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노란봉투법)'이 통과되자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과 조합원, 진보당 당원들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셋째, 기업전략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이 교수는 기고문에서 기업의 4가지 옵션(무대응, 자본 파업, 응답, 자본 탈출)을 제시한 뒤 자본 탈출이 유력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 중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 무대응이나 자폭과 같은 자본 파업은 애초 선택지라고 보기 어렵다. 남은 것은 응답하는 것과 한국을 탈출하는 것인데 이 교수가 예측한 자본 탈출은 과도한 주장에 가깝다.
기업이 노란봉투법 때문에 한국 생산을 포기하는 것은 현실화되기 어렵다. 해외로 생산 공장을 옮기면 현지 국가의 기술 수준, 제도와 문화적 차이, 법적 위험 등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예를 들어 한국의 조선업은 해외에 일부 공장을 두고 있지만 수주 물량을 대체 생산할 만한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또한 순전히 인건비 때문에 공장을 옮겨야 할 기업이라면 이미 중국, 베트남 등으로 생산을 옮긴 상태이다. 단지 싼 인건비에 하청을 쓸 수 있다는 이유로 한국에 남아 있는 기업이 얼마나 많을지 의문이다.
기업의 총이윤 중 해외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면서 지금은 해외 생산을 할 수 있으면 여러 제약조건에도 불구하고 진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이 국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은 반드시 부정적이지만 않다. 더 넓은 시장을 향해 기업의 해외직접투자를 독려하는 것이 나은 이유다.
아마도 다수의 기업은 노란봉투법을 불가피한 현실로 수용해 대응하는 선택을 취할 것이다. 이미 노동조합만이 아니라 여러 기업이 각각의 처지에서 교섭 방식 등에 대해 내부 토론을 시작한 상황이다. 고용노동부의 매뉴얼에 대해서도 높은 관심을 보이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넷째, 이 교수는 노란봉투법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정규직 노동자가 양보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원·하청 관계의 최대 수혜자인 기업이므로, 기업이 먼저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의 일시적 부담 증가로 정규직 노조가 자발적으로 양보를 한다면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율적 선택이지 강요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더구나 대기업의 잘못된 경영 판단을 노동조합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며, 오히려 노·노 갈등을 부추길 위험이 크다.
노란봉투법, 문재인 정부 최저임금 인상 정책으로 만들려는 보수언론
고용형태공시제에 따르면, 우리나라 300인 이상 대기업은 전체 인력의 17.7%를 하청으로 쓰고 있다. 하청의 전반적인 노동조건은 원청 대비 60% 수준에 불과하다. 하청노동자는 임금 등 처우를 개선할 수단이 없었고 힘겹게 노동조합을 만들 경우 원청은 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원청은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는 하청방식의 생산을 늘려왔다. 원청은 이 과정에서 절감한 비용으로 정규직 직원들에게 많은 보상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정규직 노조에 양보와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기업이 져야 할 책임을 정규직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기 때문이다.
몇몇 보수 언론과 경제신문은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 최저임금 인상이 정부를 곤란하게 몰아갔던 것처럼, 노란봉투법도 같은 길을 가길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란봉투법은 진짜 사용자를 사용자라고 말하지 못하고 40년 동안 버텨온 노동자들에게 주는 작은 기회이자 선물이다. 다른 누군가의 몫을 빼앗아 자신만의 이익을 키우는 방식으로는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노란봉투법이 개정된 지금,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두고 소모적인 반대를 반복하기보다 대안을 찾는 데 집중해야 한다. 원청은 하청노조와의 교섭 방식 등을 고민하거나 이번 기회에 사내하청 생산 방식을 자회사 등으로 내부화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남은 6개월의 유예기간 동안 구체적인 지배·개입 기준과 교섭 단위 분리, 교섭 방식 등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마련해 불필요한 노사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 노동조합 또한 노란봉투법을 근거로 사용자를 일방적으로 압박하기보다 기업의 일시적 부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정규직 노동자들도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하청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대해 열린 태도를 갖고,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노란봉투법은 노사정이 자율적 노력을 통해 더 나은 대한민국으로 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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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 정흥준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소셜 코리아> 편집위원입니다. 학교에서 노사관계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주로 강의하며 간접고용 비정규직과 노동조합 등에 관해 연구합니다. 주요 저서로 <오줌인형 잡기> 등 6편의 편저가 있으며 국내외에서 50여 편의 논문을 출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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