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4일(현지시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미국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3월 24일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은 백악관에서 현대제철이 루이지애나주 '어센션 패리시'에 4년간 58억 달러(약 8조 1000억 원)를 투입해 2029년까지 전기로 방식의 '저탄소 제철소'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연간 270만 톤의 자동차 강판을 생산하고 이를 미국 현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부품 공장에 공급할 예정이다. 루이지애나 제철소는 철강 수입 관세 압박에 노출된 현대자동차그룹의 공급망 생태계 핵심으로 볼 수 있다.
미국 정부와 루이지애나 주정부는 이를 환영하면서 세금 감면 혜택, 항만과 송전망 인프라 건설, 부지 용도 변경 등의 혜택을 약속했다. 특히 제프 랜드리 루이지애나 주지사는 당시 백악관 행사에서 "현대제철로 인해 직접 일자리 1400개, 간접 일자리 4100개가 만들어지고 루이지애나 제조업이 회복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연방과 주정부의 환영과 달리 제철소 부지 주민들은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주민 건강, 환경 오염 해결, 주민의 참여와 지지를 보장하라는 요구다. 이런 환경 정의와 주민 결정권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주민들은 저항과 법적 소송을 예고하고 있다. 현지 주민들과의 문제 해결 여부에 따라 제철소 착공이 장기간 유예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루이지애나 TV 매체인 'WBRZ'는 4월 1일 "정부는 58억 달러 현대제철 유치를 축하하지만 어센션 패리시 주민들에게서는 이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고 보도했다. 지역 주민 조직인 '루럴 루츠 루이지애나' 창립자인 애슬리 가이그나드는 "그동안 암모니아 시설이 문제였는데 이번에는 제철소라니! 이미 문제 된 기존의 발암 물질과 함께 철강과 또 마주하게 되었다"면서 "주민들 가운데 누가 현대제철 유치를 동의했는가? 현대제철은 지역 공동체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현대제철의 부지로 결정된 어센션 패리시는 '암의 골목'(Cancer Alley)으로 불리는 환경 취약 지대 한복판이다. 이미 수십 년간 석유화학·정유산업으로 암 발병률이 미국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1990년부터 2002년까지 12년 동안 쉘(Shell) 화학 공장에 저항한 기록은 환경 정의 교과서에 나올 정도다.
당시 쉘 화학 공장 저항을 지원한 환경 시민단체들도 지금 나서고 있다. 그중 '루이지애나 버킷 브리게이드'는 8월 현대제철 유치에 대해 '역사적인 마을들을 파괴하려는 계획'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아울러 현지 공동체의 보존과 주민들의 삶의 질을 우선시할 것을 촉구했다.
현대제철 부지 바로 옆 제임스 패리시에는 잘 알려진 전례가 있다. 1990년대 다이아몬드라는 작은 흑인 마을 주민들은 쉘 화학 공장의 오염과 질병 피해에 맞섰다. 1997년 쉘 공장의 폭발 사고로 촉발된 주민 저항은 전국적·국제적 이슈가 되었고 '환경 인종차별'의 대표 사례로 주목받았다.
12년이 지난 2002년 쉘은 주민들의 집을 매입하고 이주를 보장했고, 이는 미국 환경 정의 운동의 상징적 승리로 기록되었다. 이 지역 주민들의 집단적 기억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현재 환경단체들과 국제 비정부기구(NGO)들은 현대제철을 주목하고 있다.
바로 이곳에 현대제철 부지가 결정되었다. 현대제철이 미국 정부의 지원으로만 주민 저항을 넘어설 수 있을까? 현대제철이 생산 차질을 빚는다면, 미국 내 현대차·기아차의 완성차 공장은 철강 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한다. 이는 미국 내 자동차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한국 사회의 새로운 준비를 위해
트럼프는"'해외 기업들에 특별 지역을 제공할 것이고 그곳은 이상적인 장소가 될 것"이라고 했지만, 미국에서 제공된 여러 지역이 이렇게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는 한국이 트럼프 관세에 집중하면서 사회적, 환경적, 법적인 위험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에 5000억 달러를 투자해야 하는 우리나라는 프로젝트별로 '해외 투자 위험 영향 평가'를 포괄적인 범위에서 실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 산업계 전문가, 국제 표준 전문가, 시민사회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해외 투자 위험 영향 평가 기구'를 만들어 진단하고 대응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위험 영향 평가를 하면서 반드시 한국의 '산업 공동화'와 '지역 공동체 위기'를 함께 살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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