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인 지난 6월 3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운중학교 1층 체육관에 마련된 월영동 제4·5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둘째, 정책의 개방성과 포괄성을 강화해야 한다. 국제 환경협약인 오르후스 원칙(오르후스 협약은 1998년 유엔 유럽경제위원회(UNECE)에서 제정된 국제 환경협약으로, 정보를 쉽게 받을 권리, 정책결정 과정의 시민참여권, 사법적 구제 접근권의 원칙을 담고 있다)을 국내 정책의 표준으로 도입해,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단계'에서부터 시민 참여를 의무화해야 한다. 모든 법률안에는 사전 영향 평가, 이해관계자 식별 지도, 대안 비교표 등을 기본적으로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숙의를 제도화해야 한다. 숙의는 어디로 흐를지 알 수 없는 광장의 에너지를 공적 의사결정 공간으로 끌어오는 마중물이다. 의제설정–입법–정책형성-집행–평가와 같은 전 주기에 걸쳐 이해관계자 협상과 공론화를 포함시켜, 대표성·투명성·근거 기반성 같은 절차적 정당성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넷째, 정보의 무결성(정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용되더라도 정확하고, 완전하며, 일관되게 유지되는 특성)과 설명책임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 모든 행정 절차에서는 객관적 정보자료와 함께 불확실성의 범위, 소수 의견 요약을 표준 서식으로 반드시 공개하고, 근거 데이터와 참고문헌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이루어지는 발언은 토론 규칙과 근거 표기를 의무화하며, 알고리즘의 편향성을 주기적으로 점검하여 공개해야 한다.
다섯째, 현장 대응과 피드백 루프를 상시화해야 한다. 참여, 숙의, 결정, 집행, 환류 등 전 과정을 대시보드로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관리하며, 합의사항 이행률, 재설명 빈도, 분쟁 지연 일수, 수용성 변화, 비용 절감 효과 등을 지속적으로 측정해 공개해야 한다. 이해당사자와 함께 결과를 점검하는 공개 청문과 사후평가 면담을 정례화해 신뢰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 파이프라인을 국가의 헌법적 책무 규정에서 출발해, 갈등관리기본법 제정, 국가공론위원회와 국가공공갈등조정원 등 전담 기구의 설립, 표준화된 절차(갈등영향평가, 매뉴얼, 정부 간 분쟁조정 프로세스, 전문가·퍼실리테이터 양성 및 인증 등), 그리고 갈등 데이터베이스와 조기경보시스템 구축·운영에 이르기까지 법제화한다면, 갈등이 체계 밖으로 이탈하기 전에 조절할 수 있다. 또한 유명무실했던 정부 간 분쟁조정위원회의 실효성을 높이고, 국가인권위원회·국민권익위원회 등 옴부즈맨 기관의 기능까지 강화한다면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
참여는 쉽게, 숙의는 깊게
지금의 한국 사회는 높은 갈등 수준을 제도 내로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제도적 병목의 해소인데,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갈등도 제도 안으로 돌릴 수 있다면 사회적 비용은 줄고, 정책의 정당성은 한층 높아질 수 있다.
절차의 품질이 곧 민주주의의 품질을 결정한다. 절차가 바뀌면 결과도 달라진다. 참여는 쉽게, 숙의는 깊고 치밀하게, 결정은 근거에 기반해, 집행은 투명하게, 평가는 상시로 이루어져야 한다.
제도의 문턱을 낮추고 통로를 넓히면 갈등은 비용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의 자산이 된다. 갈등은 '관리의 대상'이자, 국민주권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경로이며, 민주주의의 바로미터다. 국민주권 시대, 참여와 숙의의 일상화야말로 민주주의의 관건이다.
▲은재호 정치·행정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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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 은재호는 프랑스 고등사범학교(ENS-Paris Saclay)에서 프랑스 정책변동 연구로 정치학(정책학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한국행정연구원에 재직하며 한국갈등학회장,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지원국장과 정부 주요 부처 갈등관리심의위원(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지금은 한국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로 일하며, 연구 현장과 정책 현장을 이어주는 정책 중개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는 <Sida et action publique>(2009), <공론화의 이론과 실제>(2022), <경세제민의 공공리더십>(2024)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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