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9.23 11:54최종 업데이트 25.09.23 11:54
  • 본문듣기
'국가범죄'는 가장 힘센 자의, 가장 덜 의심받는 자의 범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스스로 국가의 범죄를 바로잡는 '과거사 재심'의 의미는 더할 나위 없이 큽니다. 이 시리즈는 국가범죄의 피해자를 구제하고 향후의 국가범죄를 예방하는 과거사 재심의 역사를 돌아봅니다.[기자말]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한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혐의(자살방조)로 1992년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던 강기훈씨는 2015년 5월 14일 대법원에서 열린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한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혐의(자살방조)로 1992년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던 강기훈씨는 2015년 5월 14일 대법원에서 열린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이희훈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여소야대를 허용한 노태우 정권은 정상적 방법으로는 통일운동과 노동운동에 대처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1989년부터 공안정국을 조성하다가 1990년 12월 27일의 노재봉 총리서리 임명을 계기로 공안정국을 본격화했다.

그러나 1991년 4월 26일 91학번 명지대생 강경대가 경찰 백골단의 쇠파이프 집단 구타로 희생되면서 노 정권은 수세에 몰렸다. 국민들은 "강경대를 살려내라"라며 6월항쟁에 버금가는 투쟁을 벌였다.


이런 속에서 노동자·학생들의 분신 투쟁이 속출했다. 4월 29일 전남대 박승희가 분신하고, 5월 1일 안동대 김영균이 분신하고, 5월 3일 경원대 천세용이 분신했다. 고등학생·운전기사·노동자들의 분신도 이어졌다.

공안정국보다 무서운 분신정국이 등장하고 합법적으로 이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노 정권은 엄청난 범행을 결심했다. 이 국가범죄의 피해자가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의 주인공인 강기훈 당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총무부장이다.

위기 국면 전환 위해... 사건 조작한 노태우 정권

강경대 희생 이후의 분신 대열에 강기훈의 한 살 적은 동지인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1965~1991)도 있었다. 그해 5월 8일 자 <동아일보> 23면은 그날 오전의 사건을 이렇게 보도했다.

"서울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 본관 5층 옥상에서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 씨(26)가 '폭력살인 만행 자행하는 노태우정권 퇴진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친 뒤, 미리 시너를 뿌린 몸에 불을 붙이고 20m 아래 아스팔트 길바닥으로 투신, 숨졌다."

김기설이 옥상에 벗어놓은 양복 상의에 유서 2통이 있었다. 신문은 그 내용을 이렇게 소개했다.

"김씨는 시민에게 보내는 유서에서 '우리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죄악스러운 행위만을 일삼는 노태우 정권을 향해 전면전을 선포하고 민중권력 쟁취를 위한 행진을 계속해야 한다'면서 '아프게 살아가는 이 땅의 민중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고민 속에서 변혁운동의 도화선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썼다.

김씨는 또 부모 앞으로 남긴 유서에는 '아버지·어머니의 아들이 아닌 조국의 아들임을 선포해 부모님께 마지막 효도를 하려 합니다'고 썼다. 또 김씨는 이날이 어버이날임을 의식한 듯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오늘 이 행위를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라고 썼다."

강경대 희생과 분신정국으로 노 정권이 위기에 봉착한 가운데, 서울지방검찰청이 구원투수로 나섰다. 서울지검은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가 김기설의 자필이 아닌 것 같다며, 동지인 강기훈을 대필 용의자로 몰아갔다. 진실화해위원회의 <2007년 하반기 조사보고서>는 이렇게 말한다.

"서울지방검찰청은 강기훈을 유서 대필자로 지목하여 수사를 진행하였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유서 및 김기설과 강기훈의 필적 감정을 의뢰하여 '유서와 강기훈의 필적이 동일하지만, 유서와 김기설의 필적은 다르다'는 감정회신을 근거로 동년 7.12 강기훈이 유서를 대필하여 김기설의 자살을 방조하였다는 혐의로 기소하였다."

1991년 5월 27일 강기훈씨가 명동성당에서 필적실연을 해보이고 있다.
1991년 5월 27일 강기훈씨가 명동성당에서 필적실연을 해보이고 있다.연합뉴스

최대의 재야단체 간부가 유서 대필자로 인정되면 분신 정국이 '자살방조 정국'으로 전환되고 운동권의 도덕성이 상처를 받을 수 있었다. 노태우 정권의 검찰은 필적 감정의 권위를 가진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를 끌어들여 강기훈을 유서 대필의 주인공으로 조작하고자 했다.

1894년에 프랑스 군부는 유대인장교인 알프레드 드레퓌스를 프랑스 기밀을 독일로 빼돌린 스파이로 몰아세웠다. 스파이가 독일에 보낸 문서의 필적이 드레퓌스의 필적과 유사하다는 이유였다. 필적이 다르다는 이의제기가 있었지만 무시됐다.

에밀 졸라는 드레퓌스의 결백을 주장하고자 집필한 <나는 고발한다>에서 "어느 날 한 사람이, 뒤이어 몇 사람이 의혹을 품었고 마침내 그들은 가장 중요한 증거, 즉 재판관들이 공공연히 내세웠던 유일한 증거 문서가 실은 그 죄수의 작품이 아니라 다른 인물의 작품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는 말로써 드레퓌스 재판이 엉터리였음을 고발했다.

원칙 무시했던 국과수의 필적 감정

강기훈 재판의 관건이 된 국과수의 필적 감정도 엉터리였다. 진실을 은폐하고 가공의 진실을 꾸며내려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국과수 감정인인 진아무개씨는 2007년 7월 20일 진실화해위원회 진술에서 "당시 감정서를 다시 보니 놀랍고 충격적이었다"라고 말했다. 필적 감정을 주도한 김형영 당시 국과수 문서분석실장의 감정 결과에 대한 실망감의 표현이었다.

진씨의 진술에 따르면, 김형영 실장은 '속필체와 정자체를 상호 대조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속필체로 쓰인 유서와 정자체인 강기훈의 주민등록증분실신고서 등을 대조했다. 그는 필기구의 차이로 인한 필적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등의 오류도 범했다. 진씨는 "가장 초보적인 감정 원칙이 무시된 결과"라고 평했다.

김형영 실장은 1991년 10월 9일의 1심 공판에서 자기 혼자가 아닌 여럿이 감정했다고 증언했다. 위 보고서에 적힌 대화록에 따르면, 검사가 "문서분석실의 감정요원 4명이 함께 내린 결론을 회보한 것인가요?"라고 묻자 그는 "예"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나머지 3인은 2007년에 진화위에서 전혀 다른 말을 했다. 양아무개씨는 대부분의 감정을 김 실장이 했다고 증언했고, 진아무개씨는 "감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일이 없다"고 진술했다. 최아무개씨도 마찬가지다. 서울지검과 접촉한 김 실장이 사실상 혼자 감정했던 것이다.

국과수 감정은 일반적인 필적 감정 원칙을 무시한 채 진행됐고, 4인 공동 감정이라는 주장도 사실과 달랐다. 유서가 대필됐느냐 아니냐를 다루는 사건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필적 감정이 엉터리로 진행됐던 것이다.

그런 감정 결과를 근거로 검찰은 공소를 유지했고, 서울지방법원은 징역 3년과 자격정지 6개월을 선고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원심을 유지했고, 대법원은 강기훈의 상고를 기각했다. 노 정권의 정치공작에 국과수와 검찰·법원이 군말 없이 호응했던 것이다.

노 정권이 범한 국가범죄는 24년 뒤인 2015년의 대법원 재심 판결에 의해 철퇴를 맞았다. 그해 5월 14일 대법원은 김형영이 혼자 감정해놓고 넷이서 감정했다고 허위 증언한 것과 더불어, 유서의 필적과 강기훈의 필적이 다르다는 점 등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했다.

김기설의 유서에서는 겠·있·했처럼 쌍시옷이 들어간 종성이 특이하게 처리돼 있다. 두 번째 시옷은 2획인 ㅅ으로 표기돼 있지만, 앞의 시옷은 1획으로만 표기됐다. 이와 달리, 강기훈이 쓴 문서에서는 쌍시옷이 정상대로 표기돼 있다.

대법원 재심 판결문에 예시된 김기설 유서의 쌍시옷 종성 처리법.
대법원 재심 판결문에 예시된 김기설 유서의 쌍시옷 종성 처리법.대법원

'유서대필사건' 강기훈-김기설 필적 감정 결과
'유서대필사건' 강기훈-김기설 필적 감정 결과고정미

대법원은 이런 점들을 고려해 "공소외 1(김형영)이 작성한 감정서 중 이 사건 유서와 피고인의 필적이 동일하다는 부분은 그대로 믿기 어렵고, 검사가 제출한 나머지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이 사건 유서를 대필하여주어 공소외 2(김기설)의 자살을 방조하였다는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재심 대상이 아닌 김형영의 감정은 믿기 어렵고, 필적 감정을 제외한 나머지 증거만 갖고는 또 다른 공소외인인 김기설의 분신을 강기훈이 방조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판시했다. 신뢰할 수 없는 감정 결과와 불충분한 증거로 강기훈을 죄인으로 만든 대한민국 국가권력이 진짜 범죄자임을 선언했던 것이다.

노태우 정권이 저지른 국가범죄를 대한민국 국가권력이 스스로 실토하는 데 무려 24년이 걸렸다. 국가범죄를 바로잡으려면 시간이 많이 허비된다. 그래서 국가범죄에서는 사후 처방보다 사전 예방이 관건이다. 국가가 딴짓하지 못하게 항상 견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