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6년 정부 예산안 삭감 반대 시위에서 한 시민이 쥐크만세 도입을 촉구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EPA 연합뉴스
쥐크만에게선 <21세기 자본>으로 유명한 공공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그들은 사제지간으로 쥐크만의 파리경제학교 박사논문 지도 교수가 피케티였다. 쥐크만은 스승과 마찬가지로 자산 불평등, 조세 회피, 조세 피난처 연구에 천착해 왔고,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불평등 측정, 역사적인 세금 징수 방식의 분석, 글로벌 자본의 흐름 추적 등에서 둘은 협업해 왔다. 물론 지금의 쥐크만세 논쟁에서 피케티는 가장 적극적 지원군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세계 불평등 보고서'(2018, 2022)를 발표하고 글로벌 자본의 집중과 부유층의 조세 회피가 심각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쥐크만은 이런 현실에 기반해 각국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법인세율을 경쟁적으로 인하하는 현실을 막고자 모든 국가가 준수하는 법인세 최저세율(15% 이상)을 고안해 냈다.
2021년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쥐크만의 아이디어를 상당 부분 수용해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15%'를 제안했고, 2021년 10월 로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는 대기업들에 최소 15%의 법인세를 부과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디지털세'에 합의했다. 이같은 쾌거는 쥐크만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G20와 본격적인 논의에 돌입하게 되는 길을 열어준다.
내친김에 쥐크만은 2024년 브라질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직접 글로벌 부유세 프레임워크를 제안했다. 프랑스를 포함해 브라질, 남아공 등 여러 나라가 긍정적 반응을 보였으나 미국, 독일, 일본 등 일부 국가가 회의적 반응을 표하면서 여전히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
2013년 <국가의 잃어버린 부>를 통해 5조 8000억 유로가 조세도피처에서 잠자고 있으며 이로 인해 발생한 세수 손실이 1300억 유로에 달한다고 주장한 그는 "프랑스 혁명을 촉발시켰던 특권 계급의 비과세가 오늘날 반복되면서 세계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져오고 있다"고 했다. 27세에 썼던 첫 저서에 담긴 그의 주장은 10여 년간 치열하게 달궈져 오늘 프랑스를 구할 열쇠로 주목 받고 있는 것이다.
젊은 경제학자의 패기 넘치는 주장에 조지프 스티글리츠, 폴 크루그먼 등 7명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르 몽드> 공동 기고로 응원했다. 이들은 지난 7월 7일 '슈퍼리치에 대한 글로벌 과세를 도입하자'는 기고문을 통해 "국제적 논의가 최종 완성될 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다"며 "프랑스가 앞장서서 다른 나라들에 길을 제시하라"고 주문했다.
프랑스인들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거듭된 실정 속에서 불쑥 다가온 경제 위기를 직면했다. 그러나 2차 대전 직후 잿더미 속에서 만들어왔던 복지제도가 이후 나라를 성장시킨 강력한 밑거름이었음을 잘 알기에 바이루 총리의 협박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대신 젊은 경제학자의 명민한 역사적 고찰에 화답하며 이 위기를 부자들이 조세피난처에 썩히고 있는 재화를 끌어내 조세 정의를 세울 기회로 만들기 위해 협력 중이다. 프랑스 전체 노총들은 쥐크만세 관철을 위한 최후통첩을 위해 10월 2일로 날을 잡았다. 이날 프랑스는 다시 멈춰 선다. 더 멀리, 함께 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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