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재난불평등공동행동 관계자들이 반지하 폭우 참사 3주기를 맞아 기후 위기 대응 및 주거권 보장 요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뜨거웠던 여름도 지났다. 기상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여름 폭염과 열대야는 기상관측 사상 최악이었다.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재난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기후재난은 사회구성원 모두의 삶을 위협하지만 취약 계층에게 유독 가혹하다.
재난과 불평등 연구자 존 머터(John C. Mutter) 컬럼비아대 교수는 저서 <재난 불평등 : 왜 재난은 가난한 이들에게만 가혹할까>에서 기후재난을 불평등의 민낯으로 규정하며, 기후재난의 발생과 극복 과정에 사회 불평등 구조가 투영된다고 강조했다. 재난의 영향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약자와 빈곤층이 더 큰 고통과 피해를 입는 구조적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재난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도 기후재난은 사회 불평등과 맞닿아 있다. 2022년 8월, 폭우로 인해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던 일가족이 사망한 사건, 침수된 반지하에서 나오지 못한 50대 여성이 사망한 사건 등은 기후재난이 취약계층에게 죽음에 이를 정도로 위협적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당시 반지하를 삼킨 기록적인 폭우는 반지하라는 공간을 넘어 그곳에 살던 이들의 삶과 미래를 앗아갔다.
그날의 비극 이후 서울시는 지하층 주거용 건축허가 금지, 반지하주택 매입 후 리모델링, 반지하주택 세입자의 주거상향지원사업 등 다양한 대책을 쏟아냈다. 특히 '반지하 주택 일몰제'를 통해 주거용으로 사용되는 지하, 반지하 건축물을 순차적으로 없앤다는 계획을 강조해, 취약한 주거 환경 개선, 주거취약계층의 안전한 삶, 그리고 주거권 보장에 대한 기대를 한껏 끌어올렸다.
3년이 지난 지금, 당시 발표한 주거대책은 제대로 이행되었을까? 주거취약계층은 안전한 주거 환경을 보장받고 있을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당시 정부와 서울시의 약속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서울시 전체 반지하 가구 중 약 3%만이 정부와 서울시 지원으로 반지하에서 벗어났다. 침수 위험이 있는 반지하 주택의 약 1/3은 물막이판조차 설치되지 않았다. 지난여름에도 수많은 주거취약계층이 생존을 위협하는 불안정한 주거에서 폭염과 폭우를 견뎌야 했다.
지난 8월 6일에는 37개의 노동, 주거, 시민 사회단체(반지하 폭우 참사 3주기 추모행동) 주도로 3주기 추모 문화제가 개최됐다. 참여자들은 불평등을 재난으로 규정하고 반복되는 참사의 근본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또한 기후재난에 무방비로 노출된 취약계층을 외면하는 무책임한 사회를 질타하고 기후정의에 기반한 주거권 보장을 강력히 요구했다.
기후재난 속 악화되는 주거 불평등

▲참여연대, 주거권네트워크, 2025홈리스주거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유엔이 지정한 세계주거의 날을 맞아 1일 서울역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을 상품이 아닌 거주 공간으로 여길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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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권의 한 축인 주거권, 즉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는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그중 옥탑방, 고시원과 함께 '지옥고'라 불리며 불안정 주거의 상징이 된 반지하는 추위와 더위에 극도로 취약하다. 지옥고에서의 삶은 기후재난 속 더욱 악화되는 주거 불평등과 정면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기에, 이들에게 주거권은 여전히 피상적 권리에 머무른다.
적절한 주거권(The Human right to adequate housing)은 1948년 세계인권선언 제25조와 1966년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1조에서 인정된 바 있다. UN 경제사회문화권위원회(The United Nations Committee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는 적절한 주거권 개념이 협의로 해석되어서는 안 되며 안전하고 평화롭고 품위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장소에 대한 권리로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7항). 또한 적절한 주거는 거주 기간 보장, 공공서비스 제공, 적정비용, 거주 적절성, 접근성, 위치, 문화적 적절성을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폭우와 폭염, 극심한 추위와 같이 심각한 기후재난이 닥칠 때마다 적절한 주거권 보장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지만 정작 주거취약계층의 현실은 주거권 언급이 무색할 정도로 외면당하고 있다. 이들은 취약한 주거 환경에서 비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
몇 해 전, 청년의 불안정 주거 문제를 주제로 인터뷰했던 반지하에 거주하는 청년들은 폭우에 죽을 뻔한 위기를 경험한 이후, 비가 오는 날마다 두렵고 불안한 감정이 스며든다고 말했다. 창문 없는 반지하에서의 삶은 햇빛의 부재로 이어지고, 낮과 밤의 경계가 흐려진 공간에서 거주자의 시간 감각은 통제된다. 여기에 반지하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늘 코끝에 맴돌아, 타인을 만날 때마다 불편함을 느껴 스스로 고립을 택했다고 했다.
기후재난 대응,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927 기후정의행진 집회가 지난 9월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렸다.
전선정
헌법 제35조는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와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올해 여름 수차례 울린 폭우 경보는 헌법에 명시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이 또다시 희생될 수 있다는 경고였다. 우리 모두는 기후재난 위협으로부터 완벽하게 안전할 수는 없지만 피해 정도와 규모는 불평등한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해 취약계층일수록 더 크다.
그러나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한 사회의 대응은 소극적이고 미온적이며 때로는 방관적이다. 폭우로 인한 반지하 사망 사건 이후에도 재발 방지를 위해 약속한 대책들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정부와 서울시의 행태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재명 정부는 123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국가 기후적응 역량 강화'를 제시하고 '기후위기 취약계층 실태조사 및 맞춤형 인프라 지원'을 공언했다. 기후재난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대응을 시사한 측면은 긍정적이지만 이러한 약속이 처음은 아니다.
3년 전 폭우로 인한 사망 사건이 발생한 이후, 정부와 서울시는 실태조사 및 개선 방안에 대한 계획을 수립했다. 또한 제3차 국가 기후위기 적응 강화대책에도 기후위기 취약계층에 대한 국가적 보호 강화를 명시했다. 상술한 계획들이 일부 추진되고 있으나 기후재난의 빠른 속도와 심각성을 고려하면 보다 정밀하고 구체적인 계획 수립과 속도감 있는 정책 시행이 요구된다.
서울시, 또는 이전 정부와 비교할 때 현 정부의 국정과제에서도 진일보한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과 '기본이 튼튼한 사회'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만큼, 앞으로 계획 추진 과정과 그 결과만큼은 실질적으로 달라지길 기대한다
불평등의 민낯을 과감하게 드러내 개선하려는 도전이 없다면 기후재난으로 고통받는 취약계층의 안전은 보장받을 수 없다. 영국의 경제 역사가이자 사회 비평가인 리처드 토니(R.H. Tawney)는 그의 저작 '평등(Equality)'에서 불평등을 시정하는 것이 현대 문명사회의 본질적인 사명임을 강조했다. 기후재난 상황에서 심화되는 불평등 해결을 사회적 책무로 인식하고 성실히 이행하는 사회로의 전환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김윤민 국립창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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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 김윤민 국립창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소셜 코리아> 편집위원,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정책 자문위원,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빈곤과 불평등 담론 등을 주제로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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