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이자 추석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9일 한 남성이 차량 트렁크를 열자 피자 20~30판 정도가 눈에 들어온다.
김지현
#장면① 국회의원회관 1문 앞. 가벼운 정장 차림의 한 남성이 무리에서 벗어난다. 도로변에 임시로 세워둔 차량으로 간 그는 트렁크를 연다. 트렁크에는 유명 프랜차이즈 업체 피자가 20~30판 정도 쌓여 있다. 성인 보폭으로 열 걸음 정도 떨어져 있었음에도 피자 냄새가 풍겨온다.
#장면②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냉백에 담긴 물건 대여섯 개를 국회의원회관 출입구 인근 탁자에 올려놨다. 휴대전화로 전화 통화하면서 웃는다.
#장면③ 검은 정장을 입은 한 여성의 통화는 길었다. "질의 내용 때문에 설명이라도 한 번 드리려고 해서요"라는 말과 함께. 오랜시간 기다렸던 그 여성은 국회의원회관 1문 앞에서 상사를 만난 뒤 '공무'용 출입증을 끊고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국회의원의 이름과 의원실 호수가 적힌 안내도를 살펴보던 그들은 행선지 두 군데의 호수를 읊은 뒤 엘리베이터를 탄다.
국정감사처럼 국회의 감시·견제 기능이 극대화되는 시기가 되면 여의도 국회를 유독 자주 드나드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피감기관 공무원 혹은 기업 종사자들이다. 이들은 평시에도 국회를 오가지만 국감 기간이 되면 발걸음이 더 잦아진다.
국정감사 시즌이면 더 바빠지는 '대관(對官)
'
이런 국회 풍경을 채우는 직군들을 크게 나누면 국회의원·보좌진, 국회사무처 직원, 유관 부처 공무원, 민원인, 언론인 그리고 기업 '대관' 인력을 꼽을 수 있다. 국감 기간엔 특히 피감기관 공무원과 기업 대관이 분주해진다. '대관'이라 하면 기업마다 국회를 상대하는 직군을 말한다. 각 기업들의 '대외협력' '전략지원' 같은 이름으로 분류되는 조직에 속해 있는 이들이다.
상당수 기업들은 국회 대관으로 국회 보좌진 출신을 영입하곤 한다. 국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 전직 국회의원실 보좌진으로 활동하다가 대관 업무를 보고 있는 A씨는 "기업과 입법부의 가교 역할"이라고 대관 업무를 정의한다.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 입법부에 요구점이 있고, 입법부는 경기 부양 등의 목적으로 기업에 요구점이 있기 마련"이라면서 "양자를 오가면서 서로의 요구점의 절충점을 찾는 일이다. 기업을 향한 규제를 완화시키는 일도 포함된다"라고 부연한다.
물론 '대관'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비합법적 로비스트'라는 게 그것. 국회에서 자신이 속한 기업의 사주가 증인으로 채택될 경우 증인의 급을 낮추거나 무산시키기 위해, 기업활동에 부정적인 질의 내용의 수위를 낮추기 위해, 기업에 불리한 입법을 완화하기 위해 활동하는 것 역시 대관의 업무기 때문이다.
관계를 쌓는 이유
특히 국정감사의 경우, 기업 사주들이 국감장에 증인으로 채택돼 출석 요구를 받는 경우가 반드시 발생한다. 기업 고위급 인사가 증인으로 출석할 경우 현안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 건 필연적이다. 국회 대관 종사자들이 국감 때 국회에서 '항시 대기'하는 이유다.
올해는 긴 추석연휴 후 바로 국감이 시작되는 터라 국회 대관들은 연휴 때도 국회를 자주 오갔다. 연휴 중에도 국회의원회관 1문 앞에 국회 대관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기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언론인과 민원인의 출입이 자유로운 국회 소통관 1층 역시 대관들이 주로 대기하는 장소다. 의원실과의 약속이 잡히면 바로 가 기업의 사정을 설명하는 게 대관들에게 주어진 역할 중 하나다.
이 과정에서 국회의원 사무실에 간식이 들어가는 장면도 볼 수 있다. 한 의원실 보좌진 B씨는 "대관이야 평상시에 국회의원실과의 관계 형성을 위해 자주 오가지만 특히 국감 때는 체감적으로 교류가 더 잦다"면서 "그 과정에서 대관들이 의원실에 간식을 보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기사 앞머리에 서술한 '트렁크 속 피자' '보냉백에 든 먹거리' 같은 간식들의 행선지는 국회의원실이란 이야기다. 지난 9일 한글날 휴일 오후 5시 30분께 기자는 국회의원회관 앞에서 한 국회 대관이 전화로 케이크와 커피 등을 주문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쿠팡처럼 크게 이슈 되는 기업들은..."
A씨는 "보통 간식은 대관들이 '고생하십니다~' 하면서 일방적으로 가져다 주는 경우가 많다"라면서 "(의원실과 기업간) 크게 척지지 않은 한 보좌진들이 거절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국회 대관 업무를 하는 C씨는 "쿠팡처럼 국감 때 이슈가 크게 되는 기업들은 대대적으로 간식을 돌리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피감기관이나 기업 국감 전날에 의원실을 순회하면서 간식을 넣는 경우도 상당수다.
▲2025년 국정감사 시작 전날인 12일 국회의원회관 앞. 사람들이 먹거리를 카트 등에 싣고 나르고 있다. 국회의원회관으로 향하는 간식들이다.
제보자 제공
기업의 국회 대관만 간식을 돌리는 건 아니다. 일요일인 지난 12일 행정안전부 국회 담당 직원들은 행안위원회 의원실을 대상으로 닭강정·콜라를 돌렸다. 연휴·주말에도 의원 보좌진들이 고생을 하니 일종의 격려 차원이라는 설명이다. 14일 국회 국토교통위 국감을 앞둔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국토위 소속 의원실에 피자와 콜라를 돌렸다.
특식 같은 간식은 국감에 영향을 줄까? <오마이뉴스>가 접촉한 대부분의 보좌진들은 "영향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몇몇 의원실은 아예 간식을 받지 않는다고 거절 의사를 밝히기도 한다. 민주당 의원 보좌진 D씨는 "거절 의사를 명확히 하는 의원실을 제외하곤 대부분 기업에서 보내오는 간식을 받을 것"이라면서도 "간식이 의원실 활동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진 않는다. 다만 대관들이 의원실과의 관계를 쌓는 과정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기업 대관들의 이런 활동이 현행 청탁금지법(김영란법)에 저촉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지만 당사자들은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간식 등을 제공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기업 대관 관계자들은 '청탁금지법상 제공하는 식사나 선물의 상한액이 1인당 5만 원이라 통상 간식의 경우 이 기준을 넘지 않도록 품목과 수량을 정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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