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2022.1.9
연합뉴스
오랜 세월 부동산 불평등 해소의 핵심 기제로 보유세 강화를 주창해 온 내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최근 한 달 사이에 분위기가 급격히 반전되었다. 정부 고위 관료들의 입에서 보유세의 필요성이 언급되기 시작하고, 소위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 보유세 강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최근 몇 년간 수면 아래 억눌려 있던 논의가 마침내 '가장 뜨거운 이슈'로 귀환한 것이다. 실로 놀랍고도 반가운 일이다.
왜 이런 반전이 일어났을까. 짐작건대 이재명 정부 출범 후 6.27대책이 발표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대출규제는 '반짝효과'가 있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 드러났고, 9.7대책 발표 후 부동산값 폭등 시 공급 확대책 발표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확연해졌다. 부동산 투기를 잠재우려면 근본적인 정책 수단인 보유세를 건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명백해졌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과거 윤석열 정부가 종부세를 무력화시킨 후 생긴 '보유세 공백'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보유세를 '징벌적 과세'로 규정하고 그 기능을 무력화하려 했던 시도들은, 시장에 '부동산 불패'라는 잘못된 신호를 줬다. 주택을 거주의 공간이 아닌 투자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을 제어할 가장 강력한 수단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출범 후 3년간 보유세 강화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다가 집값 폭등을 자초했고, 그 후에는 부동산 조세 전체(종부세, 취득세, 양도소득세)를 급격히 강화하면서 '1주택자 = 실수요자, 다주택자 = 투기꾼'이라는 프레임 아래 다주택자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는 차등과세를 펼쳤다는 전사(前史)가 존재했다. 하지만 정상적인 정부였다면 문재인 정부의 오류를 바로잡는 선에서 부동산 세제를 개편했을 텐데, 윤석열 정부는 신난 듯이 종부세 무력화로 치달았다.
그 결과는 어떠했나. 2022년 이후 완연한 안정세를 보이던 부동산 시장은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한동안 언론 지면에서 사라졌던 '영끌'과 '패닉 바잉'이라는 용어도 다시 등장했다. 지금은 마치 '민주 정부가 집권하면 집값은 폭등한다'는 속설을 입증이라도 하듯 부동산값 상승세가 계속되는 상황이다.
이제라도 보유세 논의가 다시 공론의 장으로 돌아온 것은 다행이다. 지금이야말로 부동산 세제 관련 원칙을 바로 세울 때다.
보유세는 시장 안정화와 불평등 완화에 꼭 필요한 세금
첫째, 보유세는 '징벌'이 아니라 '원칙'이다. 천연자원·환경과 마찬가지로, 토지는 공유부(Commons)의 성격이 강하다. 그런 자산을 보유하거나 이용함으로써 얻는 불로소득에 우선 과세하고 사회적 인프라 사용에 대한 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은 조세정의의 기본이다. 특히 다주택자와 초고가 주택 보유자를 대상으로 부과하는 종부세는 자산 불평등을 완화하고 소수의 부동산 독점을 막는 최소한의 장치다.
종부세는 부동산 고액 보유자와 투기꾼을 대상으로 부과하기 때문에 징벌적 성격을 갖기는 하지만, 부동산 투기가 우리 사회에 끼치는 해악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는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이런 논란을 피하려면 종부세 대신에 국토보유세를 도입하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국토보유세는 모든 토지 소유자를 대상으로 부과하여 세수 순증분을 모든 국민에게 1/n씩 기본소득으로 분배하는 새로운 세금이다(자세한 내용은 내가 쓴 <오마이뉴스> 2021년 7월 27일 자 칼럼
'집값 잡는 국토보유세, 이재명·추미애가 옳다' https://omn.kr/22dlp을 참고하라). 보유세를 강화하는 대신 다른 세금, 즉 부동산 거래세나 부가가치세를 완화하는 '패키지형 세제개편'도 고려할 수 있다.
둘째, 보유세는 가장 강력한 '시장 안정화' 기제다. <그림 1>과 <그림 2>는 종부세가 각각 이명박 정부, 윤석열 정부에 의해 무력화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끝없이 올라가던 집값은 종부세, 특히 주택분 종부세가 최고조에 달했던 2007년과 2021년 이후 하향 안정화되었다. 종부세는 확실히 시장 안정화 기능을 발휘했던 셈이다. 주택분 종부세가 급감하고 난 다음 주택 가격이 다시 상승세를 보였다는 점도 종부세가 부동산 시장에 미친 영향을 반증한다.

▲<그림 1>2007~2016년 종부세 세수의 변화
전강수

▲<그림 2>2016년 이후 종부세 세수의 변화
전강수
부동산 시장의 과열은 근본적으로 투기 수요에서 비롯된다. 역대 정부가 흔히 활용해 온 양도소득세는 불로소득을 일부 환수하기는 하지만 '동결효과'라는 치명적 결함을 갖고 있다. 세금 때문에 오히려 매물이 잠기는 효과가 발생해서 시장 안정화 효과가 반감되는 것이다. 반면 보유 자체에 대한 비용을 높이는 보유세, 특히 종부세는 투기적 목적으로 과다·고액의 부동산을 보유할 유인을 직접적으로 감소시킨다.
나는 <오마이뉴스> 2025년 9월 11일 자 칼럼(
'이재명 정부는 달라야... '9.7 부동산 대책'의 결정적 문제점' https://omn.kr/2f9mi)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그때는 김윤덕 국토부 장관이 "주택시장의 근본적인 안정을 위해서는 충분한 주택이 공급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던 때다.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을 비유하자면, 어떤 건물의 바닥에 온통 휘발유가 뿌려져 있는 상태다. 언제든 불티 하나만 튀어도 건물 전체가 화염에 휩싸일 수 있다. 여기서 '휘발유'란 불로소득 획득 가능성이고, '불티'란 금리 인하라든가 새로운 개발 계획 발표 같은 것이다. 투기를 근절하려면 우선 바닥의 휘발유를 제거해야만 한다. 가장 효과적인 정책 수단은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 세금은 직접적으로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환수할 뿐만 아니라 부동산 보유 비용을 높여 투기 심리를 꺾는 효과가 있다.
'집은 사는(buy) 곳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라는 상식을 회복하려면, 보유세로 부동산 시장 바닥의 휘발유를 제거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보유세의 시장 안정화 효과를 말하면, 세금만으로는 집값을 잡을 수 없다고 반박하는 자들이 꼭 등장한다. 누가 보유세만으로 시장을 안정시키자고 하는가. 보유세는 시장 안정화의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점을 무시한 터무니없는 반박이다. 실제 집값을 안정시키려면 보유세 외에도 각종 규제가 필요하다.
셋째, 현행 보유세의 핵심인 종부세는 상당 부분이 부동산 교부세로 지방에 지급되어 지방재정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다. 종부세든 국토보유세든 발생하는 세수로 국가가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용도로 지출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과거 이명박 정부 때도 그랬고, 윤석열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종부세를 무력화하면서 세수가 대폭 줄자 부동산 교부세 지급액이 줄어든 지방정부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종부세는 1주택 실거주자에게 세금폭탄'이라는 프레임이 의외로 강고하다. 민주당이 보유세 강화를 기피하고 폄훼하는 데는 이 프레임이 큰 영향을 발휘했다. 보유세 강화를 빼고는 내세울 정책 수단이 없으니 오세훈식 공급 확대를 말한다든지, 그린벨트 해제해서 수도권에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는 이명박식 공급 확대로 폭주한다.
하지만 1주택 실거주자의 조세저항 문제는 현행 제도에서도 약간의 예외 조항을 두는 것만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고령자와 장기 보유자에 대한 세액 공제 제도를 개편해서, 1주택 실거주자의 세 부담을 거주 연수에 비례해서 완화하면 된다. 1주택 실거주자의 조세저항을 핑계로 부동산 불로소득을 허용해서 하시(何時)라도 투기가 발발하는 조건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 일부의 사례를 들어 대원칙을 흔드는 것은 이 땅의 기득권 세력이 활용하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다.
부동산 개혁은 결국 국민의 몫
▲지난 27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다행히 분위기가 바뀌어 금기처럼 여겨졌던 보유세가 다시 테이블 위에 올랐다. 논의가 본격화하면, 기득권 세력과 수구 언론들은 또다시 '세금 폭탄'이라는 자극적인 구호로 공론장을 혼탁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 국민은 윤석열의 내란을 극복하면서 남다른 애국심과 정의감을 장착했다.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해 정말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분별할 역량도 갖추었다고 믿는다.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이 불량시장의 상태를 벗어나 공정성·형평성·효율성을 발휘하는 우량시장이 되도록 만드는 일은 결국 국민의 몫이다. 정치권이 더 이상 원칙을 외면하지 못하도록 강하게 압박하고 매섭게 감시하자.
그것(사회개혁: 인용자)은 생각의 각성과 사상의 진보를 통해 달성된다. 올바른 생각이 없으면 올바른 행동이 나올 수 없고, 올바른 생각이 있으면 반드시 올바른 행동이 나온다. 힘은 항상 대중의 손에 있다. 대중을 억압하는 것은 그 자신의 무지와 근시안적 이기심이다.
19세기 말 미국에서 '진보시대(Progressive Era)'를 열었던 사회개혁가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가 <사회문제의 경제학>에서 한 말이다. 우리도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진보시대를 열 수 있다. 국민이 올바른 생각을 갖느냐 못 갖느냐, 또 힘이 자신들의 손에 있음을 깨닫느냐 못 깨닫느냐가 관건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