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05 12:02최종 업데이트 25.11.0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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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정부 자산의 매각을 전면 중단하고 매각이 부득이한 경우에는 국무총리의 사전 지시를 받으라'는 긴급 지시를 정부 각 부처에 전달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자산 매각 과정이 문제가 됐다.

국유재산 매각은 정부가 현금 자산을 확충하는 통로가 되기도 되지만, 대한민국의 국부가 불법 혹은 탈법으로 유출되는 경로가 되기도 한다. 매각대금이 시중가격보다 많이 낮은 것부터가 큰 문제다.

한국재정정보원법에 의해 설립된 한국재정정보원이 보유한 국유지 매각 자료와 국토교통부가 보유한 토지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오지윤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의 논문 '정부의 국유지 매각 효율성 분석'은 2007~2018년 기간의 국유지 매각 가격이 "시장가격 대비 약 18~22% 낮았다"고 알려준다. 그러면서 "시장가격에 매도되었더라면 11년의 기간 중 약 3조의 재정이 추가될 수 있는 크기"라고 덧붙인다.

다수의 매수 희망자가 경쟁하는 상황에서는 저가 매매가 잘 일어나지 않았다. <경제학연구> 2022년 제70집 제1호에 실린 위 논문은 18~22%의 가격 차이는 "국유지 매각의 계약 방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논문은 "국유지는 근본적으로 경쟁계약을 통하여 매각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실제로는 시행령에 기반하여 대부분 수의계약으로 매각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경쟁계약에 의한 국유지 매각은 민간 가격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관찰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수의계약에 의한 국유지 매각이 시가보다 낮게 이뤄졌던 것이다.

국유지 매각 담당자의 '도둑질'

1994년 2월 27일 자 <경향신문> 기사 '前(전)세무원 불법 불하 땅환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국유재산 매각 시스템에 빈 구멍이 많다는 점은 이를 악용한 인물이 한국 최대의 부동산 부자가 된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1994년 2월 27일 자 <경향신문> 6면에 "세무공무원으로 있으면서 엄청난 국유지를 불법으로 불하받아 '한국 최대의 땅부자'가 된 이석호씨(66)"로 거론된 인물이 그 주인공이다. 이 기사는 국유지 매각 담당자였던 이석호가 국유지를 일반 국민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매도한 일을 이렇게 설명한다.

"검찰 수사 결과, 이씨는 71~74년 중 목포·해남 세무서에 근무(85년 사무관으로 퇴직)하면서 친인척 등 35명의 이름을 도용하거나 빌려 입찰서를 조작한 다음, 헐값에 매수하는 수법으로 목포·무안 등 전남지역 6개 시·군에 있는 이들 땅을 불하받았다."

이석호가 불법으로 취득한 국유지는 2924만 평이다. 위 기사는 "여의도의 약 30배"라고 말한다. 이런 규모 못지않게 주목을 끈 것은 그가 국유지 취득에 눈이 먼 나머지 이순신 유적지나 공공용지에까지 손을 댔다는 점이다. 세상의 이목이 쏠리기 쉬운 그런 땅에도 탐을 냈을 정도로 정신없이 도둑질을 했던 것이다. 위 기사의 설명이다.

"이씨의 땅이 문제가 된 것은 이들 땅 가운데 홍도를 비롯한 해상국립공원 지역, 충무공 유적지 등 지방문화재, 도로·하천 등 공공용지가 많이 포함돼 지난해 2월부터 해당 시·군 의회가 나서 환수운동을 벌이기 시작한 데서 비롯됐다."

이석호의 불법 치부는 일개 공무원의 탈선 차원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별다른 감시나 견제를 받지 않고 광활한 국유지에 손을 댄 기간은 국유지 불법 매각으로 악명을 떨친 적이 있는 박정희 정권의 집권기다. 나라 곳간을 지켜야 할 정권 상층부마저 국유지 헐값 매매로 이익을 도모하던 시절에 이석호라는 중하위 공무원이 나도 질세라 하며 대담한 일을 벌였던 것이다.

박정희 집권기에는 국유지가 시가의 1%에 매각되는 일도 있었다. 1966년 4월 5일자 <조선일보> 기사 '얼룩진 20년 부정부패사'는 경복궁 인근의 사직공원 부지가 불법 불하된 사실이 알려져 국민적 충격을 일으킨 1964년 사건을 이렇게 정리했다.

"많은 국공유지 불하 사건 중 가장 규모가 큰 데다가 현직 국회의원·장관까지 관련됐다 해 국회에까지 문제화된 것이었다. 사직공원 용지 2만 3천여 평을 불하받기 위해 대지사용증명과 건축대지증명을 위조한 후 장관의 힘을 빌어 싯가의 백분의 1밖에 안 되는 돈으로 수의계약하고 불하받은 것이다. 이 사건에 관련되어 기소된 자는 23명에 이르렀으나, 우두머리는 흐지부지되고 송사리만 잡혀 들어갔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여러 가지 국유지 불하 사건에 수사의 손이 미쳤는데 삼청동공원 용지, 수유동 임야, 정릉동 임야 불하 사건 등도 모두 그 한가지 예에 지나지 않는다."

박정희 정권에서 '국유지 헐값 매각' 이뤄진 까닭

서울 경복궁 인근의 사직공원의 과거 모습연합뉴스

국유지 불법 매각은 어느 시대나 있는 일이지만, 박정희 집권기에는 사정이 달랐다. 이는 그 시대의 특수성 역시 상당 부분 반영한다.

쿠데타로 인해 정통성이 취약했던 박정희 정권은 당장의 경제적 성과를 보여주는 방법으로 정통성 부족을 만회하고자 했다. 박 정권은 쿠데타 8개월 뒤인 1962년 1월 13일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공표했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은 정상적인 자금확보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래서 '돈만 주시면 과거를 용서해 드리겠다'는 식으로 한일협정을 추진했다. 또 다른 방안 중 하나는 국유지를 신속히 팔아 경제개발자금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1962년 7월 14일에 제정한 법률이 국공유재산처리임시특례법이다. 이 법 제1조는 "국유 또는 공유 재산을 보호하며 합리적으로 처분하여 재정수요의 충족을 기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박정희 정권이 국유지 매각을 경제개발 자금 확보용으로만 활용했다면, 사직공원 사건 같은 게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국유지는 헐값에 매각됐다. 국가경제 개발이 목적이었다면 가급적 높은 금액으로 매도하려 했을 것이다. 그것이 유일한 동기가 아니었기에, 일단 팔아 넘겨서 현금부터 확보하고 보자는 식으로 접근했던 것이다.

충남 공주·논산 출신의 박찬(1924~2007) 국회의원이 1964년 9·10월호 <인물계>에 기고한 '국·공유지 부정불하사건의 이면: 더러운 흥정의 진상을 공개하라'는 당시의 국공유지 매각대금이 "시가의 3분의 1 내지 100여 분의 1"이었다고 지적한다.

박찬은 대부분의 국유지 매각이 서류 위·변조와 특권층의 개입으로 일어났다고 비판했다. 정권 상층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면, 수많은 국유지가 사실상 공짜로 매각되는 대규모 현상이 발생하기 힘들었다. 규모가 큰 현상이었으니, 당연히 수사가 진행됐다. 하지만 꼬리 자르기 식으로 사건이 종결되곤 했다.

그래서 최고 몸통이 누구인가에 의혹이 집중됐다. 박찬은 "그토록 얽힌 인적 관계의 배후엔 또다시 법으로도 다스릴 수 없는 이면의 인물이 숨어 있다는 새로운 의혹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고 비판했다. 국유지 매각이 정권 핵심부와의 관련 속에서 진행됐음을 비꼬는 지적이다.

이처럼 박정희 집권기에는 국유지의 대량 헐값 매각으로 인해 대통령까지 의심을 받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세무공무원 이석호가 전남 일대의 국유지들에 눈독을 들였다. 이석호 사건은 개인적인 비리 사건인 동시에 당시의 사회현상이었다.

박정희 집권기의 국유지 매각은 경제개발을 빌미로 진행됐다. 하지만, 거의 다 헐값에 팔렸기 때문에 경제개발에 큰 도움이 될 수 없었다. 대신, 그것은 헐값으로 매수한 사람과 헐값에 매수하게 도와준 사람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박정희 정권의 지지 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는 도움이 됐다. 정권의 자금 형성에도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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