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사각지대 유형
노대명
선별적 복지제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있어 복지급여 자동지급은 매우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특히 복잡한 제도와 낙인감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수급자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효과적일 것이다. 선정 기준을 완화해 사각지대 집단을 보호하더라도, 적용의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복지급여 자동지급이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탈신청주의가 극복해야 할 과제
탈신청주의나 자동지급 문제에 대한 남찬섭 교수의 글에서 공감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먼저 선별적 복지제도의 본질적 문제에 대한 지적이다. 남 교수는 복지 사각지대는 신청주의가 아니라 더 본질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복지예산 억제 기조 ▲그 기조를 수용한 관료주의 ▲관료주의로 인한 엄격한 선정기준이다. 실제로 이러한 문제들은 지난 25년간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확장과 개편 과정에서 큰 영향을 미쳐왔다. 탈신청주의 개혁 역시 복지예산 억제라는 장애물을 넘어서는 것이 매우 큰 과제로 남아있다.
남 교수는 복지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사고는 단순한 발굴만으로는 문제해결이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사업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사회복지 담당자가 위기집단을 발굴해도, 당사자가 복지제도 선정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지원할 방법이 없다. 주로 민간자원을 연계하지만, 지원규모나 지속성 측면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위기집단이 필요로 하는 주요 복지급여의 선정기준을 완화하고, 사회복지담당자가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공적 자원 연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이유다.
복지급여 자동지급이 안고 있는 위험성에 대한 남 교수의 지적에도 동의한다. 2010년 이후 서구 각국에서 진행된 복지급여 관련 의사결정 자동화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것이 사실이다. AI 알고리즘이 인종·성별 등에 따른 편견을 드러내거나, 복지급여 자동지급 과정에서 잘못된 판정으로 수급탈락이나 급여 오지급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행착오나 오류들이 직권주의와 자동지급을 향한 실험을 중단해야 할 이유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더 정확하고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탈신청주의가 더 인간적이다
남찬섭 교수의 글 중 가장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은 신청주의에 대한 옹호, 복지급여 자동지급 방식에 대한 해석이다.
먼저, 순수한 신청주의가 존재하는가의 문제다. 남 교수는 "잔인한 것은 신청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복지지출을 억제하려는 기조가 낳은 과도한 관료주의와 그것에 지배된 선별주의, 즉 과도한 잔여주의"라고 말한다. 하지만 신청주의는 엄격한 선정기준, 관료주의, 복지예산 억제기조와 분리된 순수한 어떤 것이 아니다. 신청주의는 제한된 예산에 맞춰 선정기준을 엄격하게 만들고 선정절차를 복잡하게 만드는 최적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신청주의가 억압적 기제와 분리되어 순수한 상태로 존재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본다.
둘째, 신청주의는 여전히 수급 신청자에게 권리의식을 심어주고 있는가의 문제다. 남 교수는 "공공부조에 따른 낙인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권리의식을 심어주려는 의도도 있어,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20세기 초·중반 공공부조가 생겨나던 시기에는 신청주의가 나름의 상징적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수급자에게 신청주의에 기반한 신청 절차가 권리의식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신청주의 위에 구축된 엄격한 선정 기준과 복잡한 절차가 권리의식을 약화시키고, 직권주의로의 전환을 요구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셋째, 신청절차의 인간화와 신청절차 폐지 중 어느 것이 낙인감 해소에 유용한가의 문제다. 남 교수는 "낙인은 신청절차 때문이 아니라...복지급여 대상자가 스스로 그 취약함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신청주의가 신청자에게 모멸감을 주는 과정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적인 신청절차는 어떻게 가능한가? 신청과정에서 만나게 될 다양한 사람과 그 관계는 통제 가능한가? 자동지급 방식에도 많은 문제가 따르지만,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지 않고도 급여를 신청하고 수급하는 방식이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닐까?
자동지급 시스템 구축, 비용 절감 차원에서 접근해선 안돼
복지급여 자동지급, 특히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선별적 복지제도에서 급여의 자동지급은 가능하다. 물론 선별적 제도에 대한 최초 신청과 급여수급의사 확인 등을 위한 절차에서는 사회복지담당자의 개입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나면, 이후의 복지급여 자동지급은 그리 새로운 일도 아니다. 지금도 수급자 선정과 급여에는 공공데이터 연계를 통해 생성된 정보를 이용하고 있으며, 각 단계의 작업은 빠른 속도로 자동화되고 있다. 이 점에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자동급여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복지급여 자동지급을 위한 각종 시스템 구축 비용 역시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의 관점에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자동지급으로 인한 급여 절감 효과가 시스템 구축 등 개혁에 필요한 비용을 상쇄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탈신청주의와 복지급여 자동지급 시스템의 구축은 디지털 복지국가를 실현하기 위한 장기적 관점에서의 투자로 인식되어야 한다.
해결해야 할 몇 가지 쟁점이 남아 있다. 국세청과 사회보장행정기관 간의 데이터 연계, 전 국민 사회보장 통합 데이터의 구축과 활용, 이를 기반으로 한 복지정책 및 복지사업 개발, 그리고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보안 강화 등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복지급여를 한꺼번에 자동지급 시스템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도 경계해야 한다.
▲노대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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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 노대명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며 <소셜 코리아> 자문위원입니다. 한국사회보장정보원 원장과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을 역임했습니다. 한국 사회보장체계의 혁신과 사회보장 분야의 디지털 전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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