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 쪽방촌 주민들과 동자동사랑방 활동가들이 지난 2021년 2월18일 서울 용산구 새꿈어린이공원에서 쪽방촌 공공주택사업 실행 촉구 및 쪽방주민 의견서 제출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이희훈
아마도 선정 기준을 완화하고 신청 절차를 최소화하자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매우 지난했고, 그나마 제도 개혁을 계기로 조금씩 개선되어 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신청주의는 줄어들고 복지급여는 자동지급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복지급여 자동지급을 위해서는 전 국민 소득재산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급대상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복잡한 선정 기준 표준화, 신청서류 간소화, 신청절차 단축 등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과정은 복지 사각지대 규모를 추정해, 사각지대의 단계적 해소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사각지대 규모를 기존의 설문조사식 데이터로 추정해 보면, 현재의 선정 기준을 적용할 경우 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 사각지대는 현 수급자의 약 20.1%(30.5만 명)다. 즉, 생계급여를 자동지급으로 전환할 경우 보호할 수 있는 빈곤층 규모가 30.5만 명에 이른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추정방식은 행정데이터를 활용한 추정방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확도가 떨어진다.
우리도 북유럽 국가들처럼 법률로 국세청 소득재산자료를 사회보장기관과 연계해 지원 대상을 좀더 명확하게 표적화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개인정보 제공동의와 같은 별도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복지급여 수급자격 판정과 급여 자동지급을 할 수 있다. 이미 지자체·복지부 등 공공기관들은 주민등록번호를 기반으로 협업 구조를 구축했기 때문에, 데이터 연계 방식은 한국에도 어려운 시도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보장기본법이나 사회보장급여법 등의 개정이 필요하다. 기존 복지멤버십 제도(보건복지부와 사회보장정보원이 운영하는 '개인 맞춤형 복지 안내 서비스'로, 국민의 소득·재산·가구 특성 등의 정보를 분석해 수혜자가 받을 수 있는 복지 서비스를 자동으로 추천)를 보완하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정확도가 높은 국세청 자료를 토대로 빈곤층이나 취약계층 대상 복지급여를 자동지급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다.
위기가구 보호를 위한 보완 조치
선정 기준 완화와 복지급여 자동지급은 복지 사각지대 해소나 위기가구 보호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예컨대, 자살이나 사망사고에 처한 사람 대부분이 사전에 주민센터를 방문했지만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들 중 대다수는 선정기준을 충족하지 못했고, 일부는 낙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급여 신청을 포기했다. 또 일부는 복지급여 수급까지 60일 이상의 대기기간을 버틸 수 없을 정도로 긴급했다. 따라서 선정 기준 완화와 자동지급 효과가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보완 조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복잡한 신청서류를 간소화하고, 수치심이나 낙인감을 유발할 수 있는 제출서류부터 없애야 한다. 부정수급에 대한 우려로 여러 규제가 추가되어 온 점을 고려해, 향후 선정 기준을 추가할 경우 공정성·차별 여부·신청자의 인권 보호 등 윤리성 문제도 검토해야 한다.
복지급여 신청부터 수급까지의 시간 단축도 시급한 문제다. 절박할수록 수급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오래 버티기 힘들다. 자동지급이 오히려 대기시간을 늘릴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①신청 ②접수·검토 ③소득재산조사 ④심사·결정 ⑤통보 ⑥지급신청 ⑦사후관리로 구성된 행정절차 중 ①~⑤단계를 대폭 줄이고, 소득조사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 이는 정책의지만 있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렇게 30일~60일로 규정된 대기기간을 2주 내외로 줄일 수 있다.
복지담당자의 재량권을 강화해 선정 기준을 초과해도 상황이 심각할 경우엔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도 재량권은 있지만 감사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복지담당자로서는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재량권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이런 상황을 대비한 것이 긴급복지지원제도다.
AI 활용해 복지담당자의 재량권 강화해야
위기가구 보호에 있어 복지담당자의 재량권 보장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재량권의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그것을 행사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우선되어야 한다. 실무담당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은 위험하다.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이나 통합사례관리사(복지·보건·주거·정신건강 등 다양한 영역의 문제를 동시에 겪는 개인이나 가족을 대상으로, 여러 복지서비스와 지역사회 자원을 종합적으로 연계해 맞춤형 지원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전문 복지 실무자)가 닫힌 문을 두드리며 위기가구를 발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이 뒤따른다. 무엇보다 많은 사회복지전문인력이 서류 업무에 매몰되어 본연의 역할을 하기 힘든 상황을 바꾸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어렵다.
지금까지는 단전단수나 체납 자료 등을 활용해 잠재적 위기가구를 발굴하고, 그 명단을 지자체에 제공해 왔다. 하지만 이 방식은 발굴 성과가 낮고, 적시 발굴이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분석에 활용된 자료가 수개월 전이라 개입이 늦어지는 문제도 발생한다. 데이터가 축적되고 발굴 모형이 정교해지면서 발굴 성과가 높아지고 있지만, 적시성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하기 쉽지 않다.
위기가구나 복지사각지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위기에 처한 사람들은 어딘가에 자신이 처한 절박한 상황의 흔적을 남기는데, 주민센터 상담 기록이 그것이다. 이 기록 속에는 이들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보여주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AI를 활용해 실시간 상담기록을 분석하면 적시에 위기가구를 판별하고 개입할 수 있다. 이렇게 측정된 위험도는 복지담당자들이 재량권을 행사할 때 근거자료나 보완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복지급여 자동지급을 위한 정보시스템 구축
복지급여 자동지급을 위해서는 공공데이터 연계와 정보시스템 개발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과거 시행착오에서 얻은 교훈을 살펴봐야 한다. 예컨대 2023년 국민편의와 행정효율을 명분으로 차세대 사회보장 정보시스템을 개발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국민과 공무원 그리고 관계자들에게 고통을 안겼던 경험이 있다.
무엇보다, 정보시스템 개발은 초기 설계의 무결성(데이터 구조, 작업 흐름, 기능, 규칙 등이 논리적으로 잘 짜여 있어 오류나 모순이 없어야 함)이 가장 중요하다. 둘째, 거대 정보시스템을 오류 없이 개통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오류발생의 위험은 언제나 있다. 충분한 시험 가동과 철저한 위기관리대책이 중요한 이유다. 셋째, 정보시스템 개발은 전문기관에게 권한을 주고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넷째, 문제해결 과정에서 비전문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 특히 문제발생시 급한 마음에 더 많은 개발자를 투입하려는 무리한 시도는 문제해결을 지연시킬 뿐이다. 정보시스템 개발의 격언이 된 브룩스의 법칙(Brooks' Law, 지체되는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에 인력을 추가하면 프로젝트의 완성 시점이 오히려 더 늦어진다는 것을 뜻함)을 기억해야 한다.
끝으로 기존의 복잡한 복지제도들을 정비해 시스템 개발의 난이도를 낮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2025년 9월 현재 '복지로'(대한민국의 대표 사회복지 정보 포털 사이트)에 등록된 복지급여와 서비스는 중앙정부 부처 소관 사업만 368종, 지방자치단체 소관 사업 4553종을 더하면 4921종에 이른다. 이 사업들 중 대다수는 연 1회 지원사업이나 소수를 대상으로 하는 소액사업이며, 유사사업 또한 적지 않다. 이 많은 사업을 그대로 정보시스템에 담을 경우, 과부하로 인해 복지급여 자동지급은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 유사중복사업을 통합하고, 선정 기준과 급여기준을 표준화·간소화하는 재구조화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탈신청주의와 소득기반 사회보험 등 보편복지 패러다임의 전환
▲2025 산재사망 배달노동자 추모 행진에 참가한 라이더유니온 조합원들의 모습. 과거엔 주 15시간 이상 ‘근로자’로 간주돼야 4대보험 가입이 가능했지만, 플랫폼 노동은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고 일감이 불규칙해 사각지대에 놓일 위험성이 크다. 올해부터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 등 비정형 고용자도 소득에 기반해 4대 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개편된다. 탈신청주의의 본격화는 소득기반 사회보험 등 보편복지시대를 앞당길 수 있다.
연합뉴스
복지 신청주의의 폐지를 둘러싼 논쟁은 한계 보다 잠재력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 수십년간 주장해 왔던 선정 기준 완화는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복잡한 서류와 신청절차에 대한 간소화도 필요하다. 하지만 탈신청주의가 복지급여의 자동지급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파장 또한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소득기반 사회보험 등 보편복지를 위한 패러다임 전환 전략의 틀 속에서 이 논의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복지사각지대나 위기가구 보호 등 절박한 가구에 대한 대응은 여전히 탈신청주의를 통해서 해결하기 어렵다. 복지급여 자동지급 논의 과정에서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번 논의를 계기로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며 성공적으로 보편복지의 시대로 전화하길 기대한다.
▲노대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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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 노대명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며 <소셜 코리아> 자문위원입니다. 한국사회보장정보원 원장과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을 역임했습니다. 한국 사회보장체계의 혁신과 사회보장 분야의 디지털 전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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