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0.24 06:55최종 업데이트 25.10.24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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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현지시간) 니콜라 사르코지(가운데) 전 프랑스 대통령이 2007년 대선 자금을 리비아에서 조달하려는 범죄적 공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하기 위해 파리의 라 상테 교도소에 도착하고 있다.AP 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2007 ~2012년 재임)이 수감되었다. 2007년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대통령으로부터 불법 자금 조달을 공모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 받은 지 26일 만이다. 프랑스로선 루이 16세를 교수대에 세운 이후 232년 만에 있는 일이자 프랑스 5공화국 역사상 대통령이 갇힌 건 처음이다.

유럽연합(EU) 성립 후 회원국 가운데 전·현직을 막론하고 국가 최고 지도자가 감옥에 간 최초의 사례다. 부르주아 엘리트 카르텔이 사면이나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징역형을 면하게 할 핑계를 찾아낼 거라는 의구심이 세간에 팽배했기에, 파리의 라 상테 교도소 독방에 수감된 사르코지의 모습은 프랑스 사회에 신선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사르코지 캠프의 카다피 선거 자금 수수 의혹이 처음 제기된 것은 2011년 3월 리비아 국영 통신사를 통해서다. 며칠 뒤 카다피의 차남인 사이프 알 이슬람이 프랑스 언론 유로뉴스 인터뷰에서 앞의 이 보도를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사르코지는 자신의 선거운동을 위해 리비아로부터 받은 돈을 갚아야 한다. 우린 그의 선거운동을 재정 지원했고 모든 세부 사항을 갖고 있으며 곧 공개할 준비가 되어 있다. (...) 우리는 그가 대통령이 되게 도왔지만 그는 우리를 실망시켰다."

이런 폭탄 선언이 나온 시점은 리비아가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연쇄적 시민 봉기에 휩싸여 있을 무렵이다. 석유 국유화를 토대로 모범적인 복지국가를 이룬 이면에는 42년 독재와 철권 정치에 대한 피로감, 억압돼 온 자유에 대한 갈망이 자라고 있었다.

시민들의 시위에 리비아 정부가 강경 진압으로 대응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격렬한 내전 양상으로 번졌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민간인 희생을 막기 위해 리비아에서의 군사적 개입을 허용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 인터뷰가 나온 다음 날이었다.

그리고 이틀 뒤 리비아 정부군 진압에 나선 프랑스군의 개입을 시작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리비아 내전에 개입했다. 안보리 결정이 내려지자마자 앞장서 군을 파견한 사르코지의 결정이 어쩌면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막고자 한 행동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최근의 판결이 암시하고 있다.

궁지에 몰린 카다피 일가의 일방적 주장일 수도 있었던 폭로에 힘이 실리기 시작한 것은 2012년 4월 29일 프랑스 탐사보도 매체 <메디아파르>의 보도를 통해서였다. 이들은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의 대선 캠페인을 위해 5000만 유로를 지원하기로 한 원칙적 합의"가 명시된 리비아 정보기관의 문서를 공개했다. 프랑스 사법 당국은 이 보도가 발단이 되어 2013년 4월 본격적인 사르코지-카다피 사건 수사에 착수했다.

고위 공직자 범죄에 대한 좋은 판례

2019년 4월 12일 4년 간의 공사를 거쳐 리모델링된 파리의 라 상테 교도소의 감방.AFP 연합뉴스

카다피의 아들은 카다피의 매부 세누씨에 대해 프랑스가 발부한 체포영장 철회의 대가로 리비아 자금을 건네게 되었다고 했다. 또한 국제사회에서 오랜 기간 고립되어 있던 리비아가 프랑스를 통해 서방 국가와의 관계 개선 또는 외교적 지위를 확보하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사르코지는 프랑스 대통령으로 취임한 해에 카다피를 국빈 초청한 바 있다. 2007년 12월 10일부터 닷새간 이어진 방문 기간 양국은 외교 관계를 정상화했을 뿐 아니라 무기 구매와 원자력 발전 협력 등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다. 또한 2003년 12월 핵 포기 선언을 한 리비아가 서방과의 관계 회복해 나가는데 프랑스가 동반해 줄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당시 카다피는 영빈관이나 호텔을 이용하는 대신 베두인 전통 텐트를 시내에 설치하고 거기서 거주하는 기행으로도 시선을 끌었다. 오랜 기간 독재를 하면서 반대자들에 대한 정치 탄압과 고문을 자행해 악명 높았던 그의 국빈 방문은 당시 시민사회와 국회로부터 큰 반발을 사며 격한 반대 시위를 불러일으켰다. 훗날 이 국빈 초대는 리비아의 자금 지원에 대한 보답이 아니었겠느냐는 합리적 추측을 제공하기도 했다.

사르코지가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재판부는 사르코지 캠프가 카다피 측으로부터 돈을 받았고 선거 비용으로 사용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찾지 못했다. 그런 이유에서 무죄를 확언해 왔던 사르코지는 감옥에 들어가는 날 아침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입장문에서 "오늘 아침 갇히는 건 전직 대통령이 아니라 무고한 한 인간"이라며 "진실은 승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75%에 달하는 절대다수의 프랑스인이 그의 수감에 환호하지만 지지자들이 거세게 그를 옹호하며 반론을 펼치는 근거도 바로 여기에 있다.

증거 불충분에도 유죄 판결이 내려진 이유는 부정한 목적을 가지고 자금을 확보하거나 확보하려 "시도했다"는 사실만큼은 명확하다고 재판부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리비아 정보기관이 제시한 문서 외에도 리비아의 석유장관이었던 추크리 가넴이 숨지기 전 남긴 비망록에 리비아 정권 인사들이 사르코지 대선캠프에 넘긴 것으로 보이는 금액의 송금 경로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재판부가 이를 법적 증거로 인정했다.

이 비망록에 나오는 금액과 송금 경로는 검찰 조사 결과 발견된 계좌 및 페이퍼 컴퍼니의 자료와도 일치한다. 어떤 경로를 통해 사르코지 측에 전달되었는지가 불분명할 뿐 당시 사르코지의 측근들이 리비아 정보기관이나 정권 책임자들과 비공개 회담을 가진 사실도 확인되었다.

만에 하나 사르코지가 주장하듯 리비아의 돈이 그에게 전달된 바 없다 해도 프랑스 형사법상 공모죄는 성립한다. 따라서 외국으로부터의 선거 자금 유입 혐의나 수동적 부패 혐의에 대해서는 재판부가 사르코지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으나 측근들이 캠프 자금 조달을 위해 리비아 측과 접촉하며 자금 유입 시도를 방조한 책임에 대해서는 공모자로서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실제 금전 수수에 대한 증거가 입증되지 않았어도 계획하고 진행한 과정에 대해 범죄 사실을 인정한 이번 판결은 고위 공직자들이 지닌 막중한 책임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또한 향후 고위 공직자 범죄에 대한 좋은 판례로 남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세 번째 유죄 판결

21일(현지시간) 프랑스 니스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의 가면을 쓴 시민이 경찰서 앞 광장에 사르코지의 이름을 붙이겠다는 니스 시장의 제안에 반대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AFP 연합뉴스

항소심이 남아있음에도 징역형이 바로 집행된 이유에 대해 나탈리 가바리노 판사는 "예외적으로 심각한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선거자금 조달을 위해 외국 정권과의 은밀한 협잡을 도모한 행위는 국민이 그들을 대표한다고 믿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손상시킬 수 있다"고 판결문에 적시했다.

판결문에 언급되지 않았으나 사르코지가 사소하지 않은 권력형 범죄 경력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점도 즉각적인 실형 집행을 부른 또 하나의 근거다. 2012년 재선에 도전한 사르코지는 대선 과정에서 허용된 비용을 초과해 지출한 후 이를 숨기기 위해 홍보회사를 이용한 행위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은 바 있다. 2021년 1년의 징역형이 내려졌으나 지난해 항소심에서 징역 12개월에 그 중 6개월은 집행유예가 내려졌으며 현재 상고가 진행 중이다.

2013년 카다피로부터 선거 자금 수수 혐의로 조사받던 사르코지는 당시 판사에게 모나코 고위직을 제안하는 대가로 수사 정보를 얻으려 한 판사 매수 혐의로 기소되어 다시 한번 유죄판결을 받았다. 3년의 징역형 중 2년은 집행유예, 1년은 전자발찌 착용 조건부 가택 구금으로 집행되었다. 세 번째 유죄 판결에 이르러선 더 이상 집행유예는 없었다.

출세를 향한 지칠 줄 모르는 열망을 가진 사르코지는 헝가리 이민 2세로 대통령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2008년 금융 위기 속에서 부자 감세와 서민 증세로 오늘날 프랑스가 짊어진 부채와 빈부 차 극대화를 업적으로 남겼다. 과도한 욕망과 그것을 감추기 위해 벌인 또 다른 범죄로 세 번이나 유죄 판결을 받은 끝에 마침내 수감된 그는 추한 인생 행보의 피할 길 없는 말로를 제대로 입증했다.

사르코지가 감옥에서 맞이한 첫날 밤 다른 재소자들이 벽을 치며 "우리가 카다피를 대신해 너에게 복수할 거야. 우린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구"라거나 "수백만 달러를 리비아인들에게 돌려주라구" 같은 말을 외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를 배신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군대까지 동원했던 중죄인을 꾸짖을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을 터이다.

감옥에 던져진 지난날의 권력자는 잡범들이 들끓는 교도소에서야 비로소 자신이 저지른 짓의 실체를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법원이 각 잡고 제대로 휘두른 칼날이 기울어 가던 프랑스 사회를 한 뼘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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