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0.03 19:58최종 업데이트 25.10.03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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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고비는 세마글루타이드 성분의 식욕억제제이며, 오젬픽은 같은 성분이지만 당뇨치료제로 허가된 약이다. '그 약이 알고 싶다'는 두 번의 기고를 통해 식욕억제제 위고비 열풍에 대해 다뤘으며, 이번이 연속 기고의 마지막 글이다.[기자말]
서울 시내 한 약국에 비만치료제 위고비 입고 안내문이 붙어있다. 위고비는 혈당 조절에 중요한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식욕 억제를 돕는 GLP-1 계열 비만 치료제다. 식약처는 위고비가 의사의 처방 후 약사의 조제·복약지도에 따라 사용해야 하는 의약품이라고 설명했다.연합뉴스

한 달에 8만 명. 지난 4~6월 한국에서 위고비를 처방받은 사람들의 수다. 김선민 의원실이 공개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3개월간 24만 4000개의 위고비 처방전이 발행되었다. 또한 아이큐비아 자료에 따르면 올해 1~6월 매출액은 2133억 원에 달하는데, 단순 계산해서 올해 매출액이 4000억 원을 넘길 예정이다. 이는 2023년 한국에서 4번째로 많이 처방되는 약보다 많은 액수다.

말 그대로 광풍이다. 위고비 광풍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이미 미국에서 '오젬픽 대란'을 겪은 바 있으며, 한국이 매년 100만 명 넘게 위험한 마약류 식욕억제제를 복용해왔기 때문이다. 최근 비만치료제 급여화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 논의에 앞서 한국과 미국에 있었던 특별한 문제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금지된 다이어트약 사용하는 115만 명

위고비가 한국에 출시되기 전에 한국의 비만치료제 시장은 위험한 상황이었다. 유럽 등 주요국에서는 안전성을 이유로 허가되지 않거나 판매가 중단된 마약류 식욕억제제를 매년 115만 명 이상이 복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펜터민은 연간 80만 명, 펜디메트라진은 50만 명이 사용한다. 디에타민, 휴터민, 본트릴, 푸링... 다이어트 클리닉에서 흔히 처방하는 바로 그 약들이다.

이 약들은 이미 90~00년대 유럽 주요국에서 판매 중단된 바 있다. 캐나다도 안전성을 이유로 사용하지 않는다. 주요 선진국 중에서는 미국과 영국만이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암페타민 계열로 중추신경계를 자극해 식욕을 억제하는 이 약들은 심혈관계 부작용과 의존성 등으로 장기간 사용할 수 없는 약이다. 한국에서도 원칙적으로 비만 환자에게 단기 사용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마른 체형의 사람이 장기간 복용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한국에서 '안전하다'고 알려진 저함량 펜터민/토피라메이트 복합제(상품명 큐시미아)조차 유럽에서는 심혈관계, 정신신경계 부작용 및 장기 안전성 미확립을 이유로 승인이 거부되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마치 '안전한 다이어트약'이라는 이름으로 처방되고 있다.

한국 사회의 극단적인 외모 지상주의가 만든 비극이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살을 빼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식욕억제제를 찾는다. 매일같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쏟아지는 '완벽한 몸매' 이미지들, 끊임없는 외모 평가, 사회적 비교 속에서 다이어트는 그들에게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된다.

이런 환경에서 비만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사회적 낙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더욱이 다이어트 클리닉들이 영리적 방식으로 운영되면서 약물 처방은 안전성보다는 '효과'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워너비들의 비만약, 오젬픽 대란

덴마크 제약회사 노보 노디스크의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AP 연합뉴스

미국에서 당뇨병 치료제로 허가받은 오젬픽은 출시 초기부터 인기가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경쟁 제품인 트룰리시티보다 판매량이 저조한 상태였다. 하지만 유명인들 사이에서 '살 빠지는 약'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소셜미디어를 타고 번진 오젬픽 열풍은 코로나19 이후 활성화된 원격의료와 만나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오젬픽은 미국에서 당뇨병 치료제로 허가되었지만, 많은 의사들이 비만치료 목적으로 '적응증 외 처방(오프라벨)'을 남발했다. 예상치 못한 수요 급증은 미국 내 품귀현상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정작 당뇨병 치료를 위해 사용하는 많은 환자들이 약을 구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뇨병을 관리하기 위한 약이 '다이어트용'으로 소비되면서 환자들은 건강을 위협받게 되었다. 가격도 크게 오르면서 경제적 부담까지 가중되었다.

오젬픽 품절 사태는 또 다른 기형적 시장까지 창출했다. 미국의 '컴파운딩 약국'이 그 주인공이다. 원래 컴파운딩 약국은 제약회사가 생산하지 않는 약이나 단종된 약을 의사 처방에 따라 약사가 직접 조제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오젬픽 품절 현상을 틈타 여러 컴파운딩 약국들이 세마글루타이드와 비타민을 혼합한 '복합제'를 제조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기존 제품과 다른 조합이라는 이유로 특허 규제를 피해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젬픽은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되었지만, 미국에서는 부유한 사람들의 자기관리 목적으로 소비되었다. 정작 당뇨병 환자들이 사용할 약은 부족했고, 비만으로 생명이 위험한 사람들은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접근하기 어려웠다. 독점적 특허제도로 인한 생산량 부족은 컴파운딩 약국의 새로운 모델까지 만들었다.

과학적 진보가 사회를 개선시키기 위한 조건

60년 전 장대높이뛰기에서는 대나무나 철제 장대를 사용했다. 1960년대 후반 탄성이 훨씬 좋은 유리섬유 장대가 등장하자 이를 사용하는 선수들이 훨씬 좋은 성적을 거뒀다. 기록이 1미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유리섬유 장대는 금지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경쟁 도구로 받아들여졌다. 모든 선수가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만치료제는 어떨까?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작용제 개발이라는 과학적 진보가 기록 향상과 같은 사회 건강의 질 개선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그렇지 못하다. 약을 모든 사람이 똑같이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싼 가격 때문에 돈이 있는 사람만 쓰게 되고, 사회계층 간 격차는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더 나쁜 현상은 특정 약이 부유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면서, 누군가에게는 과시적 소비의 한 형태로 번져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GLP-1 작용제(세마글루타이드, 둘라글루타이드, 리라글루타이드, 티르제파타이드)를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다. 빠르게 증가하는 비만과 당뇨병 대응을 위해 필수적인 의약품으로 본 것이다. 이에 앞서 중저소득 국가의 의료기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국제 비영리기구인 의약품 특허풀(Medicines Patent Pool, MPP)도 2025년 우선순위 의약품 목록에 세마글루타이드, 티르제파타이드를 선정했다.

WHO와 MPP가 식욕억제제를 필수의약품 또는 우선순위 의약품으로 지정한 가장 큰 이유는 체중감소와 혈당조절 효과를 인정함과 동시에 비싼 가격으로 인해 계층에 따른 치료 격차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과학적 혁신이 공평하게 전달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공평한 접근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상황에서 GLP-1 계열 식욕억제제의 급여화 논의가 시작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한국은 앞서 말했듯이 마약류 식욕억제제에 대한 대형 스캔들이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다른 나라에서 사용을 금지한 약물을 한국에서는 매년 100만 명 넘게 사용하고, 사용기준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며, 부작용 모니터링도 부실한 상황이다. 식욕억제제 급여화 논의에 나서기 전에 기존 문제들의 개선에 대해 먼저 논의할 필요가 있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살을 빼야 한다고 믿는 한국 사회의 단면에 대해 성찰이 우선이다.

비만 치료는 '건강한 삶을 되찾는 열쇠'가 되어야 한다. 사회적 낙인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학적 필요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명확한 치료 대상, 적절한 약, 그리고 접근가능한 가격이 필요하다. 이는 식욕억제제 급여화 논의의 대전제가 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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