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0.02 12:06최종 업데이트 25.10.02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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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여성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간다. (자료사진)연합뉴스

지난달 18일, 고향인 경남 창원을 찾았다. 경남MBC의 시사 프로그램인 <뉴스파다>에 출연하기 위해서였다. 진행자인 이상훈 기자로부터 "경남도는 청년 인구, 특히 여성 청년인구 유출 이유가 일자리, 교육 문제라 보고 있다. 경남 출신이자 지금은 서울에서 활동하는 입장에서 이 부분 어떻게 보나?"라는 질문을 받았다.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창원에서 16년을 살았던 나야말로 지역 유출 인구 당사자다. 이제 외지 사람이 된 내가 첨언하기 난감한 이슈이기도 했다. 생방송 중에 어물어물, 몇 마디 주워섬겼다. 등으로는 식은땀을 흘렸다.

창원은 수도권으로 가장 많은 인구가 순유출된 시군구다.(2024년 기준) 지난달 17일 통계청이 발표한 '최근 20년간 수도권 인구이동'에서 창원은 지난해 수도권으로의 순유출자수가 3156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순유출이란 유출에서 유입인구를 뺀 것을 뜻한다). 같은 자료에서 최근 20년 간(2004~2024년) 19~34세 청년층이 수도권으로 순유입됐음을 알 수 있었다. 지난해 여성의 수도권 순 유입자수는 남성의 두 배 수준이었다. 청년 여성이 수도권 유입세를 견인하는 모양새다. 사유는 직업과 교육이었다.

나는 2007년, '교육'을 이유로 수도권으로 이사해 현재 거주한 지 18년을 넘어서고 있다. 2021년, 부모님도 수도권으로 이사를 오면서 고향에는 몇몇 친구들 말고는 연고가 없다. 그나마도 상당수는 대학 또는 직업 때문에 나처럼 상경했다.

나이 서른 넘어 다시 간호대, 사범대에 가는 여자들

<직업을 때려치운 여자들> 겉표지동아시아

나는 부득불 서울 이주를 감행한 케이스다. 지난해 공저로 출간한 책 <직업을 때려치운 여자들>은 이같은 나의 상경 서사와 여자들의 직업 생활에 대한 오랜 고민에서 비롯됐다. 어려서부터 '여자 하기 좋은 직업'으로 교사 아니면 간호사가 권유되고, 대입 시기가 되면 아들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내고 딸은 동네 사범대나 간호대로 보내는 것에 나는 꾸준히 불만이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과 부모님이 추천한 집 근처 사범대 대신, "기자가 되겠다"라며 서울 소재 대학으로 갔다. 남성들에 비해 여성들 직업 선택의 폭이 매우 좁고, '여자 하기 좋은 직업'인 줄 알았던 '여초 직업'들에서 퇴직 러시가 감행되고 있다는 것이 <직업을 때려치운 여자들>의 골자였다.

그러나 이러한 책을 쓰고 북토크 등의 행사로 독자들과 직접 마주했을 때, 나는 더러 난감할 때가 많았다. "저희 지역에는 여자가 할 만한 일자리가 별로 없는데요. 책에 나오는 교사, 간호사 같은 직업이 아니면 지역의 여자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책에 나오는 이직의 사례들, 프리랜서 작가나 온라인 홈쇼핑 쇼호스트, 뷰티 마케터 등의 직업적 기회가 비수도권에는 많지 않은 탓이었다.

2023년, 다니던 언론사를 그만둔 나는 고향의 야구팀인 NC 다이노스에 입덕해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오르듯' 뻔질나게 창원을 들락거리게 됐다. 자연스럽게 "창원에서 다시 살 순 없을까?"라는 질문에 봉착했다. 고향에서 네일숍을 하는 여고 동창에게 물어봤다.

"창원 사는 여자들은 주로 무슨 일을 해?"

"우리 가게 손님들 보면, 서른 넘어 다시 대학 가는 케이스 많더라. 사범대나 간호대로. 고등학교 졸업하고 공단(창원국가산업단지)에 공장 다니다가,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서 가는 거 같더라고."

정확히 <직업을 때려치운 여자들>과 반대되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이 얘기를, 함께 NC 다이노스에 '입덕'한 경남 통영이 고향인 대학 동기에게 얘기했더니 뜻밖의 고백이 쏟아졌다.

"사실 나도… 야구나 보면서 고향 근처에서 살고 싶어서 창원에 일자리를 알아봤는데, 마케터를 뽑는대서 찾아간 곳이 거리 전단지를 만드는 곳이더라고. 내 경력(뷰티 마케터)을 전혀 살릴 수가 없겠더라고."

그 일을 계기로 나도 곰곰, 내가 고향에 가면 뭘 해먹고 살 수 있을지를 생각해 봤다. 프리랜서 기자인 나의 특성상, 고향에 가서도 일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나는 수도권에서 직업 생활을 영위해 왔기에, 고향에 가면 나의 인적 네트워크를 처음서부터 다시 쌓아야 한다.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젠더 이슈를 보도하는 기자가 매우 드물 뿐더러, 관련 수요가 많지 않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전해 들었다. 뷰티 마케터인 친구와 사정이 비슷한 것이다.

'핑크칼라'를 넘어설 성평등 거버넌스를 꿈꾼다

여성가족부가 ‘성평등가족부’로 확대 및 개편됐다.이정민

고향에 사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결국 여자들이 일할 직장이 문제"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던 친구는 저출생과 청년 인구 유출로 어린이집 원아들이 감소하면서 교사 자리가 많지 않다고 했다. 아이를 낳고 다시 복귀할 수 있을 만한, 육아휴직이 가능한 풀타임 직장이 드물어 '알바'를 하는 여성이 많다는 얘기도 전했다. 일자리가 없기도 할뿐더러 가용가능한 일자리의 질이 점점 후퇴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허은(2018)에 따르면 창원의 노동시장은 양질의 남성 일자리와 질 낮은 여성 일자리로 젠더화돼있다. 제조업과 같은 창원의 주력 산업들은 남성들에게 고임금과 고용 안정성이 보장하지만, 여성들이 많이 종사하는 서비스업은 발전이 더디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인 남성과, 가족 임금에 미달하는 금액을 보조하거나 '어머니' 역할에 충실하는 여성이라는 가족모델이 공고화된다. 이러한 상황은 당연히, 직업적 다양성을 좇으며 양질의 일자리를 찾는, 전통적인 '어머니' 역할에만 머무르기를 거부하는 청년 여성들이 고향을 떠나는 기제가 된다.

나는 <직업을 때려치운 여자들>에서 말했듯, 서울에 가고 싶은 욕망이 여성들에게만 봉쇄되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라고 본다. 그러나 고향에서 삶을 영위하고 싶은 여성의 욕망 또한 지켜져야 하며 일자리를 찾아 내몰리듯 떠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 1일 출범한 성평등가족부는 이러한 여성의 현실, '기울어진 운동장'인 비수도권 지역의 산업 구조와 가부장적 가족 모델의 재생산에 관심을 경주해야 한다.

성평등가족부를 중심으로 한 '지역까지 고루 미치는 성평등 거버넌스'의 재생이야말로, 백래시 국면에 성평등 정책 퇴조를 보였던 지자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지역소멸'의 중심에는 저임금의 '여초' 서비스업 직종인 '핑크칼라'를 넘지 못하는 불편한 현실을 지자체와 정부가 직시하고 직접적인 개입을 해내야 한다. 기존에 고용노동부가 맡던 여성고용 업무를 수행하는 성평등가족부에는, 당연히 더 기대를 할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이슬기·서현주, <직업을 때려치운 여자들>, 동아시아, 2024.
허은, 창원 지역 노동계급 여성의 성별 노동 불평등 적응 기제에 관한 연구, <경제와사회> 2018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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