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7일(현지시간)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에게 체포된 한 남성이 뉴욕의 연방청사 내 이민법원 앞에서 수갑을 찬 채 이민 서류를 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경계선을 넘은 이들의 행위를 '자발적 선택'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진정한 선택이었을까. '불법'과 '자유'만큼이나, '선택'이라는 말 또한 언어의 착시를 일으킨다. 그것은 종종 자율성과 강제를 구분하지 못한 채 남용되는 표현이다.
지구 위의 많은 이들이 경제적 생존, 자녀 교육, 정치적 불안정 같은 비자발적 요인에 의해 떠나고 있을 뿐, 이는 결코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다. 이민도 결단이 아니라 종종 탈출이다. '가고 싶다'는 욕망은 사실상 '떠날 수밖에 없다'는 강제가 위장된 표현일뿐이며, 이는 미국 중심의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가 만든 불균형 구조가 낳은 결과이다.
여기에 '절차가 있다'는 항변은 또 다른 차원의 허구를 동반한다. 비자가 존재하고 규정된 법과 행정 절차가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려는 기제일 뿐이다. 문제는 그 절차가 누구에게 열려 있고 누구에게 닫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 절차는 경제력, 교육 수준, 정치적 서사와 같은 필터를 통해 특정 집단만을 통과시킨다. 누군가에게 이민 심사는 수년이 걸리고 누군가에게는 하루면 족하다. '경제적으로 충분한가', '정치적으로 박해받았는가'라는 질문은 곧 누가 합법적인 인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를 선별하는 기제로 기능한다.
자유주의는 표면적으로 자율적 선택과 절차적 공정성을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본과 인간을 구분하는 이중윤리가 자리 잡고 있다. 자본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감세와 특혜를 받는 환영의 대상이지만, 인간은 동일한 자본을 수행할 능력이 있음에도 합법성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추방당한다.
자유는 선택된 이들만의 권리로 제한되며, 그것이 가능하도록 만든 제도적 장치는 이데올로기적 폭력으로 작동한다. 결국 이는 자본의 자유를 보호하면서 인간의 자유는 박탈하는, 구조화된 불평등의 언어일 뿐이다.
조지아 사태와 국경을 넘는 이주민의 현실은 겉보기엔 전혀 다른 일처럼 보인다. 하나는 고숙련 기술자에게 적용된 '합법'의 위반이고, 다른 하나는 생존을 위한 '불법'의 선택이다. 그러나 이 둘은 같은 구조 아래 있다. 바로 자본의 이해에 따라 '합법'과 '불법'이라는 이중 규율이 임의로 적용된다는 점에서다.
이 구조는 능력이나 사정보다 권력의 선 긋기에 따라 인간을 구분한다. 필요했던 기술자도, 떠날 수밖에 없던 이들도 정치적 계산 앞에선 하루아침에 위법자가 된다. 누가 올 수 있고, 누가 쫓겨나는가는 법이 아니라 권력이 정한다.
그 결과, 기술자와 난민은 같은 낙인을 공유한다. '불법'이라는 말은 그들이 가진 자격이 아니라, 권력이 그어놓은 선을 넘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자본은 장벽 없는 자유를 누리지만, 인간은 자본이 설정한 경로와 신분이라는 틀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 이 체제는 자본의 무제한 자유를 보장하는 대신, 인간의 자유는 점점 더 축소되고 지워진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