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가 만들어준 가지솥밥
이현우
우리 부부는 때론 함께, 때론 따로 식사한다. 평일에는 퇴근 시간이 맞지 않기도 하고 배우자가 저녁 식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혼자서 식사한다. 주로 집에서 조리한 현미잡곡밥과 비건 국, 반찬으로 저녁 식사를 해결한다. 주말에 배우자는 아침보다 더 맛난 잠을 자고 나는 주말 시간이 아까워서 일찍 일어나는 편이다. 보통 혼자서 비건 빵이나 비스킷, 과일, 두유, 커피로 아침 식사를 해결한다.
이쯤이면 우리 부부 사이를 의심하는 이가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주말 점심이나 저녁 끼니는 함께 한다. 외식할 때는 비건 전문 음식점에서 식사한다. 서울에 비건 전문 음식점이 많이 생겼다고 하지만, 어딜 선택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많은 수는 아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비건 중식점, 비건 태국음식점, 비건 양식점 등 가는 곳이 얼추 정해져 있다. 이 중에는 나보다 논비건 아내가 더 좋아하는 비건 전문 음식점도 있다.
때로는 비건 음식점은 아니지만 비덩주의 음식을 먹기도 한다. 예를 들면 동물성 육수가 들어간 칼국수나 두부 요리, 샤부샤부를 먹기도 한다.
논비건 아내가 차려주는 겉절이, 비건 지향인 남편이 만드는 제철나물
집에서 식사할 때는 한두 가지 비건 요리를 해서 간단하게 차려 먹는다. 비건이라고 하면 건강한 음식만 챙겨 먹을 것 같지 않은가. 물론 자연식물식이나 여러 채소를 활용한 아름답고 보기 좋은 비건 요리가 많다. 하지만 나는 게으른 비건이다. 요즘은 감사하게도 대기업에서 나온 비건 가공식품이 많다. 우리 집 냉동실에는 비건 두부텐더, 김말이, 비건만두, 비건콩치킨 등 이른바 '정크 비건 푸드'가 오분대기조로 대기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즐겨 먹는 비건 요리는 논비건 배우자가 요리해 주는 비건 두부조림이다. 두부 한 모와 양파를 잘 썰어 넣고 간장, 고춧가루, 설탕 등으로 만든 양념으로 조리한다. 단맛과 짠맛이 조화를 이룬 얼큰한 비건 두부조림은 그야말로 밥도둑이다. 밥 한 공기를 뚝딱할 수 있다. 일부러 두부조림 조리법은 배우지 않고 시도하지 않고 있다. 배우자의 비건 두부조림을 먹으며 애정을 느끼고 싶은 욕심 때문인가 보다.

▲배우자가 만든 비건 배추 겉절이
이현우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 집은 최근 들어 주말마다 겉절이 공장이 된다. 배우자가 나를 위해 비건 반찬을 만들겠다며 알배추를 사 와 매콤한 비건 배추겉절이를 담는다. 1~2주 정도는 충분히 먹는다. 비건 참치액을 사서 담겠다는 것을 결사반대했다. 지금 겉절이 맛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매일 배우자가 차려주는 비건 밥상의 호사만 누리는 건 아니다. 필자는 논비건 배우자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나물무침 전문가다. 집 근처 생협에 들러 제철나물이 보일 때마다 구매해서 반찬을 해두는 편이다. 매번 배우자가 나물무침을 먹을 때마다 나를 나물무침 전문가라고 부른다. 마트나 생협에 들를 때마다 제철나물을 유심히 보게 되는 이유 아닐까. 칭찬은 배우자를 춤추게 한다.
나물무침의 요리 비법은 '참기름'에 있다. 참기름 한 방이면 죽은 나물무침도 살려낸다. 한 가지 더 팁을 공유하자면 삶는 시간도 중요하다. 아삭한 식감을 살리고 싶으면 삶는 시간을 줄이고 부드러운 나물을 먹고 싶다면 좀 더 오랜 시간 삶으면 된다. 몇 번 시도하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식감의 정도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가끔은 배달 음식을 먹기도 한다. 근처에 배달이 되는 비건 옵션 마라탕 음식점이 있다니, 이건 행운이다. 저녁 시간에는 줄 서서 기다릴 정도로 맛집이다. 최근 이 식당에는 매콤한 버섯튀김 신메뉴가 생겼는데 맥주 안주로 딱이다.

▲비건과 논비건 부부의 밥상
이현우
배우자가 고기를 먹고 싶어 할 때 어떡하냐고? 논비건이 비건에 맞춰주는 거 아니냐고? 배우자를 모르는 이들이 배우자를 나서서 변호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들은 배려심 없는 이기적인 비건에게 옐로카드를 주려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스스로를 변호하자면 지난 주말만 하더라도 비건 마라샹궈를 주문하면서 논비건 꿔바로우를 주문했다. 비건 마라샹궈와 버섯튀김은 함께 먹고 꿔바로우는 배우자 혼자서 먹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함께 먹는 밥상에 구운 고기가 올라오기도 한다. 배우자는 고기와 채소 둘 다 먹고 나는 채소를 먹는다. 우리는 이렇게 먹고 산다.
비건과 논비건의 부부생활의 파국을 기대했는가. 고기를 못 먹도록 강요하는 비건 남편의 등쌀에 밥상을 엎어버리는 논비건 아내라도 상상했는가. 혹시 그런 이가 있다면 실망시켜 드려 죄송하다. 깨가 쏟아지는 부부 정도는 아닐지라도,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때론 공유하면서 먹고살고 있다.
논비건이 비건을 사랑하고 비건이 논비건을 사랑하는 방식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비건 지향인 남편과 논비건 아내가 한 집에서 공존할 수 있는 건, 훌륭한 성품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공존할 수 있었던 비결은 독특한 우리 부부 분위기 때문 아닐까?
우리는 딩크족을 지향한다. 결혼한 지 7년이 지났지만 아이가 없고 아직 계획도 없다. 서로 개인 시간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이유다. 나는 친구들과 주말에 산을 가기도 하고 복싱 경기를 관람하거나 복싱 원정 스파링을 가기도 한다. 아내도 친구를 만나 식사를 하거나 집에서 뒹굴뒹굴 쉬기도 한다.
주말에 집에서 같이 쉬더라도 한 명은 거실에서, 한 명은 안방에서 한참 동안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부부 맞아?' 이런 생각이 들 때쯤 같이 성북천을 걷기도 하고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함께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도 한다.
비건과 논비건이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방식에 특별한 비법은 없다. 비건과 논비건의 공존에 필요한 건 존중과 유연함이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좋은 것이 있다면 강요하지 말고 공유해보자. 하지만 가끔 시답잖은 일로 되풀이하는 부부싸움은 여전히 수수께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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