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 단속 당국이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고용 단속 현장 영상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ICE 홈페이지 영상 캡쳐]
연합뉴스
지난 4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이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단속해 한국 노동자를 검거했습니다. 이 장면은 대한민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가끔 할리우드 영화에서 남미계 미등록 체류자 단속 장면을 보면서도, 남의 나라 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조지아 현지 한국 공장 노동자 단속에 나선 미국 이민세관단속국은, 미국 국토안보부 소속으로 약칭 ICE(United States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로 불립니다. 미등록 체류자에 대해 검거하고, 잡아 가두며, 수사하여 강제 추방합니다.
일하러 간 미국 땅에서 한국 노동자들이, 케이블 타이로 결박당하고 쇠사슬에 묶여 마치 흉악범처럼 끌려 나가는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미국이 우방이라 여겼던 우리 국민은 당황했고 분노했을 겁니다. 다행히 정부는 신속하게 대응해 미국 정부와 협의했고 자진 출국의 형식으로 구금된 체포 노동자들이 석방될 것이라 밝혔습니다.
현지에서 이민 단속을 겪은 친인척의 상황을 전한 소식통이나, 언론 보도에 나온 구금 노동자 동료들의 인터뷰 등을 종합하면 ICE의 단속과 검거·구금에는 분명 불법적 요소가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B-1 비자를 소지하고 현지에서의 회의나 계약 등을 위해 체류하던 노동자들이 있었는데, 이를 확인하지 않고 체류자를 전체 연행하여 구금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그간 미국 내 체류비자 개선에 대해 정부의 노력이 소홀했던 데서 찾기도 합니다. 미국에 투자한 기업들은 일찍부터 한국 노동자에 대한 전문자격 비자 확대가 가능하도록, 정부가 노력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기업이 파견한 인력이 필요로 하는 비자는 L-1(주재원 비자)입니다. 그러나 발급에는 1년 이상이 소요되고 협력업체 노동자에게는 발급이 어려워 현장에서 적시에 활용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단기 상용비자로 알려진 B-1 비자나 90일 이하 단기 방문 목적으로 발급되는 전자 여행 허가(ESTA)를 통해 짧은 기간 현지에 인력을 파견해 업무를 처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B-1 비자로 생산시설을 가동하거나, 전자 여행 허가로 현지에서 일하는 것은 이민법 위반에 해당합니다. 미국 정부의 이번 단속은 표면적으로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 기업의 미국 투자가 확대되는 시점에서 안정적으로 생산시설을 구축하고, 기술이전을 위해선 국내 기업인력의 안정적 체류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 현지에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기업의 노동자들이, 쇠사슬에 결박당할 위험을 감수하며 미국에 일하러 가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정부는 미국 연방의회를 상대로 한국인 전용 전문직 취업비자인 'E-4 비자'를 신설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한국인 동반자 법' 제정 시도를 계속해 나간다는 방침입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 8일 구금된 한국 노동자들의 조속한 석방을 위해 출국하면서, 마크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과 비자 문제 확대를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민의 일자리 보호를 명분으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전문직 비자 축소를 꾀하는 상황 속에서, 그 성과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의 구조적 원인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2기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 정부의 보수적 이민정책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트럼프 정부 핵심 인사들이 만든 정치적 작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 크리스티 놈이 지난 8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파이브 아이즈' 안보 동맹 정상회의에 참석해 인신매매 및 아동 성착취 문제에 관한 논의를 진행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한국인 노동자 구금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크리스티 놈 미 국토안보부 장관은 지난 8일 영국 런던에서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인 노동자 구금 사건을 두고 "모든 기업이 미국에 올 때 게임의 규칙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도록 하는 좋은 기회"라고 평가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내 생각에 그들은 불법체류자였고, ICE는 할 일을 한 것"이라며 이민관세단속국의 행정을 옹호했습니다. 그는 9월 7일 저녁 자신의 SNS에 "미국에 투자하는 모든 외국 기업은 미국 이민법을 존중해 달라"며 "여러분 나라의 기술 인력을 합법적으로 들여오는 것을 장려한다"라면서도 "그 대신 미국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훈련해야 한다"라고 속마음을 밝혔습니다.
이를 종합하면 이번 사건은 우연히 발생한 이민 단속 사건이 아니라, 미국 행정부가 자신들의 이민정책 철학에 기반해 미국 내 투자 기업을 상대로 펼친 정교하게 연출된 사건입니다.
ICE는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가장 권위 있는 행정 조직 중 하나입니다. 막강한 행정력의 원천은 ICE의 산하의 국토안보수사국(HSI, Homeland Security Investigations)과 단속추방국(ERO, Enforcement and Removal Operations)에서 비롯됩니다.
이번 단속과 관련된 발표를 국토안보수사국(HSI)이 맡았다는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HSI는 미국의 안보와 관련된 중대 범죄를 수사하는 부서로 대테러, 인신매매, 무기 밀수, 마약 밀매, 돈세탁 등을 담당합니다. 정상적이라면 미국 내 미등록 체류자를 검거하고 강제 추방하는 부서인 단속추방국(ERO)이 이번 사건을 주도하는 것이 맞습니다.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은 이번 사건에서 "소수가 다른 범죄 활동과 관련돼 있다"라고 언급하면서도 구체적으로 관련 범죄 혐의가 무엇인지, 구금된 한국 노동자들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밝히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트럼프와 함께 대표적인 공화당의 '미국 우선주의자'입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보호관세를 통한 보호무역주의, 미국 내 이민자 단속을 통한 자국민 일자리 보호 등 배외주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트럼프 정치적 구호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크리스티 놈 장관의 미국 사랑 역시 트럼프에 못지않습니다. 그는 사우스다코타 주지사 시절인 2021년, 미국보수연합이 주최한 보수정치행동회의(CPCA)에서 한 연설에서 "우리는(미국인) 특별하고 예외적이다"라며 "어떤 미국인도 이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선민의식이 몸에 밴 것이지요.
미등록 체류자가 테러범과 같은가?

▲지난 3월 26일 엘살바도르에 있는 테러범 구금시설인 세코트에서 연설하는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
AP/연합뉴스
그가 트럼프에 의해 2기 행정부 첫 국토안보부 장관으로 임명된 이후 벌인 정치활동은 충격적입니다. 그는 지난 3월 26일 중앙아메리카 엘살바도르에 있는 테러범 구금시설인 세코트(CECOT)를 방문해 창살 안 구금자들을 배경으로 불법 이민자들에게 "미국에 불법으로 오면 기소되고 추방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해당 시설은 마약이나 테러 등의 중범죄자 수용 시설입니다. 이민법을 위반한 대다수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나 체류자입니다. 경제적 이유로 미국의 국경을 넘고, 체류자격 없이 미국에서 경제 활동을 한 것이 문제가 됩니다. 이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와 흉악범들이 같아 보이도록, 의도적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정교한 연출입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저명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지난 8월 20일 온라인 플랫폼 서브스택(Substack)에 기고한 글에서 ICE를 "미국적이지 않은 조직"이라며, ICE의 이민 단속 요원을 "가면을 쓰고 신분증도 없이 거리에서 사람들을 잡아가는 이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ICE가) 대통령의 권력과 억압의 도구로 활용될 것"이라는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는 글에서 ICE에 의해 매월 체포된 수를 나타낸 그래프 자료를 제시했는데 이에 따르면 2023년 10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매월 1만 건 이하였던 체포 건수는 2025년 1월 이후 급증하며 2025년 상반기에 월 2만 건을 넘어서더니 2025년 7월에는 3만 건을 훌쩍 넘고 있습니다.
그는 이주노동자들이 집중된 산업과 직종에서 그들의 노동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가까이 되는 만큼, 트럼프 행정부의 추방 정책이 '농업 생산' 등에 악영향을 끼쳐 인플레이션을 불러오고 미국 경제에 큰 피해를 줄 것으로 전망합니다.
이번 미국 정부의 한국인 노동자 구금 사건을 두고 미국 현지에서는 정치적 성향에 따라 반응이 엇갈립니다. 공화당 소속 버디 카터 연방 하원의원은 이번 사건을 바이든 민주당 정부가 방치한 불법 이민과 마약 카르텔로부터 '미국 되찾기 작전(Operation Take Back America)'이라고 정의하며 트럼프 정부의 단속을 적극 옹호했습니다.
민주당 소속 조지아주 민주당 의장 찰리 베일리는 ICE의 단속을 조지아주에 있는 기업과 생계를 희생시키는, '정치적 공포 전술'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우리 정치권에서는 미국이 제조업 부활을 위해 한국 기업에 투자를 요청해 놓고 비자 문제로 발목을 잡는 것에 분노합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9월 8일 국회 산업 통상 중소벤처기업위원회 현안 질의에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에게 우리에게 투자를 (하라고) 하면서 이렇게 비자 문제를 보수적으로 보면 어떻게 하느냐"라며 항의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심지어 우리도 보복 조치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현안 질의에서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조현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관광비자로 입국해 영어 강사 일을 하는 미국인에 대해 실태조사 해야 한다'라며 적극적 외교를 주문했습니다. 그래야 미국이 긴장한다는 것인데요. 조현 장관은 김 의원의 주장에 대해 "결기 있는 대처 방안을 면밀하게 검토하겠다"라고 답변 했습니다.
저는 미국 정부의 한국 노동자에 대한 무차별적 단속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대변했다고 이해하고 싶습니다. 듣기에는 시원한 발언이지만 이는 비자와 관련된 이민 행정이 실효성 있게 집행되도록 개선해야 할 문제이지, 미국이 정치적으로 이민 행정을 활용했다 하여 보복 조치로 시행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긴급현안질의에 출석해 미국 이민당국의 한국인 구금 사태와 관련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남소연
그보다는 정부와 기업이 차분하게 이번 ICE의 법 집행 과정에서의 위법성을 점검하고, 향후 발생할지 모를 체류 위험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트럼프 정부는 1기 때부터 '러스트 벨트'로 불리는 미국의 쇠락한 제조업 지역의 백인 노동자들의 박탈감을 악용해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겨 왔습니다. 그 때문에 민간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이 미국 내 인권 단체나 노동단체와 연대하여, 미국 정부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공격적 추방 정책이 양국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겠습니다.
다행히 노동단체인 미국노동총연맹-산업별 조합회의(AFL-CIO ) 조지아 지부 이본 브룩스 의장은 성명을 내고 "이번 단속은 정직한 생계를 유지하려는 조지아 이민자들을 겨냥한 지속해 괴롭힘 캠페인의 가장 최근 사례"라며 "노동자들을 체포하고 가두는 것은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동료들의 업무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노동 현장에서는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 같은 대기업이 관련되어 있어서 정부가 발 벗고 나섰지, 협력업체나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문제였다면 이만큼 이슈나 되었을까 하고 불신하기도 합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 내 한국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인권을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지원할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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