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마스크와 패치 제품약국과 월마트를 비롯한 다양한 매장에선 오래전부터 한국의 페이스마스크와 미용 패치 제품들이 매대를 채워왔다. 최근 헤어케어 제품이 조금씩 늘고 있다.
장소영
"아 질문이 어려워요. 우리 엄마랑 통화해 볼래요?"
가까이 지내는 여대생의 소개로 K-드라마 온라인 팬클럽 회원 몇 명을 만나본 적이 있다. 기대와 달리 '그냥 재밌다'며 단조로운 대답만 돌아와 속으로 조금 실망하던 차, K-드라마 광팬인 엄마와 연결해 주겠다는 학생이 있었다. 사양했는데도 주차장까지 따라 나온 여고생은 엄마랑 연결되었다며 폰을 내밀었다.
주변 소음을 뚫고, 그의 엄마 R의 폭풍 같은 수다를 띄엄띄엄 알아듣고 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드라마 얘기가 아니다. 배우에 대해, 더 정확히는 '그녀들이 쓰고 있는 화장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R이 그토록 궁금해하던 스틱형 화장품 '가히' 멀티밤 스틱을 선물했다. 벌써 2년쯤 지난 일이다.
R뿐 아니다. 2년여가 흐르는 동안 K-드라마를 통해 전파된 K-뷰티는 SNS와 쇼츠를 타고 순식간에 미국을 점령했다. 제품 후기에는 가성비, 예쁘고 특이한 디자인의 케이스, 휴대성, 속이지 않는 광고-포장과 같은 좋은 퀄리티라는 호평이 이어진다.
무엇보다 '물광 피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주근깨나 기미, 잔주름을 감추는 커버력 좋은 화장품을 주로 찾던 미국 여성들 사이에 '한국 여성의 매끈한 피부(Glass Skin)'는 종종 화제가 된다. '세련되게 옷을 입고 피부가 좋으면 한국인'이란 말이 돌 정도다. '피부 좋은 아시안을 발견하면 (한국 사람이니) 꼭 그 사람에게 사진을 부탁하라'는 조언도 함께 붙여서 말이다.

▲한국 화장품과 소품을 찾는 뉴요커맨해튼 한국의 거리에 있는 가게와 팝업스토어에는 한국 화장품과 소품을 찾는 이들이 가득하다.
장소영
지난여름 한국 방문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올 즈음, 이웃 선물용으로 한국 마스크팩을 잔뜩 샀다. 딸은 학교 육상부 친구들을 위해 스틱형 선크림을 사 들고 먼저 귀국을 했다. 그런데 그 때문에 작은 오해가 생겼다.
"아 이거 독도지? 색깔 들어간(colored) 선크림인가? 타깃에는 그냥 흰색밖에 없더라고."
가까운 이웃들 사이에 내가 독도 선크림을 사 들고 온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마스크팩을 내밀다 말고 깜짝 놀랐다. 독도 브랜드를 어떻게 알았는지, 여러 색깔의 제품이 있다는 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물어보았다. 참고로 우리 동네는 아시안 인구가 거의 없다. 아이 학교에 한국계 학생은 셋뿐일 정도다. 중국계 학생도 소수다.
타깃에 들렀다. 내가 자리를 비운 몇 개월 사이, 한국 화장품이 아예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국 식품 판매로 유명한 '트레이더 조'와 달리 우리 동네 타깃에는 만두도 팔지 않았었다. 그런데 비비고 제품으로만 채워진 냉동고가 식품 매장 입구에 떡하니 놓여 있기까지 했다.

▲동네 타깃 매장의 비비고 제품식품 매장 입구 눈에 띄는 자리에 비비고 제품으로만 채워진 냉동고가 등장했다.
장소영

▲미국 타겟 매장에 자리한 K 뷰티 코너한국 올리브영에서 보던 한국 화장품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장소영
놀라운 뉴요커의 한국 문화 경험치
10대, 20대인 우리집 아이들과 또래 친구들은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를 보고, 또 봤다. 우리 가족은 '싱어롱버전'을 보러 영화관도 찾았었다.
내가 놀랐던 건 작품에 열광하는 미국인도, 가는 곳마다 <케데헌>의 명곡이 흘러나오는 것도, 떼창을 하는 광경도 아니다. <케데헌> 속에 나오는 한국인의 일상을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다는 점이 너무 신기했다.
"<케데헌>을 보니 이런 것도 있더라, 우리도 한 번 먹어보자"라는 게 아니라 "우리가 먹는 과자가 <케데헌>에도 나오네" 같은 반응 말이다.
생각해 보면 이런 반응이 새삼스럽지 않다.
'오랜만에 코리언 스파(대형 찜질방) 가는 길'이라는 이웃부터 동네 'BBQ 치킨점 1주년 할인 행사'를 알려주는 아이 친구까지, 이제 미국인의 일상이 돼버린 K-생활템이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삼성이나 LG로 대표되는 K-가전이 미국 가정에 자리 잡았듯 이제는 파리바게뜨와 치킨집이 동네 가게가 되고, K-뷰티와 먹거리, K-문구와 생활 소품이 흔하게 목격된다. 뉴욕 지하철에서 '카카오톡 춘식이 충전기'로 폰을 충전 중인 뉴요커를 보게 되는 즐거움이란.

▲한국 마스크와 패치 제품을 살펴보는 쇼핑 고객MZ 사이에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한국 페이스 마스크와 패치 제품을 살펴보며 친구에게 어느 제품이 좋은지 추천을 하고 있었다.
장소영
빛나는 별들, 그리고 재미동포들의 공헌
카네기홀의 새 시즌 카탈로그를 열었다. 서울시향과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의 협연을 시작으로 정경화, 손열음, 조성진, 임윤찬의 공연 스케줄과 큼지막한 사진이 보인다. 뉴욕 필하모닉도 마찬가지다. 브로드웨이에서는 토니상 6관왕에 빛나는 <어쩌면 해피엔딩>이 연일 매진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도서관에는 노벨상 작가 한강 특집 세션이 있고, 맨해튼 공연장은 한국 가수들의 무대가 연이어 열린다. 영화와 K드라마, 스포츠는 말할 것도 없다. 미국 MZ들의 또다른 우상이 있다. 프로게이머 '페이커'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중인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토니상 6개 부문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은 한국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브로드웨이에서 흥행중이다.
박수희
빛나는 별들의 활약도 감동이지만, 미국 동포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다. 그동안 무명의 소수민족이라 무시 당하면서도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K-컬처를 전해온 이들 말이다. 사비를 털어 '코리언 데이' 행사를 준비하고, 대형 트레이에 김밥과 잡채를 만들어 보내고, 한글 학교를 세우고, '미스김 라일락'과 무궁화를 심고, 부채춤과 태권도를 선보여 온 수고들에 감사하고 싶다. 그런 노력들이 미국 주민들이 <케데헌>을 보며 '나 이거 봤어, 알아, 먹어 봤어.' 할 수 있도록 경험치를 쌓아 주었고, 교포 2세들이 한국 정서를 담아내는 크리에이터로 꽃필 수 있었을 것이다.

▲뉴베리상 수상작한국계 3세가 할머니에게 들었던 호랑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동화책으로 100번째 뉴베리상(미국아동문학상)에 선정되었다. 한국의 문화나 정서를 담은 한국계 2세와 3세의 창작 활동이 각 분야에서 활발하다.
장소영
우리 동네 이웃 아줌마들은 독도와 조선 미녀 선크림 다음으로 '다이소 양말을 넣은 다이소 장바구니'를 반겼다. 뉴욕은 2020년부터 일회용 비닐백 사용이 전면 금지되어 장바구니가 필수품이 되었다. 타깃에도 접는 장바구니가 있지만, 한국 장바구니만큼 예쁘지 않다. 한국에선 트레이더 조 가방이 유행인데, 우리 동네 주부 몇은 다이소 장바구니를 들고 다닌다.
딸아이가 초등학생일 때 누가 자꾸 아이의 한국 연필을 가져갔다. 알록달록 예쁜 한국 연필은 어디로 가고, 학교만 다녀오면 필통 속에 노란 미국 연필이 대신 들어 있는 것이다. 범인을 찾는 대신 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교실 파티 구디백(goody bag, 선물주머니)속에 다섯 개씩 한국 연필을 넣어주었다. 이렇듯 외국에 사는 한인이라면, 누구든 소소한 한국 문화 전도사가 된다.
▲도서관에 걸린 음력 설 장식각고의 노력 끝에 뉴욕주는 올 해부터 '음력설'을 공식 홀리데이로 지정하고, 공립학교는 명절 휴일을 가진다. 동네 도서관에 걸린 청사초롱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현수막. 미주 한국일보도 배치되어 읽을 수 있다.
장소영
'누가 색칠된 K-도로 좀 수입해 주세요.' 맨해튼에 들어가는 복잡한 길 때문에 통행료를 여러 번 물었다는 네티즌의 하소연, 'SAT(미국 수능) 전날, 아들 먹일 건강식으로 비빔밥을 만들었다'는 미국 아저씨 유튜버, 뉴욕 코믹콘에 <케데헌>의 한국 할머니 복장을 입고 등장한 팬, 초등학교 교실 문을 <케데헌> 호랑이 더피와 함께 'K pop Candy Hunters(할로윈데이 사탕 사냥꾼들)'로 꾸몄다는 미국 아줌마… K며든 미국의 일상 모습이 재밌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