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펠호프의 자유 공원으로 지정되기 전, 미리 들어가 커뮤니티 정원을 만든 젊은이들.
고정희
문제는 공항이 문을 닫자마자 시민들이 먼저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는 점이었다. 공항 폐쇄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비행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들어갔고, '템펠호프 공항부지 사후 이용을 위한 시민연대'가 결성되어 사후 이용 결정권을 시민들이 직접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정부에서 개발계획을 수립하기 전에 주도권을 먼저 쥐어야 했다. 인근 주민들은 주말이면 들어가 넓은 잔디밭에 문자 그대로 드러누웠다.
여러 스포츠 협회에서도 여기저기 텐트를 치고, 펜스를 세우고, 현수막을 걸어 취향에 따라 운동을 시작했다. 축구, 배구, 농구, 필드하키 등 여러 운동을 동시에 하더라도 서로 부대낄 것 없는 넓은 공간이었다. 젊은이들은 활주로를 바로 접수해 보드, 서핑, 행글라이더를 연습했다. 자전거를 타고 원 없이 달릴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잔디밭 한쪽에서는 도시농업협회가 결성되어 커뮤니티 정원을 만들었고 예술가들은 환경조형물을 세웠다. 시민들의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들은 조경가들이 제시한 멋진 공원 설계도를 전면 거부했다. "디자인이 식상하다,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공간을 이용하겠다, 여기서는 이것을 하고 저기서는 저것을 하라는 등 용도를 지정할 생각을 말아라, 숨 막힌다, 우린 편안한 공간이 좋다" 같은 의견들이 대두되었다.
가장 못생긴, 다만 자유로운 공원

▲템펠호프 자유 공원에서 연을 날리고 있다. 도심에서 이렇게 긴 연을 날릴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고정희
특히 부지 일부에 주택과 상가를 짓는 것에 대한 반대가 심했다. 시 정부에서는 "서민을 위해 천 개 정도의 저렴한 아파트를 짓겠다"고 했지만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템펠호프 공항을 이미 템펠호프 공원으로 바꿔 부른 시민들은 '단 천 명의 입주자만을 위한 공원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공원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면 이용에 많은 제약이 생기기 마련이다. 100퍼센트 제약이 없는 공원을 원했고 1퍼센트라도 양보하게 될 경우 실패라고 여겼다.
결국 '템펠호프 백퍼센트 공원화를 위한 모임'이 만들어졌고 서명운동을 벌여 정부에 압력을 넣었다. 2014년 1월 탄원에 필요한 서명 2만 개 이상이 모였다. 같은 해 5월 25일 시민 투표에 부쳤다. 그날은 원래 유럽연합 의원을 뽑는 날이었는데 투표소에 전례 없이 많은 유권자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유럽연합 의원 선거보다 템펠호프 공항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그 결과 시민들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다. 투표 후 시장은 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템펠호프 구 공항부지는 백퍼센트 공원으로 운영될 것"임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민연대 스스로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승리였다.
이 땅을 '템펠호퍼 펠트'라 부른 시 관계자들은 보존을 위한 법을 제정했다. 제6조 1항에 보면 "템펠호퍼 펠트는 베를린 시민들과 베를린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전면적으로, 영구적으로, 제한 없이, 그리고 무료로 여가 및 휴식 공간으로 제공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템펠호프의 자유' 공원은 베를린의 많은 공원 중에서 가장 못생긴 공원이다. 넓은 잔디밭과 활주로를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었기 때문이다. 다만 자유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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