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경복궁 인근의 사직공원의 과거 모습
연합뉴스
국유지 불법 매각은 어느 시대나 있는 일이지만, 박정희 집권기에는 사정이 달랐다. 이는 그 시대의 특수성 역시 상당 부분 반영한다.
쿠데타로 인해 정통성이 취약했던 박정희 정권은 당장의 경제적 성과를 보여주는 방법으로 정통성 부족을 만회하고자 했다. 박 정권은 쿠데타 8개월 뒤인 1962년 1월 13일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공표했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은 정상적인 자금확보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래서 '돈만 주시면 과거를 용서해 드리겠다'는 식으로 한일협정을 추진했다. 또 다른 방안 중 하나는 국유지를 신속히 팔아 경제개발자금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1962년 7월 14일에 제정한 법률이 국공유재산처리임시특례법이다. 이 법 제1조는 "국유 또는 공유 재산을 보호하며 합리적으로 처분하여 재정수요의 충족을 기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박정희 정권이 국유지 매각을 경제개발 자금 확보용으로만 활용했다면, 사직공원 사건 같은 게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국유지는 헐값에 매각됐다. 국가경제 개발이 목적이었다면 가급적 높은 금액으로 매도하려 했을 것이다. 그것이 유일한 동기가 아니었기에, 일단 팔아 넘겨서 현금부터 확보하고 보자는 식으로 접근했던 것이다.
충남 공주·논산 출신의 박찬(1924~2007) 국회의원이 1964년 9·10월호 <인물계>에 기고한 '국·공유지 부정불하사건의 이면: 더러운 흥정의 진상을 공개하라'는 당시의 국공유지 매각대금이 "시가의 3분의 1 내지 100여 분의 1"이었다고 지적한다.
박찬은 대부분의 국유지 매각이 서류 위·변조와 특권층의 개입으로 일어났다고 비판했다. 정권 상층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면, 수많은 국유지가 사실상 공짜로 매각되는 대규모 현상이 발생하기 힘들었다. 규모가 큰 현상이었으니, 당연히 수사가 진행됐다. 하지만 꼬리 자르기 식으로 사건이 종결되곤 했다.
그래서 최고 몸통이 누구인가에 의혹이 집중됐다. 박찬은 "그토록 얽힌 인적 관계의 배후엔 또다시 법으로도 다스릴 수 없는 이면의 인물이 숨어 있다는 새로운 의혹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고 비판했다. 국유지 매각이 정권 핵심부와의 관련 속에서 진행됐음을 비꼬는 지적이다.
이처럼 박정희 집권기에는 국유지의 대량 헐값 매각으로 인해 대통령까지 의심을 받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세무공무원 이석호가 전남 일대의 국유지들에 눈독을 들였다. 이석호 사건은 개인적인 비리 사건인 동시에 당시의 사회현상이었다.
박정희 집권기의 국유지 매각은 경제개발을 빌미로 진행됐다. 하지만, 거의 다 헐값에 팔렸기 때문에 경제개발에 큰 도움이 될 수 없었다. 대신, 그것은 헐값으로 매수한 사람과 헐값에 매수하게 도와준 사람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박정희 정권의 지지 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는 도움이 됐다. 정권의 자금 형성에도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