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홍윤님은 다른 청년 장애인들과 함께 2025년 한국장애인재활협회-신한금융그룹이 연 '행동하는 장애청년드림팀' 해외연수 일환으로 미국 넷플릭스 본사 견학을 비롯해 미국 장애 유튜버들과 만났다.
신홍윤
내 삶이 장애인 전체를 대표할 수 없어
- 홍윤님이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을 보면 다양한 장애를 가진 이들이 출연한다. 장애청년계 최대의 마당발인 듯한데.
"전국에서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나고 다양한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건 정말 좋다. 그런데 다양한 이들의 삶의 무게도 함께 느끼게 된다. 지역과 세대 따라 장애에 대한 감각이 정말 다르다. 특히 수도권과 그 외 지역에서 삶의 경험도, 난이도 자체가 다르다. 지역에서는 삶의 난이도가 높다 보니 장애를 매력화할 여지가 정말 없다. 지역 대학을 방문해 장애학생 인생상담을 하다 보면 수도권을 염두에 두고 조언하면 안 된다는 걸 느낀다.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다.
비단 장애 청년뿐 아니라 비장애 청년도 마찬가지겠지만, 중증장애청년들이라 해도 수도권에서는 어떻게든 일할 기회를 찾을 수 있지만 지역으로 가면 그런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 기회가 적다 보니 상상력이나 진취성까지 쪼그라드는 경우가 있다.
지역에서도 어떤 청년은 대학을 가고 어떤 청년은 시설에서만 지낸다든지 천차만별이라 장애라는 이름으로 묶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내 삶이 장애인 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 내 경험을 말할 순 있어도 '장애인은 이렇다'라는 식의 일반화를 절대로 하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장애인총조사 같은 객관적 데이터를 사용하려 한다.
장애인 고용률은 수치상 많이 올라가고 있는데 볼 때마다 어이없는 게 교직에서의 장애인 채용이 공공부문 꼴찌 수준이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교사를 하는 친구가 있다. 거긴 특수학교가 없고 장애학생이 일반학교에 다니는데 자기네 학교에 전맹 학생이 있다더라. 점자를 어떻게 배우냐고 물었더니 같이 배우고 싶은 비장애인 친구 2명 더 있어서 함께 가르치고 있다고 하더라.
한국에서는 전맹 학생이라고 하면 '당연히 맹학교 가야지'라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장애학생 교육에 대해 담임교사뿐 아니라 교장, 주치의, 보건교사, 상담교사 다 모여서 개별화학습계획을 짜더라(한국에선 주로 특수교사, 담임, 교감 정도가 모이고 외부 전문가가 들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 장애 교사들에게 물어봐도 교직에서 유난히 장애를 낮게 보는 것 같다고 하더라.
"장애 당사자가 몸을 그대로 드러내고 교육하는 걸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 교단은 당사자 용기가 아주 많이 필요한 영역이다. 그래서 교직을 이수하고도 교사를 안 하는 장애 당사자가 많다. 사회적 인식 변화가 있어야 자기의 몸을 학생에게 보여주는 걸 부담스러워하지 않게 된다."
- 경증 장애인들은 자신의 장애가 드러나는 걸 꺼리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선 장애인으로 밝혀지면 불리한 상황이 펼쳐져서 그렇다. 공개할 필요가 없어서 안 하는 상황과 공개되면 불이익이 생기는 상황은 천양지차다."
- 홍윤님은 여러 가지 프리랜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장애 청소년들은 '정규직 할 수 있을까'하는 불안을 많이 갖고 있다. 주변 장애 청년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주변 친구들 상당수는 정규직으로 열심히 일하며 살아간다. 그게 나의 일이 아닐 것이라고 스스로 한계를 정해놓지 않으면 좋겠다. 일자리 자체는 빠르게 다양해지고 있다. 하지만 일자리 품질은 아직 낮다. 우리나라 장애인 일자리는 하루 8시간 일하고 싶어도 4시간짜리 단기 일자리가 아주 많은 상황이다. 사무직보다는 본사와 분리한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청년 시기를 같이 보낸 친구들 중엔 대기업 직원도 소수지만 있고 공무원이 많다. 표준사업장 일자리는 고민이 된다. 한편으로는 그 제도 덕분에 취업률이 5년 전에 비해 많이 올라간 게 사실이라 복잡한 마음이다. 본사와 아예 다른 회사다 보니 임금 체계도 다르고 복리후생도 다르다. 표준사업장은 과도적인 제도라고 생각한다. 10년 뒤에는 그냥 일반 직장에 흡수되면 어떨까.
미국 실리콘밸리 테크기업 장애 직원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표준사업장이란 개념을 당연히 모르더라. 회사에서 붙여준 근로 지원인이나 수어 통역사가 있다. 아마존에서 본 발달장애인 직원이 회사 파티에서 '나의 회사 생활은 지금 이렇고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다'며 자연스럽게 다른 직원들과 어울리는 게 인상 깊었다."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신홍윤님이 장애인식개선교육을 하고 있다.
신홍윤
- 홍윤님의 활동 자체가 사회적 영향력이 있다. 장애인으로서 자신을 드러내면서 콘텐츠를 만드는 삶을 꾸려가는 데 가장 신경 쓰는 점은?
"장애인에 대한 낙인 때문에 주변에서 장애인은 가난하다든지, 대체로 부정적인 인식을 많이 갖고 있다. 티셔츠 하나를 살 때도 '장애인도 멋진 브랜드 의류를 입는다'는 인상을 주려고 신경 쓰게 될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안 써도 되는 비용을 쓸 때도 있고. 어찌 보면 세상에 진 거다. '나는 못난 사람이 아니야'라고 굳이 말로 구구절절 설명하기 어려우니까. 어쩌면 이런 종류의 소비도 또 다른 장애 비용이 아닐까."
- 홍윤님이 밀알복지재단 유튜브 '알TV 아는친구'에서 이야기한 내용 중 '장애 청년의 삶은 쇄빙선'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외향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도 그런가?
"장애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주눅든 모습 대신 씩씩하고 활기찬 에너지를 많이 전하고자 한다. 힘이 없다가도 마이크만 잡으면 접신한 것처럼 활기가 돈다. 그러나 때로는 '내 본모습 맞나'라며 현타가 오기도 한다. 사람들을 만날 때 120%의 에너지를 쓰다 보니 안 그런 시간은 혼자 보내게 된다. 얼마 전 독립을 했기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좀 길고 때로 외롭기도 하다.
나처럼 살고 싶다며 소셜미디어 메시지를 보내오는 분들이 꽤 있는데 그러면 뭐부터 이야기해 줘야 할지 좀 난감할 때가 있다. 정규직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를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에게는 '고정 수입이 월급 이상이 될 때' 프리랜서를 해야 한다고 말해 준다."
- 장애에 대한 한국 사회 인식은 여전히 '불쌍하거나 슈퍼 장애인이거나'로 양분화되어 있지만, 사실은 그 중간이 제일 많은 느낌이다.
"내 인생의 절대적인 시간을 '슈퍼 장애인'에 대한 기대에 맞추며 살아왔다. 지금 언론이나 유튜브 등에서 주목받는 장애인들도 그런 일종의 기대와 압박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나는 평범하고 취약하다는 이야길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 장애인이든 아니든 남들이 나를 좋게 볼 수록 나의 숨겨진 취약성은 커지기 마련이니까.
<케이팝 데몬 헌터스> 보셨나? 그 애니메이션을 보며 힐링하는 느낌이었는데 '슈퍼 장애인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스스로가 스스로를 믿어줄 때 삶의 많은 부분이 시작된다는 메시지 때문이었다."
- 홍윤님이 느끼기엔 장애 관련 사회적 내러티브가 조금은 바뀌어 가고 있는가?
"아직 해외에 비해서 '장애를 신기해하는 인식'은 여전하다. 그러나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이긴 한다. 사회의 장애 내러티브가 약간은 달라졌고 장애 감각이 달라진 것도 느껴진다. 여러 이유가 있다. 장애 유튜버들이 장애를 더 친밀하게 많이 드러내기도 했고, 이사장님처럼 바꿔가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도 있어서다.
선배 세대 때는 없었던 '친근한 친구, 궁금하고 더 알아가고 싶고 환대할 존재'로서의 장애인으로 서서히 변모해 가고 있다. 특별한 순간이라 생각한다. 내 개인의 노력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없어질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이 필요 없어지는 게 바람직하고. 10년 후에도 여전히 영상을 찍고 팟캐스트를 녹음하고 콘텐츠를 만들겠지만, 지금 들어가 있는 '장애'란 요소를 빼고 그런 일을 하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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