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9.09 16:11최종 업데이트 25.09.09 16:11
  • 본문듣기
뉴라이트 역사관 논란을 일으켜온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8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습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남소연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광복은 연합군의 승리로 얻은 선물'이라는 광복절 경축사로 인해 한층 강한 사퇴 압력에 놓여 있다. 그런 그가 8일 국회 소통관에 나타나 도발적인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만약 광복이 연합군의 승리로 된 것이라는 말이 사퇴의 근거라면, 아래의 <백범일지> 기록은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 것일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백범일지>의 해당 부분을 이렇게 읽어줬다.

"아, 왜적이 항복. 이것은 내게는 기쁜 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일이다. 천신만고로 수년간 애써서 참전할 준비를 한 것도 다 허사다. 그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우리가 이번 전쟁에 한 일이 없기 때문에 장래에 국제 간의 발언권이 박약하리라는 것이다."

김 관장은 <백범일지>의 네 문장을 읽어준 뒤 "이 구절은 해방을 바라보는 김구 선생의 고뇌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기록으로, 일본의 패망이 우리가 전쟁에 승리하여 된 것이 아니기에 향후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한 말입니다"라고 해석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백범일지>는 출판사마다 내용이 약간 다르다. 김 관장이 읽어준 내용은 학민사와 범우사 등에서 발행한 <백범일지>다. 그런데 그는 <백범일지>의 해당 부분을 다 읽어주지 않았다. 네 번째 문장의 주요 부분을 생략한 채로 읽어줬다. 일종의 '편집'을 한 것이다. 그가 편집한 부분까지 포함해서 학민사 및 범우사판 <백범일지>의 해당 부분을 정확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아! 왜적이 항복!' 이것은 내게는 기쁜 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일이었다. 천신만고로 수년간 애를 써서 참전할 준비를 한 것도 다 허사다. 서안과 부양에서 훈련을 받은 우리청년들에게 각종 비밀한 무기를 주어 산동에서 미국 잠수함을 태워 본국으로 들여 보내어서 국내의 요소(要所)를 혹은 파괴하고 혹은 점령한 후에 미국 비행기로 무기를 운반할 계획까지도 미국 육군성과 다 약속이 되었던 것을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왜적이 항복하였으니 진실로 전공(前功)이 가석(可惜)이어니와, 그보다도 걱정되는 것은 우리가 이번 전쟁에 한 일이 없기 때문에 장래에 국제간에 발언권이 박약하리라는 것이다."

일본이 항복한다는 소식을 듣고 김구는 탄식했다. 이는 자신이 준비한 광복군의 국내진공작전이 무위로 돌아가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런 이유로 애석해하면서, 독립군이 쌓은 그간의 공로를 언급했다. 일본이 항복하기 직전까지 축적한 공로를 그는 '전공'으로 표기했다. 독립군의 공이 별로 없다고 인식했다면 이런 표현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김구는 독립군의 '전공'을 언급해 놓고도 '우리가 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일견 상반돼 보이지만, 실상은 상반되지 않는다. 독립군의 공로를 언급한 뒤에 '우리가 한 일이 없다'고 한 것은 항복선언을 이끌어내는 결정적 한 방을 독립군이 날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간의 독립운동이 시원치 않은 점을 아쉬워한 게 아니라 최후의 한 방을 날리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던 것이다.

결정적 한 방에 대한 아쉬움

마지막 한 방을 날리지 못했다고 승자의 자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러 나라가 참전한 연합군에서는 특정한 한 나라가 결정적 전공을 세우기 마련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반인류적 행위를 실행하지 못했다 하여 승전국이 될 수 없다면, 영국·프랑스나 소련·중국도 승전국 지위를 가질 수 없다. 중국이 이달 3일에 김정은과 푸틴을 불러놓고 거창한 전승절을 거행한 것은 결정적 한 방을 날리지 못한 것이 승자의 자격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백범일지>가 출간된 것은 해방 2년 뒤인 1947년 12월이다. 이때는 김구가 이승만에 밀려 정치적 주도권을 잃은 뒤였다. 김구는 이 시기에 펴낸 회고록을 통해 그 자신이 일제를 향해 최후의 한 방을 날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이끄는 한국광복군이 '전공'을 갖고 있으며 자신이 이 부대와 함께 국내 진격을 준비하다가 막판에 기회를 놓쳤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대목에서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광복은 연합군의 승리로 얻은 선물'이라는 메시지가 아니다. 자신과 광복군이 거의 다 준비를 해놓았는데 안타깝게 기회를 놓쳤다는 점을 그는 긴 문장을 통해 드러냈다. 김형석 관장이 <백범일지>의 그 부분을 생략하지 않고 다 읽어줬다면, 누구라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그 부분만 쏙 빼놓았다.

국내 진격을 준비했던 독립운동가가 자신이 항복을 받아내지 못한 일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 지도자의 입에서 나온 탄식은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제대로 투쟁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다. '우리가 끝장낼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일을 많이 했음을 보여준다.

광복군과 김구가 실력도 없이 의욕만 넘쳤던 것은 아니다. 광복군과 김구가 한국 본토를 접수할 역량이 있었다는 점은 애초에 예정된 국내진공작전이 일본의 항복으로 무산된 직후에도 드러났다.

이때 김구는 국내 진입 선발대가 될 국내정진대라는 연합부대를 미군에 제안했고, 미군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해방 사흘 뒤에 장준하 등이 포함된 22명의 한미 연합 정진대가 중국 시안(서안)을 출발해 국내로 진격했다.

육군본부가 펴낸 <한국군사사> 제10권은 1945년 8월 18일 상황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이 부대가) 이날 새벽 5시 30분 시안을 출발, 6시간의 비행 끝에 12시경 여의도비행장에 착륙했다"고 말한다. 비행기에서 내린 미 육군 전략정보처(OSS)의 윌리스 버드 중령은 "초기의 연합군 점령 예비대표로 여기에 왔다"는 말로써 한미연합 정진대를 일본군에 소개했다.

이 부대는 일본군의 완강한 저항을 받고 19일 오후 3시 30분에 이륙하기까지 28시간 동안 국내에 체류했다. 이처럼 김구가 추진한 국내 진격 작전은 제한적으로나마 실현됐다. 광복군의 공로와 역량이 시시했다면, 일왕의 항복선언을 받아낸 미군이 광복군과 함께 국내에 진입하는 이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미군이 광복군을 무시할 수 없었음을 보여준다.

독립기념관장 자격 없다

김구는 '해방은 연합군의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김형석 관장의 주장과 달리, 그는 '해방은 한국 독립군과 연합군의 공동 수확'이라고 인식했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해방 직후에 공개적으로 표시했다. 1945년 9월 3일 임시정부 주석 명의로 발표한 '내외동포에 고함'이라는 성명서가 이를 보여준다. 이 성명에서 그는 광복의 원동력을 이렇게 정리했다.

"금일에 조국이 해방되는 데 있어 각고(刻苦)하고 장절(壯絶)한 노력이 있었을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일 허다한 우리 선열의 보귀한 열혈(熱血)의 대가와 중·미·영 등 동맹군의 영용한 성공이 없었으면 어찌 조국의 해방이 있을 수 있었으랴? 그러므로 우리가 조국의 독립을 안전(眼前)에 전망하고 있는 이때에 있어서는 마땅히 먼저 선열의 업적을 추상(追想)하여 만강(滿腔)의 경의를 올릴 것이며, 맹군(盟軍)의 위업을 선양하여 열렬한 사의를 표할 것이다."

김구는 독립을 얻으려면 고통스럽고 장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해방을 얻은 것은 우리 선열들의 희생과 동맹군의 위업 덕분이라고 평했다. 그는 둘 중에서 전자에 무게를 뒀다. "마땅히 먼저 선열의 업적을" 돌이켜보고 마음 가득한 경의를 올려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것이 독립의 원동력에 대한 김구의 입장이다. 누구 덕분에 해방이 됐는가에 대한 그의 인식이 위 성명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관한 김구의 인식을 설명하려면, 이 문건을 반드시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백범일지>를 편집해 '연합군의 승리로 얻은 선물'이라는 엉뚱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세상을 기만하는 일이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독립운동의 가치를 가장 앞장서서 알려야 할 위치에 있다. 그런 인물이 기본적인 사료도 확인하지 않은 채, 백범 김구의 글을 편집해 독립운동의 가치를 떨어트리고자 했다. 이는 김형석 관장이 독립운동의 가치를 알리고 싶어 하는지 아닌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는 독립기념관장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 드러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