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진욱
이단비 @if_august
- 이제 연극 이야기를 좀 해볼까. 배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
"고등학교를 졸업 후 막노동과 대리운전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어요. 어릴 때 잠깐 배우 경험이 있었는데,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서 연극 <춘천 거기>에 참여했구요. 처음엔 '한 번만 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반응이 좋아 방송이나 영화 제안도 많이 들어왔어요. 그럼에도 극단의 차기작에 집중하기로 했죠. 지금 몸 담고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어요.
연기를 할 때마다 '앞으로도 배우를 계속하겠다, 잘 될 거다' 같은 기대는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었어요. 제 기준에서 이렇게 훌륭한 예술가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언제든 다시 생계를 위해 일터로 돌아가야 할 처지였으니까요.
그래서 매 순간이 마지막 무대일 수도 있다는 심정으로, 제 나름대로 온 힘을 다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한 번만 해보자' 했던 것이 또 한 번으로 이어졌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더 간절하게 매달리게 된 거죠."
- 배우로 주목받던 시기에 극단 <웃어> 대표 겸 연출이 된 계기는 뭐야?
"원래 연출 생각은 없었어요. 시장에서 일하며 모은 500만 원으로 해외여행을 가려던 참이었는데, 연출가 김수희 누나가 극장 대관이 비었다며 주변에 알아봐 달라 했어요. 예전 극단에서 늘 스태프만 하고 배우 기회가 없었던 동생들이 떠올라 '제가 할게요' 했죠.
대관을 잡고 직접 대본을 써서 무대에 올린 게 첫 작품 <아가>(2013)였고, 다음 해 <가족입니다>(2014)로 제목을 바꿔 앙코르 공연을 했어요. '즐겁게 하루만 하자' 했는데, 동생들이 '한 번만 더 하자' 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 극단 <웃어>의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된 거였지?
"<아가> 공연 이후 함께한 배우들과 뜻을 모아 '극단 웃어'를 창단하게 되었는데요. 제 첫 극단이자 스승이신 김한길 연출님 딸 이름이 '우서'였어요. 그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웃어'라는 이름이 떠올랐고, 무엇보다 연극을 통해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짓게 됐어요."
- 그래도 웃을 일만은 없었을 텐데... 십 년 넘게 극단을 이끌어 올 수 있었던 힘은 뭐였어?
"같이 하는 사람들이죠. 연출하면 권력을 가질 기회가 많아요. 그래서 저는 반대로 늘 앞장서서 허드렛일을 했어요. 제일 먼저 오고, 제일 늦게 나가고, 밥도 같이 해 먹고. 동료들도 저를 연출이 아니라 '대장'이라 불러요. 대장은 앞장서서 일하는 사람이라더군요. 그래서 '그건 할래!' 했죠."
- 대화 속에서 동료들 얘기가 끊이질 않네. 너한테 그들은 어떤 존재야?
"외톨이 기질이 있던 제가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준 건 동료들 덕분이에요. 그들이 없었다면 저는 이 바닥에 없었을 거예요. 예전에 민감하고 예민했던 태도도 많이 달라졌어요. 동료들이 옆에서 지켜보며 착하고 선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죠. 진짜 저를 바꾸고 만들어준 사람들이에요.
힘들 때도 늘 옆에서 함께해 주었고, 끝까지 이 길을 포기하지 않도록 북돋아 준 이로운 존재들이죠. 스승과 같아요. 연출로서의 최종 꿈도 결국 이들과 연결되어 있어요. 함께하는 동료들이 오래도록 연기할 수 있는 거, 그게 제 바람이죠."
진심으로 산다는 것

▲배우 김진욱
이단비 @if_august
- 나도 너에게 잊히지 않는 고마운 기억이 있어. 오래전에 영화 촬영 때 하루 현장 매니저를 부탁했는데, 네가 아버지 차를 깨끗이 세차해 오고, 말끔한 차림으로 나타났잖아. '누나 기 살려준다'고. 게다가 촬영 중 폭설로 한밤중에 모두 고립됐는데, 처음 보는 배우들까지 차에 가득 태워 안전하게 집까지 데려다줬지. 한동안 소식이 뜸했을 때였는데도 아버지 장례식에 와서 별말 없이 내 손을 꼭 잡아줬을 때, "이 친구는 진심을 품고 사는구나"라고 느꼈어. 그래서 사람들이 널 진정으로 잘되길 바라는 것 같아.
"인간관계는 결국 '따뜻한 답례'인 것 같아요. 저도 성격이 꽤 불편한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몇 안 되는 좋은 선배님들이 저를 웃어주고 편하게 대해주셨어요. 그게 너무 감사해서, 저도 제가 해줄 수 있는 걸로 보답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 요즘 네 머릿속을 가장 맴도는 생각은 뭐야?
"강릉국제공연예술페스티벌 공연이 취소됐지만 정산을 아직 다 받지 못한 상태예요. 우선, 동료들 출연료 다 챙겨주는 거요. 제 것은 없어도 돼요. 선배님들 잔금이 조금 남았고, 후배들과 스태프들에게는 전부 지급했어요. 또 하나는 새로 들어간 회사와 아름답게 잘 지내는 거요. 이번 공연 끝날 때까지도, 진짜 아무 말씀 없이 편의를 봐주며 기다려 주셨어요. 그리고 아버지랑 밥 자주 먹는 것. 같이 살지는 못해도 매일 연락드리고 있어요. 직접 찾아뵙는 게 제일 좋으니까, 앞으로 더 자주 함께 식사하려고요. 내심 기다리셨을 텐데, 이제 배우로 다시 활동하겠다는 말씀도 드려볼까 싶어요."
- 앞으로의 계획은?
"배우로서는 무대와 카메라를 넘나들며 제 한계를 시험할 수 있는 도전을 해보고 싶어요. 또 연출로서 제 시선과 해석을 담은 작품을 준비해 가며 동료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작업들을 해보고 싶고요. 아직 부족하지만 극단 워크숍, 신작 등을 한 걸음씩 준비해 나가고 있어요"
- 제일 궁금한 게 있어. 너처럼 처음부터 의심 없이 온몸으로 뛰어드는 진심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저도 잘 모르죠.(웃음) 다만 늘 저를 믿어주는 내 사람들만 봐요. 나를 좋아해 주는 한 명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요. 사람들은 자꾸 더 높이, 더 넓게 바라보지만, 저는 옆을 봐요. 동료들과 같이 밥 먹는 게 세상에서 제일 값진 행복이라 느껴요. 어른인 척, 아는 척, 멋있는 척 안 하고, 모르겠으면 '도와줘!' 하면서. 내가 '척 안 하면 진심'인 것 같아요."
세상의 인정과는 무관하게, 묵묵히 제 길을 걷는 사람이 있다. 하루하루 자기답게 살아낸 시간이 모이면, 언젠가 세월이 수고의 삶을 세상 앞에 드러내 놓는다. 삶은 말보다 걸음으로 보여준다. 오늘 그 길 위에서 배움을 얻는다. 끝까지 자기답게 살아내는 힘이야말로 가장 큰 진심이라는 것을.
그런 울림을 전하는 사람이 배우 김진욱이다. 대화 끝 무렵, 그가 말없이 내 손을 잡아주었다. 예전처럼 진심이 담긴 따스한 손길. 그 온기는 헤어진 뒤에도 한동안 손안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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