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0.31 10:11최종 업데이트 25.10.3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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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훈련소 연무대군인교회기독교군종교구 유튜브 갈무리

충남 논산시 연무읍에 가면 어디에서나 잘 보이는 거대한 흰 십자가가 있다. 육군훈련소 연무대군인교회에 있는 십자가상이다. 높이가 무려 40m, 10층 건물 높이다. 군부대에 저렇게 거대하고 눈에 띄는 조형물이 있어도 되는가 싶을 만큼 크다.

육군훈련소 안에 있는 연무대군인교회는 2018년 신축되었다. 대지만 4만 9500㎡(1만 5000평), 건물은 7600m²(2300평)이며 지상 3층 구조로 수용 가능 인원이 5000여 명에 달한다. 건축비는 약 200억 원으로 건축헌금에 사랑의교회 7억, 광림교회 6억, 새로남교회 2억을 비롯해 614개 교회와 588개의 단체, 9059명의 신자들이 동참했다.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한국의 대형교회들은 대부분 연무대군인교회 신축에 힘을 보탰다.

한국 개신교가 이처럼 군 선교에 관심이 많은 것은 청년층 신자 유입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육군훈련소가 청년들과 개신교의 중요한 접점이 되기 때문이다. 훈련소 수료나 전역 후에도 신앙을 유지하는 것과 별개로, 연무대군인교회에서는 1992년 연합세례식을 시작한 이래 2023년까지 육군훈련소에서 총 178만여 명이 세례를 받았다. 2012년에는 9519명이 한꺼번에 세례를 받아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연무대군인교회뿐 아니라 군 선교에 다수의 대형교회가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

2010년대에는 입대한 장병들에게 개신교를 소개하고 입교시키는 일에 선교의 방점을 두었다. 그런데 요즘은 여기서 한층 더 나아가 군에서 선교한 장병을 다시 사회에 개신교인으로 내보내는 것까지를 목표로 한다. 군선교연합회가 발표한 비전2030의 핵심 목표는 '한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100만 장병을 한국교회로'이다. 매년 10만 명씩 10년간 100만 명의 개신교 신자 장병을 한국 교회로 파송하겠다는 계획이다.

군 선교의 미션은 전 군의 복음화를 통한 우리 군의 신앙전력화다. 종교의 자유가 있으니 군인이 종교를 갖는 것은 전혀 왈가왈부할 일이 못 되지만, '군의 복음화'는 선뜻 이해되지 않는 개념이다. 군은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민의 군대로, 엄연한 국가기관이다. 국가기관 역시 포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고 신앙을 통해 장병들의 군 생활에 도움을 주겠다는 목표 역시 이상할 것이 없지만,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 하나님의 군대로 만들겠다는 미션이 과연 민주공화국에서 수용 가능한 목표인지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역대로 군에서는 '신앙전력화'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통용된다. 교계 인사뿐 아니라 장관이나 고위급 장성들도 자주 쓰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역대 장관이나 참모총장 중에 개신교인이 많다. 한국기독군인연합회(KMCF)의 회장은 대개 합참의장이거나 각 군 참모총장이 맡아왔다. 한국기독군인연합회는 신앙전력화를 목표로 지휘부로부터 각급 부대에 이르기까지 선교 책임자를 정해두기도 한다.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군에서도 교회는 많은 자원과 권력이 모이는 곳으로 통한다. 군 교회에는 신앙을 쌓으러 가는 군인도 있지만, 권력을 만나러 가는 이도 많다. 진급 경쟁에서 소위 '육사 카르텔'만큼 '교회 카르텔'도 만만치 않다는 것은 군인 간부들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다.

'목사'라서 특검 조사 응하지 않겠다?

9월 23일 해병대예비역연대가 서울 마포구 극동방송 앞에서 김장환 목사(극동방송 이사장)에게 채해병 특검팀 출석을 요구하고 있다.유지영

극동방송 이사장이자 원천침례교회 원로목사인 김장환 목사는 '채 상병 사망 사건' 당시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과 관련해 오는 11월 3일 수원지방법원에서 공판 전 증인신문을 받을 예정이다. 그간 소환에 불응한 김 목사에 대해 해병 특검이 법원에 공판 전에 1회에 한해 신문을 진행할 수 있는 '공판 전 증인신문'을 신청했고, 법원이 그 필요성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김 목사가 출석할지는 미지수다.

김장환 목사는 한국 교계의 원로 목사로서 군 선교에 각별한 신경을 쏟아왔고, 군종목사들을 상대로 여러 차례 설교도 했다. 계엄 직전에 열렸던 56회 국가조찬기도회에서는 "군대를 위해서 기도해달라"는 말도 했다. 이날 국가조찬기도회에는 한국기독군인연합회장을 맡고 있던 계엄사령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도 참석했다. 김 목사는 오래전부터 군 선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군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랬던 김장환 목사는 해병대수사단이 임성근 사단장을 업무상과실치사죄 혐의로 민간에 이첩하려는 과정에서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격노하고 수사 외압을 가했을 때 임성근에 대한 구명을 로비한 의혹을 받고 있다. 김 목사가 해병 특검으로부터 압수수색을 받았고, 수사외압 시기에 임성근을 비롯해 윤석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및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주요 관계자, 국회의원들과 수차례 통화를 한 사실 역시 언론을 통해 밝혀진 바 있다.

김 목사는 구명 로비 연루 의혹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압수수색을 당한 후인 지난 7월 20일, 김 목사는 원천침례교회 주일예배 설교 도중에 "사단장을 살려주라고 그랬으면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야. 나는 기도해 준 죄밖에 없어"라며 "그게 대한민국의 위법이라면 공산당 나라보다 더한 나라"라고 한 뒤 신자들에게 "왜 아멘 안 하지?"라고 했다.

통화 기록과 설교 내용만으로 김 목사가 어느 정도로 어떻게 로비를 했는지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임성근 사단장과 통화한 사실, 그리고 그를 위해 '무언가'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해 주었다는 점은 알 수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세상을 떠난 것은 채수근 상병인데 왜 사단장을 살려주라고 해야 하며 무슨 까닭으로 그를 위해 당연히 기도해 줘야 한단 말인가?

백번 양보해 전우를 잃은 군을 위해 기도해 줬다 해도 한국 교회의 큰 원로로 꼽히는 김 목사가 국방부 장관도 아니고, 해병대 사령관도 아니고, 사망 사건의 주요 책임자로 거론되던 일개 사단장을 콕 집어 전화까지 나누며 무엇을 기도해 주었단 말인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수사는 김 목사의 특검 출석 거부로 난항을 겪고 있는 모양새다. 의혹을 확인하려면 일단 본인부터 만나야 하는데 여기부터 문제가 생긴 것이다. 10월 12일 자 MBC 스트레이트 '목사는 성역인가'편에 등장한 김 목사는 특검 출석을 요구하는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원들을 보고 "어딜 목사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냐"는 말을 했다. 목사는 소환도 못 한다는 말인가? 법원이 합법적으로 발부한 영장에 따라 수사기관이 압수수색을 집행하고, 그 결과 소환을 통보했는데 '목사'라서 출석에 응하지 않겠다면 목사는 치외법권이라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다.

성역 없는 수사 통해 목회자와 권력의 유착 끊어내야

2022년 11월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기독교계 원로 오찬 간담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양병희 대한성서공회 이사장, 장종현 백석대학교 총장, 김장환 극동방송 이사장, 윤 대통령, 김삼환 명성교회 원로목사, 김태영 백양로교회 담임목사.대통령실

김장환 목사가 이렇게 당당한 데는 정치권 탓도 크다. 김 목사는 7월 27일, 원천침례교회 주일예배 설교 중에 "한쪽에서는 미국이 저렇게 어렵게 한국 저기 하는데 좀 도와달라고 뭐 그런 부탁을 해서 내가 아는 사람들 시작을 했는데 특검이 온 거야, 찬물을 콱 갖다 뿌리는 거라"라는 말을 했다. 세계 복음주의 교계의 거두이자 미국과의 긴밀한 연계를 바탕으로 역대 정권마다 영향력을 미쳐온 김 목사다운 말이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8월 25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소셜미디어에 '한국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숙청이나 혁명처럼 보인다'는 말을 썼고, 회담 직전에 열린 행정명령 서명식에서도 "최근 며칠 한국의 신정부가 교회들을 잔인하게 급습"했다고 언급했다.

국면이 이러하니 정치권도 김 목사 눈치 살피기에 급급하다. 국민의힘은 말할 것도 없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김 목사에 대한 수사에 불만을 드러냈다. 7월 20일,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인 박상혁 의원은 논평을 통해 "한 치의 의혹도 남김없이 진상을 명확히 규명하기 위한 특검의 수사 의지를 지지한다"면서 "종교인과 종교시설에 대한 수사는 각별히 절제된 모습이어야 한다"는 우려를 남겼다.

범죄 혐의를 수사하는 수사기관이 '각별히 절제'해야 되는 대상도 존재한다는 이상한 인식은 "어딜 목사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냐"던 김 목사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김 목사가 원로 개신교 목사라는 이유로 수사에 제동을 거니 특검이 힘 있게 수사를 밀고 나가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김 목사의 '임성근 구명 로비 의혹'은 비단 임성근 한 사람에 국한된 문제로 보기 어렵다. 교회를 출세의 원천으로 여기고, 신앙을 권력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국민의 군대를 성전을 치르는 십자군 쯤으로 착각하고 '신앙전력화'니 '전군의 복음화'를 운운하는 일부 개신교 목회자들과 핸드폰에 20자리 비밀번호를 걸어 수사기관에 내어놓곤 2년 내내 도무지 기억이 안 난다고 하다가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하나님의 사랑" 운운하며 기적적으로 풀었다면서 비밀번호를 알려준 임성근 사단장 같은 이들, 그리고 신앙을 특권으로 여기는 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신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진실된 목회자들과 신도들이 세상엔 더 많다. 더 늦기 전에, 김 목사 사건을 계기 삼아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목회자와 권력의 만연한 유착을 끊어내야 한다. 그래야 더 불행한 일들을 막을 수 있다.

군에서 벌어지는 선교라는 것의 실체도 다시 짚어봐야 할 때다. 군선교연합회 이사장인 김삼환 명성교회 원로목사는 지난 3월 20일, 군선교연합회 제54차 정기총회에서 군종목사들이 모여있는 가운데 윤석열 탄핵 정국을 거론하며 "이런 상황에서 눈물 흘리지 않으면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다"라며 "주님께 이 나라를 살려달라고, 자유대한민국 지켜달라고 눈물 흘리며 나라를 위해 1분간 기도하자"고 했다.

목회자들이 군대에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어 '신앙전력화'란 미명 하에 장병들에게 선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군인을 모아놓고 내란으로 탄핵당한 대통령을 위해 기도해 주자는 것이 신의 가르침 맞나? 군은 헌법에 따라 설치된 국민의 도구이지, 목회자들의 사유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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