 이유다. 어떤 정치가 그들의 마음을 돌아오게 할 수 있을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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