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9.11 07:08최종 업데이트 25.09.11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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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부동산 정책을 평가할 때는 의사의 치료법을 예로 드는 경우가 많았다. 돌팔이 의사는 환자에게 진통제나 해열제를 처방하고 말지만, 진짜 의사는 질병의 근본 원인을 파악해 제거하고자 노력한다. 다른 경제정책도 마찬가지이지만, 부동산 정책은 특히 이 비유가 적절한 때가 많았다.

1970년대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10~15년을 주기로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었다. 역대 정부는 대개 그 원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부동산값 폭등기에는 투기 억제 효과가 있어 보이는 정책을 쏟아내고, 시장 침체 조짐이 보일 때는 태세를 전환해 부양책을 마구 쏟아냈다.

그러니 문제를 초래하는 근본 원인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반백 년이 지났고,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부동산 투기 광풍을 당연한 듯 여기며 살아왔다. 노태우 정부가 토지공개념 제도를 시행하고 노무현 정부가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하는 등 근본적 해결을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노력이 잘 뿌리를 내려 지속적 제도로 정착되지는 못했다.

부동산 투기 근절을 목표로 정책 시행해야

고강도 대출규제를 담은 6·27 부동산 대책 영향으로 8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주택사업 경기 전망이 크게 어두워진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산업연구원은 6·27 대책 시행 이후인 지난달 16∼25일 주택사업자들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8월 주택사업경기 전망지수가 전월 대비 24.0포인트 하락한 76.0으로 조사됐다고 8월 19일 밝혔다. 사진은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모습.연합뉴스

부동산 투기가 민첩한 소수에게 이익을 안겨 주는 것만으로 끝났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는 투기꾼을 제외한 다수 국민에게 심각한 해악을 끼쳤다. 계층 간 불평등과 지역 간 양극화는 대표적인 사례다. 부동산 시장의 심한 변동으로 인한 거시경제의 불안정성 증폭, 경제 내 불로소득 파이프라인의 팽창으로 인한 경제 활력 저하도 마찬가지다.

집값·전셋값 상승으로 인한 주거문제 악화와 부동산 불로소득을 탐하는 심리의 확산은 사회의 기초를 동요시킬 정도로 심각한 영향을 끼쳐 왔다. 부동산 투기가 초래하는 해악은 결혼 기피와 출산율 저하로 집약되어 표출되었고, 이는 대한민국의 장기 지속성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제대로 된 부동산 정책이라면 투기를 효과적으로 근절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또한, 부동산 투기로 피해를 당하는 무주택자와 청년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야 한다.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을 비유하자면, 어떤 건물의 바닥에 온통 휘발유가 뿌려져 있는 상태다. 언제든 불티 하나만 튀어도 건물 전체가 화염에 휩싸일 수 있다. 여기서 '휘발유'란 불로소득 획득 가능성이고, '불티'란 금리 인하라든가 새로운 개발 계획 발표 같은 것이다.

투기를 근절하려면 우선 바닥의 휘발유를 제거해야만 한다. 가장 효과적인 정책 수단은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하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환수할 뿐만 아니라 부동산 보유 비용을 높여 투기 심리를 꺾는 효과가 있다. 대출 규제를 비롯한 각종 부동산 규제는 시장 참가자들의 행위를 직접 규율하는 것이어서 부작용을 동반할 수밖에 없고 시장이 위급한 상황에 빠진 경우 잠시 일정한 효과를 발휘하지만, 건물 바닥의 휘발유를 제거하지는 못한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석 달여 만에 굵직한 부동산 대책 두 개를 발표했다. 6.27대책과 9.7대책이다. 전자는 6억 원 이상의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하는 내용의 대출 규제 정책이 중심이고, 후자는 주택공급 물량을 늘리면서 동시에 공급 속도를 높이는 내용의 공급 정책이 중심이다. 둘 다 서울과 수도권 시장을 대상으로 했다.

수요-공급의 틀로 얼핏 보면, 두 대책은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킬 것 같기도 하다. 강력한 대출 규제로 '영끌 수요'를 차단하는 동시에 수요에 비해 부족해 보이는 공급을 늘리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불이 붙고 있던 서울과 수도권의 부동산 시장은 6.27대책 발표 후 안정세로 돌아섰고, 즉각 효과를 발휘한 만큼 호평을 받았다(9.7대책이 시장에 미치는 효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두 대책은 수술 받아야 할 심각한 병에 걸려 열이 나는 환자에게 해열제를 처방하거나 치료 효과가 없는 엉터리 처방을 내린 것과 같다. 부동산 시장의 바닥에 뿌려진 휘발유를 제거하는 것과는 거의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규제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려면 아예 거래를 중단시키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 아닌가.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이런 방법을 쓸 수는 없다. 6.27대책처럼 강력한 대출 규제 정책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잠시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규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여기저기서 '선의의 피해자' 운운하며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고가 주택을 향하던 수요가 6억 원 대출로 구입가능한 주택 쪽으로 향하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주택공급 확대는 '면피용' 정책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9.7대책에 대해서는 좀 더 상세한 검토가 필요하다. 앞선 6.27대책은 과열된 수요를 잠재워 시장을 잠시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었지만, 9.7대책은 그 정도 효과라도 발휘할 수 있을까.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대책을 발표하면서 "주택시장의 근본적인 안정을 위해서는 충분한 주택이 공급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주택시장이 실수요 중심으로 움직이고 공급이 거기에 미달한다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시장에 투기수요가 잔뜩 끼어 있을 때는 완전히 틀린 말이 된다.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해서가 아니라, 공급에는 이상이 없음에도 갑자기 수요가 팽창해서 시장이 과열되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의 본질은 공급 부족이 아니라 수요 초과라고 해야 한다. 공급이 아닌 수요 쪽에 문제가 생겼으므로 거기에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옳다. 6.27대책이 즉시 효과를 발휘한 이유는 수요 쪽 대책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투기 수요를 잠재우려고 할 때 가장 효과적인 대책은 대출 규제와 불로소득 차단·환수 정책이다. 그 가운데 후자, 특히 부동산 보유세 강화 정책은 대출 규제처럼 부작용을 수반하지 않는 시장친화적 정책 수단이다. 양도소득세나 국지적 개발이익 환수 장치도 있지만 보유세만큼 우수하지는 않다.

불로소득 차단·환수 정책이 부동산 시장의 휘발유를 제거하는 작용을 한다는 것은 앞서 언급했다. 문제는 새 정부가 이 정책을 극도로 기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9.7대책 발표 직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구윤철 경제부총리가 "가능하면 세제를 부동산 시장에 쓰는 것은 신중하게 추진하려고 한다"고 말한 것을 보라).

잘 알다시피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은 과거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보유세 강화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 정권을 잃었다는 인식이 강하다. 가장 필요한 정책을 극구 회피하려다 보니 대신 내세우는 것이 공급 확대 정책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물론 과거 윤석열 정부가 대대적인 주택공급 확대 정책을 펼쳤음에도 3년간의 주택공급 물량은 매우 저조했다. 노무현 정부나 문재인 정부 때 공급에 전혀 문제가 없었음에도 오로지 투기수요 때문에 부동산값이 폭등했던 것과는 달리, 최근 다시 발생한 부동산값 상승에는 공급 부족도 한 가지 원인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가 주택공급 확대 정책을 발표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 정책이 주택시장의 근본적인 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인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9.7대책은 부동산 시장의 휘발유를 제거할 근본 정책을 회피할 목적으로 활용하는 면피용 정책의 성격이 강하다.

9.7대책의 문제점과 한계

6월 19일 이재명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하고 있다. 이날 이 대통령은 "LH가 택지를 조성해 민간에 매각하는 구조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연합뉴스

정책 내용에도 여기저기 문제점이 눈에 띈다. 첫째, 9.7대책의 제목은 '주택공급 확대 방안'인데 2030년까지 서울과 수도권에 연 27만 호, 총 135만 호를 신규 착공한다는 목표를 제시했으나 지방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역대 정부의 경우 주택공급 정책 발표 시에 이처럼 철저하게 지방을 외면했던 경우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문재인 정부 임기 중 마지막 주택공급 대책인 2.4대책에서 총공급 목표의 73.7%가 서울·수도권이라는 이유로 노골적인 '수도권 중심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재명 정부의 9.7대책은 서울·수도권이 총공급 목표의 100%를 차지하니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난감하다.

둘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확보한 공공택지를 민간 건설사에 매각하지 않고 직접 주택 건설 사업을 시행토록 함으로써 그동안 해온 땅장사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으나, 그것이 진정한 '땅장사 중단 선언'인지는 의심스럽다.

택지 상태에서 매각하건 주택을 지어서 매각하건, 땅을 파는 것은 매한가지다. 민간의 사유지를 강제수용하는 것은 고도의 공공성을 전제로 하는 행위이므로 원칙상 공공택지는 땅으로 팔든 집을 지어 팔든, 팔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새 정부는 땅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는 점이 스스로 뿌듯했는지 그 땅의 공공성을 끝까지 유지하는 일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공공택지를 국공유 상태로 유지하려면 LH가 공공분양주택 공급은 가급적 자제하고, 공공임대주택과 토지임대부 주택을 공급하는 일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토지임대부 주택이란 토지는 공공이 소유하고 건물은 민간에 분양하는 주택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상당한 재정이 투입되어야 하므로 당장 공공택지 전부를 그렇게 활용하기는 어려울지라도, 앞으로 두 유형의 공급 비중을 점진적으로 늘려가겠다는 방침만큼은 확고하게 천명해야 한다.

셋째, 정부가 추진하는 주택공급 정책은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주택을 공급할지 명확히 제시해야 함에도, 9.7대책은 목표 공급 물량을 조기에 신속하게 공급한다는 방침만 강조할 뿐이다. 주택 유형을 구분하지 않고 목표 물량을 공급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만을 제시했다는 것은 새 정부에 저소득층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약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넷째, 9.7대책에는 도심 내 유휴 국공유지와 노후 공공청사를 복합개발하고 30년이 지난 노후 공공임대주택을 고밀도로 재건축하겠다는 방안도 들어 있는데, 여기서도 이미 확보된 공공성조차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미 공공의 소유인 토지와 건물에서 새로 짓는 주택의 상당 부분을 분양해 버린다면, 국유재산을 계획 대비 초과처분했다고 비난받는 윤석열 정부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지 않겠는가.

윤석열 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야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 5년간(2023~2027년) 총 270만 호(서울·수도권 158만 호)를 목표로 하는 주택공급 청사진을 제시했다. 도심 공급 확대를 위해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획기적으로 완화하고, 안정된 공급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신규 공공택지를 확보하며, 행정 절차 개선으로 민간의 주택공급 역량을 강화한다는 내용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수요 억제 위주 부동산 정책을 완전히 뒤집어엎는다는 차원에서 마련한 대대적인 공급 확대 정책이었다.

그러나 수도권의 2022~2024년 평균 주택공급 실적은 10년 평균 대비 74.3%(인허가 기준)에 그칠 정도로 초라했다(착공 기준으로는 60.9%. 9.7대책 발표문에서 인용). 금리 인상, 공사비 상승, 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화, 건설 경기침체 등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나, 수도권에서 주택공급을 확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9.7대책이 부동산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나 부동산 시장의 안정은 제쳐두고라도, 공급 확대라는 자체 목표조차 달성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다음 단추들을 아무리 열심히 끼우더라도 옷매무새가 뒤틀릴 수밖에 없다. 9.7대책은 잘못 끼운 첫 단추에 해당한다. 지금 풀면 큰 피해 없이 새로 시작할 수 있다. 새로운 정책은 부동산 시장 바닥의 휘발유를 제거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한 부동산 정책 담당자들의 결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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