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백에서 쏟아지는 향기로운 커피 원두
연합=OGQ
우리나라에서 커피 소비와 이에 따른 커피 수입이 급증한 것이 2000년대 중반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매년 20% 내외의 증가를 보여 왔다. 커피 소비가 폭발하던 당시에 방영된 드라마 하나가 바리스타라는 직업 열풍을 불러일으켰고, 다양한 커피 메뉴에 대한 소비자들의 흥미를 자극하였다. 2007년 7월에 시작한 <커피프린스 1호점'>이라는 드라마였다. 낯설었던 직업인 바리스타와 낯설었던 다양한 커피 음료를 친숙하게 만드는데 이 드라마가 끼친 영향이 적지 않았다.
드라마의 인기, 바리스타에 대한 관심 증가와 함께 커피의 역사, 커피문화, 그리고 커피 시장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폭증하기 시작한 것이 이즈음이었다. 커피 생산지를 찾아 떠나는 커피 탐방이 유행하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수여하는 각종 단체의 설립이 줄을 이었으며, 세계 커피 시장 동향에 대한 관심 또한 뜨거워졌다. 관심의 증가에 따라 커피 관련 가짜뉴스가 폭증하기 시작한 것도 당시였다.
당시 등장하여 커피인들이 자주 입에 올린 대표적인 가짜뉴스의 하나가 '세계 교역량에서 오일에 이은 2위 물품이 커피'라는 주장이었다. 커피가 세계에서 오일 다음으로 두 번째로 많이 거래되는 상품이라는 낯선 소식에 많은 사람이 놀라워했다. 커피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한 물품을 다루는 일에 종사한다는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게 사실일까? 전혀 근거 없는 정보였다. 당시나 지금이나 커피는 국제 무역에서 교역량 기준으로 100위밖에 위치하는 물품일 뿐이다. 사실 당시 이 주장의 기준이 거래 무게인지, 거래 금액인지, 거래 건수인지조차 명료하지는 않았지만, 커피인들에게 기준은 중요하지 않았다. 커피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정보라는 점에서 마구 믿고 전파하기에 바빴다.
2023년 기준으로 전 세계 상품 교역 중 커피는 금액 기준 102위, 전 세계 교역액의 약 0.19%를 차지하였다. 연간 350억 달러 수준이다. 비교하자면, 미국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대미투자액 3500억 달러는 매년 거래되는 세계 커피 무역 총액의 10배 규모다. 만일 커피가 국제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년 전부터 떠도는 가짜뉴스, 즉 세계 교역량 기준 2위 물품이라면 이번 트럼프 주도의 관세 전쟁에서도 반도체, 자동차, 철강, 의약품처럼 특별 관세의 대상으로 논의되어야 마땅하다. 논의가 전혀 없는 것을 보면, 커피가 국제 무역에서 그리 중요한 물품은 아닌 게 분명하다.
2005년 전후 커피에 대한 관심 증가는 커피 역사 관련해서도 많은 가짜뉴스를 만들고 유행시켰다.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처음 마신 인물이 고종이라는 주장, 커피를 우리 선대들은 양탕국이라고 불렀다는 주장, 커피를 처음 발견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염소라는 이야기, 로마 교황이 커피에 세례를 주었다는 이야기 등 근거 없는 가짜뉴스들이 책을 통해, 언론을 통해 크게 떠돌았던 것도 2005년 전후였다.
역사에 무겁고 귀한 것이 있고, 가볍고 하찮은 것이 있을까? 어떤 역사는 귀하고 중하기에 정확하게 써야 하고, 어떤 역사는 천하고 하찮아서 대충 써도 괜찮은 것일까? 과연 역사에도 귀천이 있을까?
우리나라 역사 연구의 수준 향상을 방해하는 요인 중 하나는 역사의 대상이나 소재에 따른 차별적 태도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역사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역사에도 귀천이 있다고 느끼는 듯하다. 왕조사, 정치사, 외교사, 전쟁사, 국제관계사 등에서 사건 이름이나 날짜를 틀리게 쓰면 매우 큰 비난을 받는다.
반면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거나 경험할 수 있는 일상적인 현상이나 물질의 역사를 잘 못 서술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커피 역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보면 여실하다. 물질의 역사로 대표되는 미시 역사의 축적에 기반하지 않은 거시 역사는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커피 한잔에 담긴 문화사, 끽다점에서 카페까지>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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