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9.16 16:11최종 업데이트 25.09.1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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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3일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이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기획위원회 국민보고대회에서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재명 정부가 국정목표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정부는 '인구위기 극복을 위한 대전환'(국정목표4)을 내세우며, 아이 키우기 좋은 출산·육아 환경 조성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난임'이다. 흔히 '선물처럼 찾아왔다'거나 '황새가 물어다줬다'는 표현은 임신의 예측 불확실성을 은유한다. 이미 여러 정부에선 최신 의료 기술을 활용해 이 불확실성을 극복하자며 '난임치료'를 지원해 왔다. 덕분에 과거 '임신이 불가능함'을 단정하는 '불임'을 대신해 '임신이 어려운 상태'를 의미하는 '난임'이란 용어가 자리 잡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치료받을 자격을 충족하지 못했거나 지원 범위를 초과해, 혹은 심신을 깎는 노력에도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난임치료'에서 한 발 나아가 '난임예방'을 지원하겠다는 정책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현대판 '삼신할배' 원장을 찾아 새벽이슬 맞으며 대기표 받던 이들에겐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임신이 어려운 상태'를 어떻게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일까.

이제까지 정부는 '난임치료'라는 명목하에 '임신에 어려움을 겪는 난임부부'가 '내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해왔다. 정자가 난자를 찾아가는 '생명의 신비'에 개입해 수정과 착상의 성공률을 높여주는 '인공생식술', '보조생식술'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 시작은 '제1회 저출생 고령사회 기본계획'이 발표된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는 '불임부부지원사업'이란 이름으로 체외수정 시술로 발생한 비용을 지원했다. 2010년에 '난임부부지원사업'으로 용어가 변경된 이 사업은 이후 2022년 지방이양 전까지 거의 매년 지원대상과 지원범위를 확대했다.

너무나도 관대한 난임 지원

이후로도 기존 보건의료나 사회복지 영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전폭적인 확대가 이어졌다. 2016년에는 소득 기준에 따라 지원대상을 제한하는 대신 소득수준별로 지원범위를 차등화해 보편성을 강화했다. 이듬해인 2017년에 체외수정과 인공수정이 국민건강보험의 급여 항목에 포함되자, 정부는 조세를 투입해야 하는 사업을 폐지하는 대신 본인 부담을 완화할 수 있도록 지원대상과 지원범위를 조정했다.

2019년에는 건강보험의 기준이 변경되어, 혼인신고 여부를 떠나 사실상의 혼인 관계에 있다면 보조생식술에 대한 급여를 적용받을 수 있게 됐다. 난임부부지원사업은 이처럼 연령, 소득수준, 혼인 관계의 경계를 허물고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가능한 많은 지원을 아낌없이 제공했다. 이토록 성심성의를 다한 제도는 알면 알수록 입맛이 쓰다.

난임부부를 지원하는 수단으로 선택된 보조생식술은 기본적으로 수정과 착상에 개입한다. 사용되는 것은 법률혼이거나 혹은 사실혼 관계에 있는 이성의 난자와 정자 그리고 여성의 자궁이다. 해외와 달리 한국은 이성 관계가 아닌 제3자의 난자 및 정자의 공여나 대리모를 허용하지 않는다. 보조생식술은 '핏줄은 못 끊는다'는 한국인의 정서를 의학기술로 현현하는 과정이다. 이제 이성 간 사랑의 결실은 결혼식장에서 결혼반지를 교환하는 순간만큼이나, 착상한 수정란이 유전적 변형 없이 세포분열에 성공한 순간으로 관찰되곤 한다.

2025 영구 불임 예상 난자·정자 냉동 지원사업을 소개하는 보건복지부 카드뉴스보건복지부

합계출산율 1 미만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기 위한 국가적 지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 한 달 전쯤, 보건복지부는 '영구 불임 예상 난자·정자 냉동 지원사업'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저출생 추세 반전'이나 '건강한 임신출산 환경 조성' 같은 표현이 익숙하다. 얼핏 보면 인공수정과 체외수정에 대한 비용을 지원하는 난임부부지원사업의 후속편 같기도 하다.

후속편의 흥행 공식을 따르듯, 더 과감하게 연령, 소득, 결혼 상태의 제약을 완전히 없앴다. 사업의 대상자는 '의학적 사유로 인하여 영구 불임이 예상되는 남녀'다. 모자보건법 시행령 제14조로 규정하는 의학적 사유란 생식기를 절제 및 적출하는 수술을 받거나, 항암치료 및 염색체 이상으로 인해 생식기의 기능이 저하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생식세포를 보존하면, 모종의 이유로 생식기나 생식능력을 상실하더라도 훗날 사랑하는 파트너와 가족을 도모할 수 있다.

보조생식술 지원사업이 도입되어 확대되어 온 일련의 과정을 생각해 보면, 머지않아 사업대상자를 '건강한 가임기 남녀'로 완화하거나, 1년에 N번으로 지원범위를 확대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입시와 취업, 재산형성과 경력개발에 치이는 삶을 살아온 한국인들은 '나를 닮은 나의 아이'를 위해 가장 젊고 건강한 시절의 생식세포를 보존하기를 선택할 수도 있겠다. 번식이 인간의 본성이어서가 아니라, 능력제일주의인 이 사회에서 혹시라도, 조금이라도, 본인의 세포적 노화로 인해 아이의 신체적, 정신적 발달에 문제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일 테다.

난임 지원의 윤리적 딜레마

우리는 의학적 사유든, 비의학적 사유든, 생식세포 동결을 지원하는 사업이 내포한 임상적, 경제적, 윤리적 쟁점을 더욱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개인이 지불한 비용의 절반을 지원하는 현재의 사업 구조는 동결 후 보관과 그 이후 활용에 대해선 보장하지 않는다. 인구 고령화에 힘입어 우후죽순 생겨났던 실버타운마저 파산을 면치 못했다. 2014년 전체 난임시술기관 292곳 중 79곳(27.6%)에서 인공수정을 통한 임신율이 0%에 달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난임시술의 질관리와 함께 '정부지정 난임 시술기관'이 도입되었다.

하지만 시술기관에 대한 규정이 별도로 없다면, 동결한 생식세포가 5년, 10년 이상 같은 의료기관에 안전하게 보관될지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 것인가. 미래를 상품화해 세간의 관심과 투자금을 흡수한 다음 나 몰라라 하는 행태가 반복되진 않을까 불안함이 피어오른다.

둘째, 보조생식술과 마찬가지로 동결을 위해선 인위적으로 생식세포를 채취해야 한다. 여성들은 과배란 유도제를 주사하고 호르몬 불균형을 포함한 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 즉, 체외수정이나 인공수정을 곧장 진행하지 않을 뿐, 보조생식술을 준비하는 과정과 일치한다.

그럼에도 이 사업은 보조생식술을 지원하는 기존 난임부부지원사업과 마찬가지로, 생식세포를 떼어낸 이후 여성의 건강에 대해선 별도의 언급이 없다. 언제가 될지 모를, 머지않은 시기일 수도,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임신을 위해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부작용을 오롯이 감수하는 것이 건강한 임신출산 환경일까.

셋째, 현재 의학적 사유로 인정하는 범위에는 '자궁적출술'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자궁부속기, 부속기종양, 난소, 하물며 고환과 부고환을 떼어내야 한다면 가임력을 보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조차 자궁을 떼어낸 여성은 지원하지 않겠다고 한다. '임신할 수 없는 몸'이라서 일까. 그렇다면 생식기와 생식능력을 상실하기 전 난자와 정자를 동결하는데 성공한 사람들은 미래에 누구의 몸을 빌려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가임력이란 무엇을 의미하며, 누구를 위해 보존되어야만 하는지 묻고 싶다.

일 가정 양립이란 구호조차 일과 가정 모두 남부럽지 않게 성취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된 지 오래다. 젊음을 연료 삼아 삶을 연명하는 사람들에게 난자와 정자만 얼려두면 연애나 결혼은 원하는 만큼 미룰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정부의 제안은 과연 저출생 추세를 반전시킬 수 있을까.

해외에서도 난자 동결은 논쟁적 주제다. 생식을 다루는 유럽과 미국의 학회조차 난자 동결은 오랫동안 "실험적"인 기술이었다. 지나치게 기술의존적인 방식으로 생명을 통제하려는 시도라는 우려부터 장기적인 영향과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공상과학 영화에서 인간의 탐욕을 상징하는 장치로 심심찮게 등장하던 기술인만큼 상업적으로 악용될 위험도 컸다. 생명경시, 낮은 비용효과성, 의료상업화의 문제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35세 생일이 ‘출산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시대, 값비싼 난자 냉동 시술을 마음의 평화로 포장해 권유하는 현실을 풍자한 단편영화 <프리즈>Maya Albanese

'다음' 난임 지원

그럼에도 미국생식의학회와 유럽생식및발생학회는 차츰 태도를 선회해왔다. 질병이나 치료과정에서 가임력을 상실할 경우 제한적으로 의료적 필요를 인정하는 것에서 벗어나 계획적, 선제적 조치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장 보조생식술에서 냉동난자나 동결배아를 활용하는 선택지가 가능해졌고, 여성들을 '생물학적 시계'나 재정 및 정서 상태를 포함한 사회적 압박에서 벗어나게 해줄 가능성처럼 홍보되었다.

하지만 안전성이나 효과성이 확보되고, 비용의 부담이 낮아진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미국과 유럽 학회가 기술을 인정해 지침을 개정하면서도 유전적 부모 역할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성소수자나 다양한 가족 형태가 늘어나는 사회에서 난자 동결이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해 불평등과 차별을 해소하는 도구로 활용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한국에서 의학적 사유가 아닌 사회적, 계획적, 선제적 목적의 난자 동결이 허용되기 위해선, 우리 사회가 어떤 가족과 어떤 생식의 형태를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숙제를 완수해야 한다.

지난 2021년 당시 이재명 후보는 난임시술을 '끝을 알 수 없는 긴 터널'로 비유하며 난임부부의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여러 공약을 제시했었다. 보조생식술을 무한리필식으로 지원범위를 확대하는 대신 '난임부부를 위한 심리상담'을 국정과제에 포함한 진정성을 의심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바라건대, 누구라도, 어떤 형태라도, 가족을 형성해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가파른 인구절벽에서 추락하지 않을 발판이 되어주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Health Socialist Club 블로그에도 실립니다.인용시 작성자명을 Health Socialist Club으로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시: Health Socialist Club(2025). 문의는 healthsocialistclu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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