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점짜리 비건이 존재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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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6년 전 채식을 시작했다. 이전에도 오랜 시간 동물과 육식에 관한 고민이 있었지만 채식을 시도해 볼 여유는 없었다. 요리에도 자신이 없었지만 음식점에서도 채식 메뉴는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맛있는 고기를 포기하고 사는 삶이 상상되지 않았다.
이 육식주의자는 동물복지 인증 육류를 사 먹는 것으로 죄책감을 씻었다. 좀 더 비싼 금액은 비윤리적인 육식을 하는 스스로에게 내리는 벌금 같은 것이었다. 동물복지 인증 육류를 사 먹는 이, 동물 윤리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주겠는가? 후하게 100점 만점에 20점 정도 쳐주자.
그러다가 의도치 않게 다니던 직장을 쉬면서 이직 준비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 갔다. 얼마나 지속할진 모르겠지만, 지금이 아니면 시도조차 해볼 수 없겠다. 그렇게 1년이 좀 안 되는 시간 동안 페스코 베지테리언 시기를 거쳐 비건으로 전향했다. 페스코 베지테리언은 50점 정도 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비건은 동물 윤리 점수로 백 점을 줄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비건이라는 말은 본래 의미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순결함을 요구한다. 비건이라고 정체성을 드러내는 이들에게는 엄격한 잣대가 들어온다. 늘어나는 배달 용기는 어떻게 할 거냐? 농업으로 인한 야생동물 피해는 어쩔 거냐? 네가 먹은 국물에 멸치육수가 들어간다!
정답 없는 시험을 치는 기분이 들었다. 백 점인 줄 알았던 오만한 채식인은 육식인들의 매서운 회초리에 절로 고개를 숙인다. 때때로 같은 편이라 생각했던 채식인의 말이 날 서게 다가오기도 한다. 비건 식단을 하며 느꼈던 해방감은 금세 사라지고 다시 죄책감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도대체 언제쯤 비건이라는 미로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채포자'가 되지 말고, 헐렁헐렁 고무줄 채식인이 되어보자
하지만 여기서 '채포자(채식 포기자)'가 되지 않았다. 어느덧 백 점짜리 비건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는 완벽한 비건이 되려 하기보다는 느슨한 비건 지향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헐렁헐렁한 고무줄 바지처럼 상황에 맞게 유연한 비건 지향인, 동물성 식품을 최대한 지양하는 플렉시테리언이 되기로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출근하는 5일 중 4일 정도는 혼밥을 하기 때문에 비건 전문음식점을 가기도 하고 집에서 요리한 비건 도시락을 먹는다. 그래서 오히려 여유가 생겼다. 비건 친구들만 만나던 시절은 지나갔다. 이제는 논비건 친구도 전보다는 편히 만난다. 그렇다고 덩어리고기를 먹는 건 아니다. 내가 덩어리고기를 먹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해 주는 친구들과 나름의 협상 과정을 통해 최적의 식당을 매번 찾아낸다.
그렇게 서로가 식탁을 조금씩 양보하면 서로의 마음이 더 잘 전해진다. 나와 함께 식사하는 이가 언젠가 비건을 시도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적어도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던 비건을 향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거부감은 사라지지 않을까.
채식이라는 세계는 객관식 시험도, 게임의 퀘스트도 아니다. 정답을 향한 길은 없다. 저마다 상황과 처지에 맞게 자신만의 채식 스타일을 만들 수 있다. 이는 식품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의류나 신발, 잡화류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새로운 비건 상품을 사기보다는 기존에 가지고 있는 물건을 오래 사용하는 게 오히려 비인간동물을 위한 일일 수 있다.
지난 11월 1일은 세계 비건의 날이었다. 식단을 비롯해 일상생활에서 비건을 지향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면 열렬히 응원한다. 반대로 비건이라는 엄격한 잣대에 겁먹어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이들이 있다면, 완벽함과 순결성에 대한 부담은 내려놓고 시작해 볼 것을 권한다. 일주일에 한 번만 해도 되고 저녁 식사만 채식을 해도 된다. 부디 비건이라는 상상의 감옥을 만들어 갇혀있지 말자. 세상에는 다양한 채식이 있다. 이제 막 시작하려는 당신이 새로운 채식 스타일과 문화를 만들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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