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기독사회당(CSU) 마르쿠스 죄더 대표, 총리 지명자인 기독민주당(CDU) 프리드리히 메르츠 대표, 재무장관 지명자인 사회민주당(SPD) 라르스 클링바일 공동대표, 사스키아 에스켄 SPD 공동대표가 새 독일 정부를 위한 연정 협정 서명식에 참석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물론 구조적 차이는 여전하다. 일본은 하원 우선 규칙과 불신임 뒤 해산 선택이 쉽게 작동해 다수의 힘이 강하게 걸린다. 반면 유럽은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와 건설적 불신임 같은 안전장치를 통해 다당 협치가 제도적으로 내장돼 있다.
형식에서도 차이가 난다.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등 유럽의 연립은 장문의 협약을 공개하고, 예산·일정·책임 주체를 문서로 명시한다. 독일은 '연정 협약서'를 수십 쪽 분량으로 작성해 정책 세부 목표와 일정표를 명문화하며, 네덜란드와 스웨덴 역시 비슷한 형식의 '정책 협약'을 국회 표결 전에 공개한다.
반면 일본의 정책 조정 문서는 분량과 구속력, 공개 범위가 느슨해 여전히 해석 여지를 남긴다. 또한 유럽에서는 표결 전에 위원회 배분과 의사일정의 틀을 합의하지만, 일본은 국회대책위원회 중심의 조정이 표결 전후로 이어지는 관행을 보인다
만약 실제로 자민당이 일본유신회와 연정을 이끌어 낸다면, 그것은 정책적 연합이 목적이라기보다 정권을 잃지 않으려는 현실적 이유가 크다. 물론 대부분의 정당이 그 점에서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이번 일본의 사례는 결과적으로 더욱 우익 포퓰리즘 성향이 짙어질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앞서 언급했듯, 일본유신회는 지방 이권에 초점을 맞춘 '배타적' 정당의 성격이 강하고, 도발적이며 즉흥적이고 자극적인 공약과 역사 해석을 자주 남발하고 있다. 인권 문제와 관련해 '전쟁에서 위안부 제도는 필요했다'거나, 당 로고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그려 넣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주목해야 할 것은 변화의 방향성이다. 정치자금 개혁을 최상위 규범으로 올리고, 분권·감세·에너지 전환 같은 의제를 하나의 꾸러미로 교환하는 등 체계적 정책 연동의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인류 역사상 상당수의 정치적 변화는 우연한 계기의 사건과 파열에서 비롯됐다.
유신회와 국민민주당이 정책 문구를 조정하며 균형추를 움직이고, 공명당은 청렴 규범의 문턱을 세워 협상의 기준선을 만드는 등 다당 협치에서 보이는 중간 세력의 조정 기능이 비로소 작동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지금의 국면은 제도의 유럽화라기보다 관행의 유럽화, 즉 일본식 내각제가 수평적 협치의 절차를 학습하기 시작한 초기 단계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그 징후는 문서와 일정, 책임 주체의 명확화라는 세 가지 요소에서 확인될 것이다. 정치자금의 공개 범위와 시한, 상임위·위원장 배분의 규칙, 그리고 분권·감세·에너지 전환의 단계별 일정이 합의문 속에 담길 경우, 일본 정치는 '권력의 지속'에서 '통치의 설계'로 이동하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국면은 일시적 균열로 끝날 것이다. 표결의 승패보다 중요한 것은 이후의 문장이다. 20일 또는 21일 아침 공개될 합의문에 날짜와 책임 주체가 적히는가, 그것이 일본 정치가 수직에서 수평으로, 체제에서 협치로 옮겨가는지의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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