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계의 주인> 스틸컷.
바른손이앤에이
<세계의 주인>이 더욱 사랑스러운 지점은,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상대성의 세계에 머무르지 않고, 서로에게 지속적으로 틈입하려는 노력들이다. 태선이 돌려본 어린이집 CCTV 속에서는, 뜻밖에 주인이 나타나 누리를 꼬집는 장면이 나온다. 태선 앞에 선 누리는, CCTV 속 주인과 비슷하게 태선의 팔을 연신 꼬집으며 말한다. "선생님, 이래두 안 아파요? 이래도?" 담낭염으로 응급 수술을 한 태선은 마취에서 깨며 주인의 손등을 꼬집는다. 영화에서 꼬집기란 주인-누리-태선으로 이어지는, 아픔을 발화하게 하는 매개이자 서로를 향한 손짓이 된다.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는 왜 폐지되어야 할까
영화는 국내 개봉 닷새 만에 3만 관객을 돌파하며 순항 중이다. 개봉 전부터 한국 영화 최초로 토론토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으며 핑야오국제영화제에서 2관왕을 휩쓰는 등 해외 영화제들의 러브콜을 받았다. 우리 시대 정상성의 의미를 묻는 영화의 이야기에 세계가 함께 공명하는 셈이다.
친족 성폭력 이야기를 정공법으로 다룬 영화가 개봉하기 불과 한 달 전인 지난달 24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는 친족에 의한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이는 오랜 세월 여성계가 벌인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운동이 거둔 성과다. 그러나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적하듯 친족 성폭력의 본질은 연령이 아닌 관계성에 있으며, 가족 내 위계라는 특수성이 피해 신고를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공소시효 전면 폐지야말로 우리가 계속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국회에 더욱 촉구해야 할 의제다.
마지막으로 하나, 소개하고 싶은 논문이 있다. 여성학 연구자이자 친족 성폭력 피해 당사자인 곽정이 쓴 석사 학위 논문 '친족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의 불/가능성'이다. 논문에서 그는 가부장제와 가족주의 안에서 오랜 시간 묵인되고 수용된 친족 성폭력이라는 젠더 폭력은 "국가와 사회가 공모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썼다. 이어 가해자가 원하는 침묵을 깨트리는 것이 곧 피해자의 발화이며, 피해자의 이야기를 개인의 불행으로 치부하거나 어쩔 수 없음으로 설명하려는 '듣기'가 되지 않도록 하는 청자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세계의 주인>과 곽정의 논문은 우리가 가부장적 국가와 사회 질서의 공모자는 아닌지, 피해자의 이야기를 납작하게 듣고 소비하는 청자는 아니었는지 치열하게 되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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