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구의 한 부동산에 매물 정보가 써붙어 있는 모습.
연합뉴스
그러나 불안합니다. 이러다 영영 이사를 가지 못하지 않을까? 내가 이러고 있는 사이 집값과 전셋값이 더 오르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이 듭니다. 사람들이 무리한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이유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현금 가치는 떨어지는 반면 집값은 계속 오릅니다. 할 수 있다면 30년까지 상환기간을 잡고 최대한 많은 대출을 끌어서 구입하는 게 경제적이라는 겁니다.
30년 동안 갚는 도중에도 현금 가치는 떨어지고 자산 가치는 상승할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상환부담액도 줄어듭니다. 지금 200만 원을 상환할 때의 경제적 부담과 물가가 상승할 10년 뒤 200만 원을 갚을 때의 경제적 부담은 다릅니다. 부부가 맞벌이를 한다면 월 200~300만 원씩 원리금을 균등 상환하는 것 정도는 해볼 만한 일입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지 않고, 월급이 고정적으로 들어온다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저같이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들은 매달 월급이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것에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8월 경제활동인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비정규직이 무려 856만 명으로 전체노동자 중 38.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208만 8000원에 불과합니다. 정규직 노동자의 월급은 389만 6000원으로 비정규직보다 180만 원을 더 벌지만 집값을 생각하면 노동소득만으로 집을 장만하는 건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제 나이가 40인데 30년 동안 대출을 받으면 70세까지 돈을 갚아야 합니다. 70세 까지 일을 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도 없습니다. 2년짜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다음 직장을 어디서 얻을지도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부동산은 노동의 문제와 떼려야 뗄 수가 없습니다.
부동산 문제는 노동과 지역균형발전의 문제
마지막으로 서울을 벗어나 지역으로 이주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처가와 가까운 경북 지역을 살펴보니 전세는 1억 5천, 매매는 2억이면 25평 아파트에서 거주할 수 있었습니다. 1억 5천 정도를 3% 정도로 대출받으면 20년 동안 약 83만 원씩 원리금 균등상환을 하면 되니 이 정도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역시 일자리가 가장 큰 문제이지만 무슨 일이든 성실하게 하면 길은 있을 겁니다. 그런데 개인이 노력한다고 바꿀 수 없는 게 있습니다. 바로 환경입니다. 아이를 키워보니 믿을 수 있는 소아과, 산부인과, 어린이집이 중요합니다.
코미디언 임라라씨는 산후출혈로 정신을 잃었지만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40분간 당했다고 합니다. 서울이 아닌 지역이었다면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을 겁니다. 2019년 양산에서는 의식을 잃은 4살 아이가 양산부산대병원을 찾아갔다가 치료를 받지 못하고 부산의 다른 병원으로 이송됐다가 끝내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만 치료가 가능한 병을 앓는 아이를 데리고 서울역으로 향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결국 부동산 대책은 일자리 문제와 육아 대책, 교통과 병원 문화 등 지역균형 발전의 문제입니다. 모두가 근본적 원인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부동산 문제를 둘러싼 논쟁과 대책의 중심이 모두 20억짜리 아파트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했다고 하는 정치인들도 이런 아파트들을 가지고 있다 합니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과 에너지를 조금만 돌려보면 좋겠습니다. 최저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평생 1억을 모으는 것도 어려운 사람들, 지역의 사람들이 어디서 먹고 살 수 있을지, 이들의 자녀와 부모들은 어떤 공간에서 살아야 할지를 고민한다면 더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할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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