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4일, 알래스카주 카크토빅 근처 북극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의 브룩스 산맥에 눈이 덮여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북동부 알래스카 끝자락에 자리한 북극보호구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와 맞먹는 약 1900만 에이커 규모의 광대한 보호구역이다. 해발 2700m에 달하는 봉우리와 빙하로 이루어진 브룩스산맥이 중심을 이루며, 북쪽으로는 평탄한 툰드라 지대와 수많은 하천이, 남쪽으로는 호수가 점점이 이어진 침엽수림 계곡이 펼쳐져 있다.
보호구역은 북극해 연안의 툰드라 평원부터 브룩스산맥의 구릉과 숲, 포큐파인 강 상류의 침엽수림, 보퍼트해 연안의 석호와 모래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형과 생물 서식지를 품고 있다. 대부분 영구동토층(Permafrost)으로 덮여 있어 여름에도 습지 상태가 유지되며, 식물은 낮이 길어 빠르게 자라지만 생장기는 짧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북극보호구의 생태계는 인간 활동에 특히 취약하며 한번 훼손되면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보호구 안에는 도로와 공공시설이 전혀 없고, 야생 하천으로 지정된 세 개의 강과 약 800만 에이커 규모의 보호구역 내 최대 완전 자연보호지역이 존재한다. 접근 또한 쉽지 않아 대부분 방문객은 페어뱅크스에서 카크토빅, 데드호스, 아틱빌리지 등 인근 마을로 항공편을 이용해 이동한 뒤 전세 비행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13]
'미국의 세렝게티'라고 불리는 이곳은 뛰어난 생물다양성으로 유명하며 특히 알래스카 북부 노스슬로프(North Slope)에 위치한 160만 에이커의 해안평야는 미국에서 매우 온전하게 보존된 생태계 중 하나다. 북극보호구는 조류 200종 이상, 어류 42종, 포유류 45종이 서식하며 12만 마리가 넘는 포큐파인 순록 무리의 삶의 터전이다. 북극보호구를 찾는 새들은 북미 50개 주와 6개 대륙을 오가며 먹이를 먹고 번식하며, 북극의 여름 동안 폭발적으로 번성하는 생물군집을 누린다.[14] 그러나인근 보퍼트해 일대에 최대 118억 배럴로 추정되는 석유가 매장돼 있어서, '미국의 세렝게티'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15]
북극보호구는 1960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 지정됐다. 알래스카 대부분 지역에서 이미 석유·가스 시추가 허용되지만, 석유·가스 기업들의 개발 압력은 북극보호구에까지 미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관련 이해관계자들이 의회를 설득해 보호구 해안평야 내 에너지 개발을 허용하는 법안 통과를 시도하면서 보호구 생태계에 의존하는 야생동물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됐다.
시추는 언제나 위험을 동반한다. 기존 알래스카 석유 시추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유출 사고가 거의 매일 발생하며 환경에 장기적인 피해를 남길 수 있다. 또한 북극보호구에서 석유 시추가 허용되면 도로, 파이프라인, 자갈 채굴장, 중장비 등 생산 인프라가 들어서며 원시 자연이 산업화 영향에 훼손된다. 개발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북극보호구 내 에너지 개발은 에너지 비용을 낮추거나 에너지 안보를 높이는 데 거의 기여하지 않는다고 환경론자들은 비판한다.
조류와 서식지를 보호하는 데 전념하는 미국 비영리 환경 단체인 오듀본(National Audubon Society)은 미국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보호구의 천혜 자연을 지킬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으로 연비 기준 강화, 에너지 절약, 적정한 입지의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의 책임 있는 개발을 제시한다.[16]

▲알래스카 북동부의 북극 국립야생동물보호구(Arctic National Wildlife Refuge) 해안 평원으로 이주하는 포큐파인 순록 떼(Porcupine Caribou Herd)의 모습이 보인다.
AP/연합뉴스
2017년 115차 미국 의회에서 민주당 소속 하원의원인 재러드 허프원 의원이 알래스카 북극 북극보호구 해안 평야를 자연 보호 구역으로 영구 보존하는 법안(H.R. 1889, 115th)을 대표 발의했다. 144명(민주당 142명, 공화당 3명)의 의원과 함께 공동 발의된 "우달-아이젠하워 북극 야생 법안(Udall-Eisenhower ArcticWilderness Act)"은 알래스카 북극보호구 해안 평원 전체 155만9538 에이커(약 6310km²)를 미국 연방 국립자연보호제도(NWPS)하에 자연보호구역으로 영구 지정함으로써, 산업 개발로부터 보호하고 미래 세대에게 자연생태 가치를 물려주려는 것이 목적이다.
법안은 그 명칭에서도 드러나듯이 과거 모리스 우달과 드와이트 아이젠아워가 각각 북극지역 보호를 위해 기여했던 맥락을 계승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법안 본문에 "미국은 광활하고 손상되지 않은 야생생태계를 현세대와 미래 세대를 위해 보전할 도덕적 책임이 있다"는 인식이 담겨 있으며 북극보호구가 미국 내에서도 매우 완전한 원시 생태계 중 하나라는 전문가 인식이 입법적 근거로 제시되어 있다.[17]
이 법안은 자원개발 논리가 지배해 온 북극지역에 대해 생태보전 논리를 제도화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H.R. 1889는 2017년 4월 4일 하원에 상정되었으며 상임위원회(자연자원위원회)에 회부되었으나 지금까지 표결에 부쳐지지 않았다. 현재 제안된 법안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정치적·입법적 논쟁의 대상으로 개발 금지 및 보전 강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개발 정책 변화와 상충하는 위치에 있다.[18]
1980년대부터 이어진 북극보호구 개발 논쟁은 미국 내 최대 환경 갈등으로 꼽힌다. 알래스카 주정부와 일부 원주민 기업은 지역 일자리 창출과 세수 확대를 이유로 개발을 지지하지만 환경단체들과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로 이미 위협받는 북극 생태계를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훼손할 것"이라고 경고한다.[19]
바이든 대통령이 2021년 취임 직후 트럼프 시절의 시추 승인 절차를 중단하고 북극보호구를 "미래 세대를 위한 자연유산"으로 보전하겠다고 선언했다.[20] 그러나 트럼프가 돌아오자 원래 상태로 되돌아갔고, 북극보호구는 다시금 미국 에너지 정책의 상징적 전장으로 부상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화석연료 개발 규제 철폐와 재생에너지 축소 기조는 단기적으로는 지역 경제와 에너지 자립을 내세운 정치적 성과를 얻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지속가능성·생물다양성·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전 지구적 목표와 충돌한다. 미국 국민의 정치적 선택이 세계를 무역전쟁으로 몰아넣은 데 이어 '미국의 세렝게티'와 인류의 공동의 자산인 북극을 불가역적 훼손으로 몰아넣을 가능성을 점점 키우고 있다.
글: 이윤진 SDG경영연구소장,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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