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현지시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유엔 총회 기간 중 미국 뉴욕의 파크레인 호텔에서 기자회견 후 자리를 떠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일본이 투자자도 채권자도 아닌 기형적 지위를 받아들였다면, 최소한 수익 배분만큼은 공정해야 한다. 그러나 양해각서가 설계한 수익 배분 메커니즘은 일본의 불리한 지위를 더욱 악화시킨다. 언론은 "원금 회수까지 50:50, 이후 90:10"이라고 단순화했지만, 실제 구조는 복잡한 계산식으로 일본의 손실 가능성을 숨기고 있다.
핵심은 일본이 받아야 할 '기준 배분액(Deemed Allocation Amount)' 계산식이다. 기준 배분액은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먼저 이자는 미국 단기금리에 추가 금리를 더해 계산하고, 원금은 투자액을 프로젝트 수명으로 나누며, 여기에 못 받은 금액의 이월분을 합산한다.
예를 들어, 100억 달러를 투자한 경우를 보자. 미국 금리를 기준(단기금리 4.5% + 스프레드 1% = 5.5%)으로 연 5.5억 달러의 이자가 발생하고, 100억을 20년에 나눠 갚는다고 보면 연 5억 달러의 원금 상환이 더해져, 일본이 매년 받아야 할 기준 배분액은 10.5억 달러가 된다.
얼핏 보면 은행에 돈을 빌려준 것처럼 안정적이다. 매년 10.5억 달러씩 20년간 받으면 원금과 이자를 모두 회수하는 구조다. 하지만 은행 대출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은행은 기업이 망해도 담보를 처분해 원금을 회수하지만, 이 양해각서에는 담보도 원금 보장도 없다. 오직 프로젝트가 실제로 벌어들인 현금이 있을 때만 받을 수 있다.
프로젝트 수익이 기준 배분액보다 적으면 일본은 극히 일부만 받는다. 기준 배분액이 10억 달러인데 프로젝트가 5억 달러만 벌었다면, 일본은 2.5억 달러(50%)만 받고 나머지 7.5억 달러는 장부에만 쌓인다.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수익이 부족하면 이 돈은 영원히 받을 수 없다.
프로젝트가 성공해서 기준 배분액을 다 채워도 문제다. 초과 수익의 90%는 미국이 가져가고 일본은 10%만 받기 때문이다. 프로젝트가 대박 나서 1000억 달러의 초과 수익이 나도, 일본은 100억 달러만 받는다.
구조적 불리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미국 금리가 오르면 일본의 기준 배분액은 늘어나지만 프로젝트 수익은 그대로다. 결과적으로 일본이 실제로 받을 수 있는 비율은 더 줄어든다.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손실 100% 부담, 성공해도 초과 수익의 10%만 수령. 망해도 손해, 흥해도 손해인 구조다.
[함정 #3] 거부하면 더 큰 손해, 형식뿐인 선택권
양해각서 제8조는 일본이 "독자적 재량으로" 특정 투자를 거부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하지만 이 거부권 또한 허울에 불과하다. 일본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순간 더 큰 손해를 보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투자를 거부하면 세 가지 벌칙이 즉시 작동한다. 첫째, 수익 배분에서 이자를 받을 권리가 영구히 사라진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기준 배분액'을 통해 일본은 매년 이자와 원금을 합쳐 받기로 되어 있다. 그런데 한 번이라도 투자를 거부하면 '개정 배분액'이라는 것으로 바뀌면서 이자가 통째로 사라진다. 더 나쁜 것은 이것이 거부한 그 투자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다른 모든 투자에도 영구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이다. 일례로, 100억 달러 투자 하나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5500억 달러 전체 투자의 이자가 사라져 버리는 구조다.
둘째, '캐치업 메커니즘'이 발동된다. 이것은 미국이 일본보다 먼저 돈을 챙기는 장치다. 일본이 100억 달러 투자를 거부했다면, 미국이 다른 투자에서 100억 달러를 먼저 회수할 때까지 일본은 불리한 조건으로 받는다. 예를 들어 다음 투자에서 200억 달러 수익이 나도, 미국이 먼저 100억을 챙긴 후 남은 100억만 분배한다. 이 기간 동안 일본은 이자도 받지 못한다.
셋째, 미국 대통령이 재량으로 일본 제품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양해각서는 "일본이 성실히 이행하는 동안 관세를 인상하지 않는다"고 쓰여 있다. 이를 역으로 이해하면, 일본이 45일 내 투자 이행을 거부하면 언제든 관세를 임의의 수준으로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더욱 교묘한 것은 제21조가 이 양해각서를 "법적 구속력 없는 행정적 양해"라고 명시한 점이다. 얼핏 보아, 법적 의무가 없으니 일본이 빠질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다르다. 트럼프는 이미 "약속 어기면 관세 25% 이상"이라고 공개 협박 중이다. 법적 구속력은 없어도 경제적 압박은 언제든 가동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일본의 거부권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다. 거부하면 수익률 하락, 캐치업 벌칙, 관세 인상이라는 삼중고가 기다린다. 협상의 핵심인 '아니오'라고 말할 힘이 완전히 무력화된 것이다. 2029년까지 4년간 일본은 미국이 요구하는 거의 모든 투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단순한 투자가 아닌 '경제적 종속'인 이유다.
일본의 오류를 반복하지 말아야
▲트럼프위협저지공동행동 소속 민주노총, 진보당 등 정당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집회를 열어 한국노동자 구금과 인권유린을 규탄하고, 트럼프 대통령 사과, 관세협박 중단, 대미투자 철회 등을 촉구하며 미국대사관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권우성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타임> 인터뷰에서 미국이 요구한 투자 합의서에 서명했다면 탄핵당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3500억 달러는 선불"이라고 공개 발언한 점이다. 일본도 2029년까지 나눠서 투자하는데 한국은 한꺼번에 내라는 것인가? 일본보다 더 나쁜 조건을 요구받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는 미국의 요구 조건을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일본 정부가 국민에게 불평등한 조건을 미리 알렸다면, 결코 이런 양해각서에 서명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정부도 핵심 쟁점을 국민에게 소상히 알려야 한다. 투자 실패 시 손실은 누가 부담하는지, 거부권은 실질적으로 보장되는지, 환율과 금리 리스크는 누가 지는지. 미국 측 요구의 실상을 정확히 알수록 국민은 올바른 판단을 하고 정부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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