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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나라의 급식 시스템을 그대로 해외에 가지고 가서 현지 학생들에게 한 끼 식사를 만들어 주는 방송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적이 있다. 하얀 식판과, 거기에 담긴 음식을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외국 학생들도 이내 적응해서 잘 먹었고, 다양한 한식 메뉴를 응용한 맛있는 점심 식사에 다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장면은 정말 보기에도 흐뭇했다. 이른바 'K 급식'이 다른 나라에도 통한다니. 신기하고 자랑스러웠다.
꼭 방송뿐 아니다. 각종 SNS에서 우리나라와 외국 학교의 급식을 비교하는 사진이며 영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해외 네티즌들은 한국의 학교 급식이 미국 등 다른 선진 국가의 급식보다 맛과 영양이 더 뛰어나다며 칭찬 일색이다. 언뜻 비교해 봐도 우리나라 급식이 양도 푸짐하고 음식 가짓수도 많은 데다 영양 균형도 맞는 것 같아 보인다. 어떤 외국 네티즌이 한국 급식을 보고 "여기는 진짜 채소가 나온다"라며 놀라워 했다는데, 그가 학교에서 먹었던 급식은 주로 냉동식품을 데운 음식이라고 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학교 급식이 대부분 무료라는 사실이다.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무상급식이 본격 실시된 지도 이제 15년이 되어 간다. 무상급식 실시 여부를 놓고 논란이 많았고, 실시 과정에서 우려와 문제점도 많이 있었지만, 많은 분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 학생들이 그래도 다른 나라에 비해 좋은 식사를 무료로 공급받고 있다는 건 참 기쁜 일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우리 아이들 밥 먹이는 일"이라 아마도 어른들이 더 많은 신경을 쓴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식판 들고 줄 서는 직장인들
식판에 담은 밥을 줄 서서 받아먹는 단체 급식은 꼭 아이들에게 한정된 일은 아니다. 회사에도 구내식당이 있다. 물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무료는 아니다. 그러나 다른 외식 메뉴에 비해서는 확실히 저렴하다. 요즘은 외식 물가가 너무 비싸니까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직장인들이 예전에 비해 많이 늘었다. 외부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구내식당도 곳곳에 많이 보인다.
문제는 음식의 맛이다. 대기업이 직원 복지 차원에서 마련한 사원 식당 메뉴는 정말 훌륭하다(고 들었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절로 솟아날 듯한 화려한 급식 사진을 보며 침 흘린 기억이 있다. 그러나 내 주변으로 눈을 돌려보면 현실은 조금 다르다.
물론 단체 급식이란 게 꼭 필요한 영양소가 균형 있게 갖춰진 것도 맞고, 반찬 가짓수나 양도 매우 적절하게 나오는 건강한 식단이란 것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인 구내식당 밥을 너무 맛있다며 즐기는 사람은 보기가 힘들다. 우리 회사 건물 지하에도 구내식당이 있는데 너무 맛이 없어서 못 먹을 정도는 결코 아니지만, 솔직히 말해서 밖에 나가기 싫을 때 가끔 이용하는 정도다. 아마도 내가 회사를 너무 오래 다닌 바람에 뭐가 나와도 만족 못 하는 탓도 있겠으나, 하여간 그렇다.
그런데 최근에 사무실 근처에서 성업중인 꽤 괜찮은 구내식당을 두 개 발견했다. 뭘 먹을지 고민할 필요도 없고 맛도 훌륭하고 가격도 괜찮아서 가뭄의 단비 같은 곳들이다. 한 곳은 진짜 구내식당이고 한 곳은 직원 식당 콘셉트의 일반 대중식당이다. 가격은 둘 다 약간 비싼 편이지만 그래도 다른 외식 메뉴보다는 저렴하다. 한마디로 가성비 만점이란 얘기다. 식판에 철철 넘치게 음식을 담아 먹노라면 여기가 우리 회사 식당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점심마다 장사진, '프리미엄 직원식당'

▲을지로 입구 '프리미엄 직원식당'에서 음식을 담는 손길이 바쁘다. 하나씩 담다보면 식판이 넘치게 된다.
여운규
첫 번째로 소개할 집은 을지로입구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프리미엄 직원식당'이다. 굉장히 넓은 지하 공간에 식판 들고 줄 선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는 곳이지만, 이름과 달리 특정 회사의 직원 식당은 아니고 일반 음식점이다. 8900원 하는 식권을 구매하면 뷔페식과 일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뷔페식은 식판에 손수 밥과 반찬을 담는 일반적인 구내식당과 같은 시스템이고, 일품 코너는 미리 정해진 메뉴를 쟁반에 바로 담아서 가져갈 수 있게 되어 있다. 그 외에 간단히 먹는 사람들을 위해 샐러드와 포케 등을 비치한 간편식 코너도 있다.
뷔페식은 밥과 국을 제외한 반찬이 대략 여섯 종류 정도 구비되어 있다. 그러니 당연히 식판이 넘쳐난다. 식판의 반찬 칸은 밥과 국 말고 보통 네 칸이니까. 처음 가면 담을 곳이 없어서 당황하다가 결국은 매우 지저분한 형태로 음식을 겹쳐 담게 된다. 나도 처음엔 곤란을 겪었지만 몇 번 가 본 다음부터는 밥을 한쪽으로 약간 밀어서 담고 그 옆에 샐러드를 배치하는 식으로 요령이 생겼다. 슬쩍 보니까 어떤 손님은 국그릇 담는 칸에 불고기를 잔뜩 담고, 국은 따로 들고 오기도 했다.
그런 푸짐함이 우선 마음에 들고, 음식 맛도 괜찮은 편이다. 이 정도 가격에 이 정도의 음식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개업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깔끔하고, 공간이 무척 넓어서 손님이 몰리는 시간이라도 앉을 자리가 충분하다. 식판을 들고 빈자리를 찾아 우왕좌왕 하는 광경은 보기 힘들다. 인근 직장인들 사이에 소문이 많이 나서 점심시간마다 붐비는 집이다. 그러다 보니 음식을 담느라 대기하는 줄이 너무 길다는 게 한 가지 단점이다. 물론 생각보다는 줄이 빨리 줄어들긴 했다. 정말 이름 그대로 프리미엄 버전의 직원식당이라 할 만했다.
호텔리어들과 함께 먹는 점심

▲광화문 '호텔 코리아나'의 구내식당은 과식을 부르는 주범이다.
여운규
두 번째는 광화문 '호텔 코리아나'의 구내식당이다. 거기서 일하는 호텔리어들을 위한 식당이지만 외부인도 이용 가능하고, 출입 제한 시간도 없다. 호텔 로비 한쪽으로 나 있는 출입구를 통해서 지하 2층으로 내려가면 된다. 호텔에 이런 공간이 있었나 싶은 계단을 한참 내려가면 식권 판매대가 보인다. 가격은 1만 원이다. 좀 비싸긴 하다. 아마도 구내식당 중에서 최고가가 아닐까 싶은데 일단 이용해 보면 전혀 아까운 가격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여기도 위에 소개한 집과 마찬가지로 밥 국 제외 여섯 가지의 반찬이 나온다. 역시 식판이 모자란다. 그런데 그거 말고도 오렌지 바나나 등의 과일을 후식으로 먹을 수 있다. 그뿐 아니다. 뷔페 식당에서 흔히 보는 작은 그릇에 담긴 국수 코너가 따로 있고, 저쪽에는 라면을 손수 끓여 먹을 수 있는, 이른바 '한강 라면' 기계가 놓여있다. 빵을 먹고 싶은 사람은 토스트를 구울 수도 있고, 즉석 와플 기계까지 이용 가능하다. 엄청나게 다양한 옵션이 존재하는 거다.
그렇다고 밥과 함께 국수나 빵을 먹는 일은 거의 드물다. 일단 여기는 반찬으로 나오는 음식들이 하나같이 먹음직스럽고 맛도 좋아서 자꾸 더 담아 먹게 된다. 뒤에 이용할 사람들을 위해 조금만 담으려고 노력하지만 그게 잘 안된다. 그러니 밥과 반찬만으로도 이미 과식 상태가 되어버리기 일쑤다. 예전에 후식 삼아 와플을 한 번 만들어 먹었다가 오후 내내 소화가 안 돼 괴로웠다.
식판을 내고 바깥으로 나오면 역시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커피 머신이 기다리고 있다. 에스프레소를 한 잔 내려 호텔 로비로 올라와서 느긋하게 마시면서 생각한다. 여긴 정말 대박이구나. 인터넷을 통해 그날의 메뉴를 미리 검색해 볼 수도 있다. 날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여기 메뉴를 꼭 한 번은 들여다보게 된다. 오늘 호텔 식당에는 뭐가 나오나 하고.
조리사의 수고가 만드는 'K 급식'

▲2024년 3월 19일 학교급식실 폐암대책위 주최로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신학기 학교급식실 결원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는 모습. K 급식은 조리사님들의 수고로 만들어진다.
이정민
나는 학교에서 급식을 먹어 본 경험이 없는 세대다. 도시락을 싸 갖고 다녔다. 야간 자율학습이 있으면 도시락은 두 개로 늘었다. 그랬는데 오히려 요즘 들어서 급식을 더 자주 먹게 된다. 외식 물가가 높아지는 바람에 설렁탕이나 한 그릇 먹을까 하다가도 식판을 들고 줄 서는 일이 잦아진 거다. 학교에서도 먹어 본 적이 없고, 군대에서나 경험했던 급식을 요즘 들어 자주 먹는 게 어찌 보면 재미있다.
식판을 앞에 두고 앉아서 가끔 생각해 본다. 그 옛날 내 도시락을 싸느라 고생하신 어머니 생각을 하면 그때도 학교에서 급식을 줬더라면 얼마나 편했을까 싶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 아이들이 양질의 급식을 먹으면서 무사히 학교를 졸업할 수 있어서 큰 다행이었다. 도시락 싸는 수고도 없었고 급식비도 내지 않았으니 부모 된 입장에서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런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우리나라 학교의 급식 품질이 높은 것은 조리사들의 수고에 크게 기댄 결과라고. 외국처럼 냉동식품 데워서 내놓는 정도라면 맛은 없지만 노동이 훨씬 적게 들고, 오히려 식중독 같은 문제 발생 확률은 낮아질 수도 있어서 공급하는 입장에서는 훨씬 편하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이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여야 한다는 일념 하에 정말 많은 분들이 넘치는 수고를 해 주시는 것 같다.
학교와 학부모들의 관심은 말할 것도 없고, 맛있는 한 끼를 위해 영양교사, 영양사 선생님들도 고생하시지만 무엇보다 조리사님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각종 재해와 질병에 시달려 가며 힘든 노동을 감내한 덕분이 아닐까 한다. 그 덕에 아이들도 행복하고, 나아가서 K 급식이 세계적인 찬사를 받는 거라 생각한다.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큰 감사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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