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새알은 교육 중 갯벌에 나갈 때면 한 줄로 들어간다. 갯벌이 훼손되는 걸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물새알 제공
"우리는 갯벌에 들어갈 때 한 줄로 갑니다. 흩어져서 들어가면 갯벌을 밟는 면적이 많아지니까요. 처음엔 굳이 들어가서 갯벌을 훼손할 필요가 있나. 쌍안경 같은 걸로 봐도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갯벌 생명들과 직접 조우하는 과정들이 더 큰 감동을 주기 때문에 갯벌에 들어는 가되 훼손을 최소화하자는 걸로 뜻을 모았습니다."
'교육한다고 자연을 훼손하지 말자'는 원칙 외에 물새알이 생태환경교육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이 있다. 바로 "생태환경이 모두의 소유인 공공재인 만큼 생태환경교육 역시 개인의 지불 능력에 따라 수혜 받는 대상이 제한되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물새알에서 하는 프로그램들은 참가비가 무료이거나 매우 저렴하다. 이를 위해 관련 기관들에게 숱하게 프로젝트 제안서를 쓰고, 행사 때마다 경비를 줄이기 위해 인맥을 총동원한다.
"물론 자연에 대한 이용료를 내게 해야 자연의 소중함을 더 잘 알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일면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언제든지 쉽고 자유롭게 생태환경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 국가가 책임지고 생태환경교육 예산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강화형해양생태관광 인프라구축사업(해양환경공단), 강화도 생태평화지도 만들기(초록열매), 문화재생사업 운영(국가유산청), 두루미환영행사 및 시민모니터링 사업(EAAFP) 등등 그동안 물새알이 진행한 다양한 생태 프로그램들은 이러한 기조 속에 이루어졌다.
일본과 한국의 어린이를 이어준 저어새
비양도에서 여 대표를 만난 지 한 달여 뒤인 6월 22일, 강화도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그날은 물새알의 대표 사업 중 하나인 '어린이 저어새 수호대'의 올해 마지막 활동 날이었다. 물속에 주걱모양인 부리를 넣어 좌우로 저으면서 먹이를 찾는다고 저어새로 불리는 이 새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이다. 전 세계에 70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았는데 봄부터 가을까지 강화도에 머물면서 번식을 한다. 물새알은 저어새에 대해 공부하고 관찰, 모니터링하는 어린이 저어새 수호대 프로그램을 7년째 운영해 오고 있다.
특히 올해는 일본 환경단체인 Team SPOON(팀 스푼)과 함께 국제 어린이 교류회 형식을 취했다. 저어새의 플라이웨이(이동 경로)에 사는 아이들이 온라인으로 만나 각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공유하고 저어새를 통해 친구가 되는 시간을 보냈다. 한국의 강화도와 일본의 후쿠오카와 오키나와, 야쓰시로에서 20명의 어린이들이 참여했다. 작년 겨울과 올해 봄 후쿠오카와 오키나와 아이들이 각 지역의 습지를 소개한 데 이어 6월 22일엔 강화도 아이들이 소개하는 날이었다. 이를 위해 팀 스푼에서 네 명의 활동가가 강화까지 날아왔다.

▲물새알은 ‘어린이 저어새 수호대’를 7년째 운영 중이다. 배를 타고 나가 각시바위 근처에서 저어새를 관찰하고 있는 어린이들.
신정임
온라인 교류회는 바다 위에서 생중계로 이루어졌다. 분오저어새생태마을(분오포구)에 모인 저어새 수호대는 포구에서 1.2km 떨어져 있는 각시바위 근처까지 배를 타고 나갔다. 각시바위에선 매년 저어새 50여 쌍이 번식을 하고 있단다. 이날도 작은 바위섬엔 저어새가 빽빽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강화도 어린이들은 일본에서 접속한 친구들에게 이 모습을 보여주면서 강화갯벌에서 만난 생물들도 소개했다.
"나는 밤게를 좋아해. 옆으로뿐 아니라 앞뒤, 대각선으로 움직이는 게 신기하거든."(시온)
"강화갯벌에는 조류도 많고 낙지도 있어."(이현)
"여기 와서 털보집갯지렁이를 봤는데 징그럽지 않아."(세진)
저어새가 국경 넘어 어린이들을 이어주고, 하늘과 바다를 이어주는 현장이었다. 실내로 이동해 계속된 교류회에서 어린이들은 새로 태어날 저어새 새끼들에게 이름도 지어주었다. 오랜 의논 끝에 강화팀은 휘적이, 후쿠오카팀은 시로(흰색), 오키나와팀은 강구아(강화도 좋아)로 정했다. 새로운 이름에 만족해하는 아이들과 행사를 마치면서 교류회 사회를 본 팀 스푼의 유우짱이 마지막으로 답이 궁금한 질문을 던졌다.
"5년 후, 10년 후 여러분이 이름 붙여준 저어새가 잘 기다리고 있을까요? 5년 후, 10년 후 여러분은 어떻게 성장했을까요?"
선상탐조로 주민 인식 바뀌어
다음날 일본으로 돌아간 팀 스푼 활동가들은 한 달 후인 7월 23일,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열린 제15차 람사르 총회에서 저어새 어린이 교류회 사업을 발표했다. 그동안 성인 중심으로 이루어진 생태환경운동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어린이들의 국제교류는 의미 있는 시도이기에 주목을 받았다. 이제 물새알과 팀 스푼은 저어새 플라이웨이에 함께 있는 대만, 홍콩, 중국, 베트남의 어린이들까지 교류하는 길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올해는 ‘어린이 저어새 수호대’를 일본 단체와 함께 국제 교류 형태로 진행했다. 일본에서 접속한 친구들과 저어새 새끼 이름 짓기 프로그램 중인 어린이들.
신정임
여 대표는 어린이 저어새 수호대와 함께 진행해 온 저어새 선상탐조가 강화 주민들의 인식을 바꾸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덧붙였다. 처음 선상탐조를 제안할 때 "저놈의 저어새 총으로 쏴 죽이고 싶다"는 주민이 있을 정도로 저어새에 대해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저어새 때문에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지역 개발을 못 하고 벼농사도 망친다는 여론이 강했다고.
"보호지역의 문제가 보호지역으로 지정되면 주민들은 불편함이 생기는데 어떤 인센티브도 없다는 겁니다. 또, 충분히 동의받는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보호지역으로 지정하고, 지정한 후에는 제대로 관리도 안 하니 주민들이 싫어할 밖에요. 그런데 선상탐조를 하면서 선박비를 받으니까 주민들이 보호지역도 도움이 되는구나를 느끼시더라고요."
주민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 대표는 교육도 주민이 직접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 없다고 손을 내젓던 주민들을 계속 설득해 드디어 올해는 주민 강사단을 꾸렸다. 앞으로 강화도에선 새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주민 '새 박사'들이 들려주는 새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됐다.

▲저어새 선상탐조는 강화 주민들의 저어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바꿔놓았다.
물새알 제공
주민들의 변화만큼이나 반가운 건 자연과 친해지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그래서 물새알은 어린이 대상으로 많은 교육을 한다. "아이들이 생명을 만나면 어른보다 훨씬 더 몰입하고 감동을 받거든요." 비양도 탐조대회에 참가했던 한 학생은 새에 꽂혀 다니는 중학교에서 탐조 동아리를 만들었다. 7년 전 저어새 수호대를 하던 친구가 생명과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기도 했다. 새가 한 아이의 인생을 바꿔놓은 셈이다.
현재 물새알은 10월 강화도 주문도에서 여는 '바다부터 우주까지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는 주문도 생태과학캠프'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벌써 3년째 열고 있는 생태과학캠프다. 참가 모집 1분 만에 마감이 됐단다. 그만큼 생태환경교육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늘었다. 이 관심이 계속 퍼져나가길 바라면서 물새알은 새로운 사업도 계속 구상 중이다.
"어촌계와 함께 인천공항 환승객 프로그램을 해볼까 의논하고 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6시간 이상 머무는 환승객들을 위해 남대문, 명동 같은 명소 탐방을 하고 있거든요. 거기에 저어새 선상탐조나 강화도 탐조여행을 넣으면 어떨까 하고요."
알래스카에 가서 북극곰과 함께 생의 마지막 여정을 보내고 싶다는 여상경 대표에게선 끝보다 새로운 시작에 어울리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병들고 있는 지구 생태계가 우리한테 주문하고 있는 것도 이런 희망의 목소리인지도 모르겠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에게 생태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활동의 추천을 부탁했다.
"활동은 모르겠고 관심은 가지면 좋겠어요. 새나 식물, 자연을 보는 걸 귀찮아하지 않고 관심을 가지는 거요.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관광지 말고 야생이 있는 데로 나가보면 좋겠습니다."
▲일본 어린이들이 일부 그려서 보내온 그림을 완성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어린이 저어새 수호대.
신정임
[필자 소개] 신정임: 이야기의 힘을 믿는 기록자. 평범한 이들의 숨어있는 보석 같은 이야기를 캐내는 데 희열을 느낍니다. 책 <우리 같이 노조 해요> <우리들의 드라마> <이태원으로 연결합니다> 등을 함께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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