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0.30 06:58최종 업데이트 25.10.30 06:58
  • 본문듣기
흔한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연대를 모색해 나갑니다.[편집자말]
아빠와 아기 이미지pxhere

정훈님, 얼마 전 아이가 태어난 지 1년이 되었습니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누워만 있던 아이가 이제는 걷고 뛰어다닙니다. 예비신혼부부로 신청을 했다가 덜컥 당첨되어 결혼까지 하게 만든 임대아파트는 방 한 칸 거실 하나가 있는 37제곱미터입니다. 큰 집에 살 욕심도, 자산으로 돈을 벌 욕심도 없던 부부에게는 넉넉한 크기였습니다. 결혼도 시켜주고 애도 낳게 해준 소중한 임대아파트였지만 걸어 다니는 아이를 감당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글을 쓰고 밥을 먹던 커다란 식탁을 버렸습니다. 소중하게 쌓아두고 있던 책도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입지 않는 옷은 버리고 새 옷은 사지 않아 아이 옷을 넣을 공간을 확보했습니다. 장난감은 장난감도서관에서 빌려서 사용하고 쌓아두지 않았습니다. 갖은 노력을 다해 한 평이라도 넓은 공간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한창 뛰어다니는 아이를 감당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가을에야 부지런히 밖으로 나가면 되지만 겨울에는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날 것 같아 걱정입니다. 건조대에 널린 축축한 빨래를 까치발을 들어 꺼내는 아이를 보며 귀엽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빨래를 널 수 있는 베란다가 있거나 건조기를 놓을 수 있는 크기의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의 욕심과 마음은 끝이 없나 봅니다.

언론에는 20억 아파트이야기만... 전세사기 걱정 없이 살고 싶다

이사를 갈 마음을 먹고 집을 알아보기 위해 부동산 플랫폼에 접속해보았습니다. 구경이나 해보자는 심정으로 아이 키우기 좋은 단지형 아파트들 가격을 살펴보았습니다. 15억. 20억. 핸드폰 화면 속 지도에 떠 있는 비현실적인 금액들을 보니 헛웃음만 나왔습니다. 언론에 나오는 20억짜리 아파트는 다른 세상이야기이니 그냥 넘어가더라도 서울에는 5억 이하 아파트조차 찾기 어려웠습니다.

능력도 안 되지만 부동산 소유는 가급적 하고 싶지 않아 전세를 알아보는데, 전셋값도 비현실적인 것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저도 나름 '영끌'을 해보았습니다. 신생아 특례 전세자금 대출 한도인 2억 4천과 현재 집 보증금과 모아놓은 돈을 합쳐 3억 5천 미만으로 조건을 걸어 검색해보았습니다. 전세 매물이 0이라고 떴습니다.

아파트는 무슨, 역시 집은 빌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빌라거지'라는 언론의 자극적인 표현이나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놀면 주민들이 시끄럽다고 민원을 넣는 일은 극히 일부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비교적 빌라 가격이 저렴한 강서구 화곡동으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빌라 매매가가 전세가랑 비슷했습니다. 전세사기라도 당하면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데리고 어디를 갈 수 있을까 걱정입니다.

경기 화성시 LH 임대주택 100만호 기념단지인 동탄 공공임대주택의 복층형 세대 내부.연합뉴스

역시 임대아파트밖에 답이 없다는 생각에 매일같이 SH(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 접속해 수능 공부를 하듯 공고문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런데 합격의 길은 멀고도 험난합니다. 아이 하나로는 바로 탈락입니다.

제1차 국민임대주택 입주자 모집 공고 결과 평균 경쟁률은 33대 1이었고, 가장 인기가 많았던 마장동 49제곱미터 경쟁률은 230.5대 1이었습니다. 뉴스에 나오는 민간아파트 일명 로또 분양과 비슷한 경쟁률입니다. 최종 당첨이 아니라 서류제출 대상자로 선정된 커트라인을 보니 소득은 (전년도 도시근로자 가구원수별 월평균소득의) 50% 이하, 미성년 자녀는 3명 이상은 있어야 했습니다.

5인 가구 50%이하 가구원 소득은 451만 5524원입니다. 저도 복권 긁는 심정으로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59제곱미터에 넣어봤지만 보기 좋게 탈락했습니다. 59제곱미터는 제가 생각해도 아이 둘 셋 있는 분들부터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찾고 찾다 보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좁아도 이집에 좀 더 살다가 이사하면 되지 않을까? 애초 신혼부부는 6년까지 살 수 있는데, 아이를 낳으면 20년 까지 살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모두 단칸방에서 살았는데, 아이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버티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부동산을 둘러싼 불안

마포구의 한 부동산에 매물 정보가 써붙어 있는 모습.연합뉴스

그러나 불안합니다. 이러다 영영 이사를 가지 못하지 않을까? 내가 이러고 있는 사이 집값과 전셋값이 더 오르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이 듭니다. 사람들이 무리한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이유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현금 가치는 떨어지는 반면 집값은 계속 오릅니다. 할 수 있다면 30년까지 상환기간을 잡고 최대한 많은 대출을 끌어서 구입하는 게 경제적이라는 겁니다.

30년 동안 갚는 도중에도 현금 가치는 떨어지고 자산 가치는 상승할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상환부담액도 줄어듭니다. 지금 200만 원을 상환할 때의 경제적 부담과 물가가 상승할 10년 뒤 200만 원을 갚을 때의 경제적 부담은 다릅니다. 부부가 맞벌이를 한다면 월 200~300만 원씩 원리금을 균등 상환하는 것 정도는 해볼 만한 일입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지 않고, 월급이 고정적으로 들어온다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저같이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들은 매달 월급이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것에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8월 경제활동인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비정규직이 무려 856만 명으로 전체노동자 중 38.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208만 8000원에 불과합니다. 정규직 노동자의 월급은 389만 6000원으로 비정규직보다 180만 원을 더 벌지만 집값을 생각하면 노동소득만으로 집을 장만하는 건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제 나이가 40인데 30년 동안 대출을 받으면 70세까지 돈을 갚아야 합니다. 70세 까지 일을 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도 없습니다. 2년짜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다음 직장을 어디서 얻을지도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부동산은 노동의 문제와 떼려야 뗄 수가 없습니다.

부동산 문제는 노동과 지역균형발전의 문제

마지막으로 서울을 벗어나 지역으로 이주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처가와 가까운 경북 지역을 살펴보니 전세는 1억 5천, 매매는 2억이면 25평 아파트에서 거주할 수 있었습니다. 1억 5천 정도를 3% 정도로 대출받으면 20년 동안 약 83만 원씩 원리금 균등상환을 하면 되니 이 정도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역시 일자리가 가장 큰 문제이지만 무슨 일이든 성실하게 하면 길은 있을 겁니다. 그런데 개인이 노력한다고 바꿀 수 없는 게 있습니다. 바로 환경입니다. 아이를 키워보니 믿을 수 있는 소아과, 산부인과, 어린이집이 중요합니다.

코미디언 임라라씨는 산후출혈로 정신을 잃었지만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40분간 당했다고 합니다. 서울이 아닌 지역이었다면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을 겁니다. 2019년 양산에서는 의식을 잃은 4살 아이가 양산부산대병원을 찾아갔다가 치료를 받지 못하고 부산의 다른 병원으로 이송됐다가 끝내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만 치료가 가능한 병을 앓는 아이를 데리고 서울역으로 향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결국 부동산 대책은 일자리 문제와 육아 대책, 교통과 병원 문화 등 지역균형 발전의 문제입니다. 모두가 근본적 원인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부동산 문제를 둘러싼 논쟁과 대책의 중심이 모두 20억짜리 아파트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했다고 하는 정치인들도 이런 아파트들을 가지고 있다 합니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과 에너지를 조금만 돌려보면 좋겠습니다. 최저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평생 1억을 모으는 것도 어려운 사람들, 지역의 사람들이 어디서 먹고 살 수 있을지, 이들의 자녀와 부모들은 어떤 공간에서 살아야 할지를 고민한다면 더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할 거라 믿습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