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일 충남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열린 건군 77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박정훈 해병 대령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에서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이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보국훈장 삼일장을 받았다. 양심에 따라 진실을 지키기 위해 탄압과 고초를 마다하지 않았던 박정훈 대령의 명예가 국가에 의해 회복된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파면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격노했던 2023년 7월 31일로부터 2년 2개월은 박 대령의 군 생활이 송두리째 부정당한 시간이었다. 억울함과 분노가 닿지 않는 곳이 없었겠지만, 가장 힘들었던 일 중 하나는 믿고 의지하며 함께 군 생활을 해온 전우들로부터 당한 배신이었을 것이다.
사건 당시 해병대사령부에 함께 근무하던 장군, 대령 참모들은 물론,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까지 박 대령과 근무 인연이 닿지 않은 이가 없는 전우들이다. 동고동락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박 대령을 린치하는 데 가담하거나 외면했다.
뻔히 진실을 알면서도 제 살길, 제 앞길을 위해 입을 다물거나 거짓말을 늘어놨다. 국회와 법정에 나가 위증하면 처벌받겠다는 선서를 해놓고도, 시퍼런 윤석열의 권력이 두려워 함부로 위증한 이들도 많다. 박 대령이 1년이 넘도록 사령부 구석의 독방에서 사실상의 감금 생활을 하던 동안, 이들은 침묵과 거짓의 대가로 승승장구했다.
박 대령의 명예가 회복되고 채 상병 사망 사건의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고 있는 지금, 양심에 눈과 귀를 닫고 법보다 권력을 무서워하던 군인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외압 발생 대책 회의에 참석한 이들
해병대 전 부사령관
정종범 소장은 박정훈 대령 항명죄 재판에 증인으로 채택되었으나 2024년 5월 17일과 6월 11일 4, 5차 공판 모두 출석하지 않았고, 군사법원으로부터 과태료 300만 원을 부과받았다. 세 번째 출석 요구에도 불응하면 구인, 구금할 수 있다는 재판부의 말에 2024년 7월 23일이 되어서야 법정에 나온 정종범은 위중한 안보 상황 때문에 법정에 나올 수 없었다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과태료 처분이 과도하다는 등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증언대에선 본인 수첩에 스스로 메모한 이종섭 전 장관의 지시 사항 내용을 묻는 말에 시종일관 '기억이 안 난다', '혼동된다', '모른다'고 답했다. '대통령 격노설'도 모른다고 했다. 불과 1년 전에 있었던 일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정종범은 해병대 2사단장을 거쳐 현재 전군의 전투 준비 태세를 점검하는 합동참모본부 전비태세검열실장의 중책을 맡고 있다.
김계환 전 해병대사령관의 비서실장이었던 김화동 대령도 항명죄 재판에 증인으로 나왔던 사람이다. 그는 군검찰 진술과 법정 증언에서 김계환 전 사령관이 박정훈 대령에게 이첩 보류를 명시적으로 지시했다고 했으나 군사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김화동 대령은 박정훈 대령이 적법절차에 따라 수사 기록을 이첩하자 김계환 사령관에게 수사단장 직무 정지를 건의한 사람이다. 또한 군검찰에서는 박 대령이 '항명한 것이 맞다', '고의로 지시를 위반한 것이다'라고 진술했던 그는 지금 해병대 1여단장으로 전방 방위의 중책을 맡고 있다.
해병대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참모장 권태균 준장은 군검찰에서 김계환 사령관이 이첩 보류를 지시한 의도를 알고 있으면서도 박정훈 대령이 이첩을 강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던 사람이다. 그는 이후 해병대 6여단장으로 보임했고 통상적으로 전역 예정자가 가는 정책 연수를 6개월 다녀온 뒤 전역하지 않고 해병대사령부 특별보좌관 자리에 앉아 있다.
이 세 사람에 더해 사건 이후 소장으로 진급해 해병대 1사단장으로 보임 중인 해병대사령부 전 참모장 이호종 준장, 국방대학교에서 교육받고 있는 해병대사령부 전 정책실장 권인태 대령까지 이 5명은 2023년 7월 31일, 윤석열 격노 이후 이첩을 보류하라는 외압이 발생한 상황에서 열렸던 해병대사령관 주관 대책 회의에 박정훈 대령과 함께 참석했다. 모두 김계환 사령관이 그간 국회와 법정에서 박 대령을 모해 위증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정의가 어떻게 바로 설 수 있겠는가

▲해병대예비역연대가 1월 9일 박정훈 대령의 1심 무죄 선고 직후 서울 용산구 군사법원을 출발해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까지 행진하고 있다.
김화빈
이들뿐만이 아니다. 박정훈 대령 수사단장 보직해임 절차의 실무를 맡았던 해병대사령부 전 인사처장 김태원 대령은 준장으로 진급했고 현재 해병대 1사단 작전부사단장으로 보임 중이다. 해병대사령부 전 감찰실장인 임아무개 대령은 박정훈 대령 보직해임 이후 해병대수사단의 수사 기록 이첩 정황을 감찰하며 이른바 '뒤처리'를 맡았던 사람인데 전역 후 다시 2급 군무원 보직인 전투모의분석실장을 맡았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사건 당시 국가안보실에 파견 근무 중이던 김형래 대령이다. 그는 대통령 격노 전날 김계환 사령관과 통화한 뒤 수사참고자료를 요구했고, 다음 날 언론브리핑 자료를 받아 보고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채 상병 순직으로부터 외압이 발생한 시기까지 수십 차례 해병대 인사들과 통화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7월 10일 채상병 특검으로부터 압수수색도 당했다. 대통령실과 해병대사령부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던 김형래 대령은 현재 해병대사령부 작전참모처장 보직을 맡고 있다. 박정훈 대령이 수사단장으로 복직했으니 김 대령과 박 대령은 사령관 참모로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셈이다.
채 상병 사망 당시 예천 사고 현장에서 부대를 지휘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경북경찰청, 대구지검 등에서 수사를 받아온 전 해병대 7여단장 대령 박상현도 어느 틈에 보직을 받아 해병대 1사단 참모장을 맡고 있다가 9월 13일이 되어서야 특검 수사에 따라 직무 배제, 분리 파견조치 되었다. 수사는 2023년 채 상병 사망 사건 발생 이래로 계속되고 있는데 새 보직도 주고, 멀쩡히 근무하게 하다가 2025년 9월이 되어서야 수사 중 사건을 이유로 직무 배제를 한 해병대사령부의 조치도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장성 인사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아마 이들 중 상당수가 진급과 주요 보직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진실을 지킨 사람에게 훈장만 준다고 그릇된 과거가 저절로 바로잡히지 않는다.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과 타협한 이들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정의가 어떻게 바로 설 수 있겠는가?
특검이 출범한 날로부터 100일이 지났는데도 해병대의 주요 보직자의 상당수가 채 상병 사망 사건 진실 은폐에 가담한 이들로 채워져 있다. 박정훈 대령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면서, 한편으론 자기 명예를 짓밟은 이들과 한 울타리에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내게 하는 것이 온당한 처사일 리 없다. 국방부가 이 상황에 대해 무슨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쯤 되면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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