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1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금융소비자연대회의(금융정의연대, 롤링주빌리,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 등)가 ‘불법사금융, 불법추심 상담신고센터(불불센터) 1차 활동보고 및 상담분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윤진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 김성근 롤링주빌리 간사, 김미선 한국금융복지상담협회 고문, 강명수 롤링주빌리 이사, 백주선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
김예진
우리나라에서 저신용·저소득계층의 금융은 영국과 미국과 같이 잠재적인 규모를 확대하고 경쟁적인 구조로 만드는 방안보다는 주로 이자제한 정책에 의존하고 있다. 저신용·저소득계층 금융의 규모가 협소한 상태에서 이자상한이 적용되다보니 이자율은 주로 상한으로 쏠린다. 심지어 서민금융정책기관마저 그렇다. 이자제한법상 이자상한을 어기는 경우에 따르는 법적인 책임은 기원전 고대국가에 비해 더 가볍다.
이자제한법상 이자상한은 20%다. 만일 취약계층 금융시장에서 어떤 개인에 대한 신용 스프레드가 10% 혹은 100%라고 하자. 이자제한법에 따르면 10%는 합법적이고 100% 가운데 80%는 무효다. 초과분에 대해 반환소송이 가능하고 가해자는 형사적 책임도 따른다. 함무라비법에 의하면 10%는 정당한 채권이고, 100%는 부당한 채권으로 취소와 함께 원금 자체를 채무자에게 상환 요청할 수 없다. 로마법에 따르면 10%도 100%도 불법이다. 예컨대 피해 금액이 100만원 일 경우, 400만 원의 징벌적 손해배상이 부과된다. 함무라비법과 로마법이 이자제한법에 비해 채무자를 민사적으로 더 두텁게 보호한 셈이다.
저신용·저소득 계층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속한 사회나 경제 환경에 따라 부담해야 하는 이자율은 달라진다. 저신용·저소득계층을 위한 금융 시장의 잠재적 자금규모는 충분한지, 법은 계약의 안정성을 보장하는지, 무이자 혹은 저이자 프로그램이 있는지, 확장적 포용금융이 이루어지는지 등이 변수로 작용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충족되는 사회에서는 저신용·저소득계층일지라도 그들의 금융접근성이 낮지 않으며 이자율도 잔인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부채비율은 2024년말 163%로 경제 전반이 금융 부족 상태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민법은 영미권보다 채무의 강제이행을 더 강하게 보장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신용·저소득 계층을 위한 맞춤형 무이자 프로그램이나 확장적 포용금융 제도는 사실상 부재하다. 즉, 경제 전체적으로는 자금이 풍부하지만, 정작 저신용·저소득 계층의 금융 접근성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저신용·저소득 계층의 금융이 부족한 근본 원인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 금융시장이 충분히 크지 않고 경쟁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제도적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첫째,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대출 금융제도는 신용등급별로 고객을 분할하도록 법체계가 지나치게 세분화되어 있다. 은행법, 저축은행법, 각종 상호금융법 등이 별도로 존재하면서, 금융시장이 제1금융권과 제2금융권으로 구조적으로 분할되어 있다. 이로 인해 가장 자금이 풍부한 제1금융권(은행)이 포용금융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여지가 제도적으로 제약된다.
반면 제2금융권은 고객의 전반적 신용등급이 낮아 경기 변동에 취약하며, 위기 시 고객으로부터 불가피하게 '우산을 뺏는' 행태(경기가 좋고 상황이 괜찮을 때는 누구에게나 대출을 해주지만, 경기 침체나 위기 상황, 즉 고객이 정작 가장 도움이 필요할 때는 돈을 빌려주지 않거나, 기존 대출도 회수한다는 금융기관의 행태를 비판한 말)를 반복하는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
둘째, 저신용·저소득계층의 상호부조가 기본취지인 상호금융 등 협동조합금융은 저신용·저소득계층을 외면하고 대출의 대부분을 주택담보대출로 내보내고 있다. 상호금융의 본래 취지인 포용금융과는 달리 상업금융에 집중하면서 저신용·저소득계층으로부터 멀어져 있다.
셋째, 서민금융정책기관은 저신용·저소득 계층을 대상으로 고용 창출이나 지역 재생, 사회연대경제 활동과 연계된 지속 가능한 대출 지원보다는, 긴급한 처지에 놓인 소득활동이 거의 없는 개인 구제 중심의 지원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 결과, 실질적 상환 능력이 낮은 차입자에게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높은 이자율이 적용되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넷째, 이자제한법 또한 불법 고리대 행위를 실질적으로 억제하지 못하고 있다. 이자제한법상 처벌 규정이 존재함에도, 금융감독원 통계에 따르면 2023년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 건수는 12만 3,233건에 달했다. 이는 법이 존재하더라도 그 집행력이 충분히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포용금융을 위한 길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먼저, 저신용·저소득계층 지원을 위해서는 전체 예대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재투자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서민금융 자금의 잠재적 규모가 커지고 공급이 확대될 수 있다. 현행 지역재투자 평가제도(금융기관이 저소득 및 중간소득 지역사회에 대한 대출·투자 실적을 평가받도록 한 제도)는 법에 근거하지 않는 행정지도로, 인허가 및 인수·합병(M&A) 등을 활용하는 규제 유인이 곤란하여 효과가 제한적이다. 지역재투자법을 제정하여 폭 넓은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컨대, 지주회사 설립, 자회사 인수, 연방예금보험공사 가입, 은행법상 은행으로 전환, 지점 설치, 본점 이전, 합병, 자산 및 부채 인수 등 인허가 관련 신청 시 지역재투자법에 따른 실적을 감독당국이 우대하는 방향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
둘째, 상호금융이 주택담보대출로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협동조합 본래의 가치 실현을 더 중시하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 상호금융 전체적으로 자산규모가 1000조 원을 넘는다. 협동조합의 본래 가치인 상호부조를 중심으로 되돌아가면 저신용·저소득계층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조합원 중심의 지배구조를 강화하고 상호금융 최고경영자(CEO)의 연봉이 협동조합의 상업성보다는 협동조합 가치 실현에 대한 조합원의 판단에 의해 결정되도록 해야 한다(신용협동조합 제24조 총회결의사항 등 개정 필요사항).
또한 상업적 대출실적을 중시하는 현행 직원평가 핵심성과지표를 조합원과 지역재생, 사회연대경제 등에 대한 기여를 더 중시하도록 전환해야 한다. 상업적인 규모의 경제보다는 협동조합 본래의 가치를 추구하는 협동조합형 대출과 투자모델 개발도 필요하다. 감독당국은 상업은행의 신용대출 규제 기준을 상호금융에 그대로 적용하기보다, 협동조합형 금융의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상업은행이 의존하는 신용평가점수 대신 협동조합형 금융은 사회적 신뢰나 관계 정보를 활용)을 인정해야 한다.
상호금융이 최근 상업적 주택담보대출 중심으로 변모한 이유에는, 협동조합 본래의 취지에 부합하는 지배구조를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한 한계도 있지만, 동시에 상업은행과의 본질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신용대출 규제 기준에도 문제가 있다. 따라서 상호금융의 특성과 역할에 부합하는 차별화된 규제체계를 마련하여, 협동조합 금융이 본래의 포용성과 지역성에 기반한 역할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셋째, 서민금융정책기관은 개인에 초점을 두지 말고 개인이 소득활동에 참여하도록 유인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저신용·저소득계층이 참여하는 활동 자체와 그러한 활동을 주관하는 단체를 신용평가의 대상으로 포섭해 신용개선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또한 소득활동에 참여하기 힘든 개인에게는 무이자 지원프로그램을 적용해야 한다. 소득활동이 없는 자에 대한 높은 이자율은 심적 고통만 안길뿐 의미가 없다. 오히려 파산과 생의 마감을 앞당길 따름이다. 또한 서민금융정책기관은 정책기능을 강화하고 시장금융과의 장기적인 생태계 조성의 촉진자로서 역할도 만들어가야 한다.
넷째, 투자성 있는 사회연대경제 활동에 대해서는 은행 등이 투자를 하도록 허용하여 자기책임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표적인 자본참여방식의 하나로는 영국의 주요 은행들이 출자한 베터 소사이어티 캐피탈이 있다. 현행 서민금융정책기관의 기능을 조정하여 베터 소사이어티 캐피탈처럼 자본참여방식의 중개기관으로 활용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
또한 장애인 등 취약계층이 주도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이 중앙회를 통해 금융의 상호부조를 통해 협력할 수 있도록 협동조합기본법을 개정해야 한다(제2조 제4호). 사회적협동조합은 재무적으로 매우 취약하다. 자본금이 1억 원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중앙회는 이들이 협력하여 상호부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자제한법이 정한 이자 상한이 합리적인 수준인지 여부에 대해 검토하고, 이자상한을 어기는 불법사금융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기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정리하면, 금융시장에서 포용금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자제한 중심에서 벗어나 저신용·저소득계층 금융시장의 잠재적 규모를 보다 확대하고 경쟁적으로 만드는 지역재투자법 제정 등 구조개선이 필요하다. 대출뿐 아니라 자본참여방식도 필요하다. 상업금융은 과도한 상업성의 패러독스에서 벗어나 장기적으로 포용금융과 균형을 추구하고, 협동조합금융은 본래 취지대로 포용금융을 회복해야 한다. 정책금융기관은 시장실패를 보완하는 공적기관답게 상업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포용성원칙에 따라야 한다. 이자제한법 위반은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책임을 묻고 피해자를 구제해야 한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본인
필자 소개 : 김자봉은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 금융과 금융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현재 은행법학회장이며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자문위원장을 역임하였고, 'Journal of Financial Literacy and Wellbeing' 편집위원입니다. 주요 저서로 '금산분리의 법리와 경제분석', '한국경제, 전환의 시간1', '애덤 스미스 경제학: 자연적 자유와 정의' 등이 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