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영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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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칼>에서 가장 돋보이는 캐릭터인, 혈귀의 최고 집단인 상현 중 세 번째 서열인 아카자가 좋은 예다. 아카자와 대립 구도를 이루는 캐릭터가 염주 렌코쿠라는 귀살대 핵심 요원이다. 렌코쿠는 <귀칼>의 앞선 작품인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에서 아카자와 싸우다가 패배하고 죽는다. 렌고쿠는 죽음 직전 환영처럼 어릴 때 어머니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어머니는 자신이 지닌 강한 힘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묻는 어린 렌코쿠에게 이렇게 말한다. "힘을 가진 자는 약자를 지켜야 한다. 그것이 주어진 사명이다." 렌코쿠는 불멸의 욕망과 관련된 악의 손길을 거부하면서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숙명을 받아들인다. <귀칼>의 아카자는 렌코쿠의 모습과 대조, 혹은 비교가 된다. 그러나 결국은 렌코쿠와 같은 길을 걷는다.
악을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것이 한국문학의 아쉬움이라고 적었지만, 악을 제대로 그리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악과 선의 경계를 숙고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불멸의 욕망에 사로잡힌 무잔 같은 악귀도 있지만, 대부분 악은 선과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아카자가 두드러진다. 영화를 보고 나서 궁금해서 아카자라는 이름의 의미를 찾아봤다. 아카자(猗窩座)는 거세당해 고분하게 앉아있는 개, 혹은 기묘하고 어두운 자리에 앉은 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카자는 인간성을 잃고(거세) 도깨비가 되어버린 어두운 존재라는 걸 이름이 드러낸다. 일본어 발음 아카자는 赤座(빨간 자리)를 연상시키며, 아카자의 피부색, 문신, 그가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힘과 폭력도 연상시킨다.
아카자가 인간이었을 때 이름인 하쿠지(狛治)에서 狛(하쿠/코마)는 원래는 고구려를 가리키는 한자였고, 일본에서는 고대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 혹은 신사에 있는 사자상(狛犬 코마이누)과 연결된다. 하쿠는 밖에서 온 신성한 수호의 힘을 나타낸다. 治(지)는 다스리고 고친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쿠지는 누군가를 지키고 치유하는 존재다. 충직하게 신사를 지키는 코마이누처럼 하쿠지는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자 했다. 하쿠지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간호했으며, 후에는 병든 연인을 지키려 했다. 그러나 참혹하게 그들을 잃는다.
그렇다면 하쿠지는 어떻게 악의 화신인 아카자로 변모했는가? <귀칼>은 아카자가 인간이었던 시절에 겪었던 비극을 꽤 길게 플래시백으로 보여준다. 이 장면이 너무 길다고 느낀 관객도 있겠지만, 나는 공감하면서 봤다. 하쿠지는 아끼는 모든 것을 빼앗기고 그렇게 된 이유가 자신이 약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리고 더욱 강한 존재가 되기 위해 혈귀가 되라는 무잔의 유혹을 받아들인다. 아카자 캐릭터가 주목을 요하고 관객의 공감을 얻는 이유는 그가 인간을 증오하고 잡아먹는 혈귀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일본 민속 전통에서 도깨비는 인간과 연결된 존재, 특히 인간의 원한, 탐욕, 고통이 낳은 존재이다. 악이 선과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선함이 외부의 힘으로 훼손되고 파괴될 때 선함이 사라지고 악이 득세하게 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선(천사)과 악(악귀 혹은 도깨비) 어느 쪽도 될 수 있는 잠재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고통과 시련에 굴복하는 인간의 약함으로 쉽게 악으로 기울어진다. <귀칼>은 박진감 넘치는 액션 속에서 그 점을 표현한다.
그래서 아카자가 스스로 선택하는 최후가 마음에 남는다. 아카자는 혈귀가 되고 나서 강함을 맹목적으로 숭상했지만,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스승과 약혼자)을 떠올리면서 자신이 추구한 강함은 누군가를 지키는 강함이었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아카자는 스스로 자신의 불멸성을 파괴하고, 그가 사랑했던 이들이 있는 곳으로 넘어간다. 아카자는 <무한열차>에서 렌코쿠가 보여준 강함의 의미를 다시 상기시킨다. 그 순간에도 절대악인 무잔은 아카자를 막으려 한다. 불멸의 욕망으로 채워진 사악함의 화신인 무잔을 보면서 우리 시대의 권력자들을 떠올린다면 내가 과잉반응을 보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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